“청소년을 사랑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들이 사랑받고 있음을 느끼게 해야 합니다.”
필자가 오랜 시간 되새기는 문장 중 하나다. 살레시오 수도회와 수녀회를 설립하신, ‘요한 보스코’ 성인의 말씀이다. 일반적으로는, ‘돈 보스코’ 성인으로 잘 알려진 분이다. 되새길수록 무엇이 중요한지 그리고 무엇이 중심이 되어야 하는지를 깨닫게 해준다. 이 말씀의 핵심은 ‘사랑의 중심’이다. 사랑을 전하는 내가 아니라, 사랑은 받는 타인이 중심이 돼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내가 아무리 사랑한다고 말하고 표현해도, 상대방이 느끼지 못하면 어떨까? 심지어 불편하게 느끼면 어떨까? 과연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누군가가 표현하는 사랑이 불편한 것을 우리는, ‘스토킹’이라 말한다.
여기서 질문 하나!
‘사랑’과 ‘대화’의 공통점이 뭘까? 살짝 힌트를 주자면, 앞서 잠깐 언급했던 부분에 있다. 그렇다. 중심이다. 사랑이나 대화의 중심은 내가 아닌 내 앞에 있는 사람에 있어야 한다. 내가 아무리 사랑한다고 말하거나 이야기해도, 내 앞에 있는 사람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여기서, 어차피 결정은 상대방이 하는 거니, 나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면 되는 거 아니냐고 묻는다면…. 안타깝지만, 그 말은 여기서 나올 말은 아닌 듯하다. 그렇다고 최선을 다할 필요가 없다는 건 아니다. 방향이 좀 다르다는 거다. 그래서 필자가 만들어 낸 이론이, 하나 있다.
공 던지기 이론이다.
자! 나와 내 앞에 누군가가 공을 던지고 받는 놀이를 한다고 하자. 내가 공을 던지면 상대가 받고, 공을 받은 상대는 나에게 다시 공을 던진다. 야구에서 말하는, 캐치볼이라고 생각하면 좋겠다. 자! 여기서 중심은 누가 돼야겠는가? 중심이라는 표현이 모호하다면, 이렇게 표현할 수 있겠다. 누구를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까? 던지는 사람일까? 받는 사람일까? 받는 사람이다. 던지는 사람은 받는 사람의 상태(?)에 따라 세기와 높이 등을 고려해서 던져야 한다. 내가 어느 정도 실력을 갖춘 사람이고, 공놀이를 주도한다고 가정하자. 나와 비슷한 수준에 사람이라면, 내가 받을 수 있을 정도로 던지면 된다. 하지만 아이가 있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앞서 던진 속도와 높이로 던지면 될까?
절대 안 된다.
아이 머리 위로 날아가는 것은 물론, 아이에게 향한다고 해도 받기 힘들다. 몸에 맞고 울음을 터트릴 가능성이 매우 크다. 어떻게 던져야 할까? 몸을 낮추고 팔을 아래로 떨어트린 다음, 아이의 가슴 높이쯤으로 살짝 올리듯 던져야 한다. 그래도 받을 수 있을 둥 말 둥 하다. 그만큼 받는 사람을 고려하지 않으면, 공 던지기 놀이를 계속하기 어렵다. 반대로 나와 비슷한 수준의 사람이 있는데, 아이에게 던지듯 그렇게 던지면 어떻게 되겠는가? 몇 번 하고 재미없다며 그만하자고 할 거다. “장난하냐?”라는 핀잔을 들을 가능성도 크다. 따라서 받는 사람을 중심에 두고, 그에 걸맞은 속도와 방향으로 던져야 한다.
‘입으로 하는 경청’
이 표현을 들었을 때도 같은 생각을 했다. 코칭 교육을 받고, 관련 서적을 읽으면 자주 들리고 눈에 띄는 표현이다. ‘경청’은, 다 아는 바와 같이 잘 듣는 것으로 귀로 하면 된다. 그런 경청을 입으로 하라니! 필자도 처음에는, 매우 어색했다. 하지만 그 의미를 알게 되었을 때는, “아! 맞네!”라며 감탄했다. 표현이 참 적절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렴풋이 알고 있었던 것을 명확하게 깨달았다고나 할까? 입으로 하는 경청을 한마디로 표현으로 하면, 맞장구다. 이렇다저렇다 설명해 주는 게 아니라, 공감하면서 맞장구쳐 주는 거다. 그것만으로 상대방은 위로를 받고 있다고 느낀다. 별거 아닌데, 왜 그리 어렵게만 느껴졌는지 모르겠다. 부부끼리는 더 그렇다. 그냥, “아! 그랬어?”, “아! 그랬겠구나!” 해주면 되는데 왜 그리 입이 안 떨어지는지…. 부부 사이에서도 입으로 하는 경청과 공감하는 사람이, 진정한 코치라 말할 수 있겠다. 그런 면에서 필자는 아직 좀 부족함을 고백한다.
사실 잘 몰랐다.
‘입으로 하는 경청’의 효과를 몰랐다. 해보지 않아서 몰랐고, 모르니 그 효과를 알 수 없었다. 말로는 들었지만, 그 효과가 좋을 거라는 생각을 깊이 하지 못했다. 받아들이지 못한 가장 큰 걸림돌은, 가르치려는 마음 때문이다. “잘못된 것은 명확하게 일러주고 고쳐줘야지!”라는 생각 때문이다. 부부 사이가 특히 그렇다. 그냥 공감하면 되는데, 뭘 알려주겠다고, 미주알고주알 하니 마음이 틀어진다. 갑자기 아내의 한탄이 들려온다. “나는 선생님이 필요한 게 아니라, 내 편이 필요한 거라고!” 그렇다. 고객도 마찬가지다. 고객도 선생님보다 자기편이 필요해서 코치를 찾았을 거다. 그러니 선생님으로 빙의하는 건 그만!
선생님으로 빙의할 때, 간과하는 것이 있다.
내가 알지 못하는 그리고 알려고 노력하지 않은, 그 사람만의 상황이 있다는 사실을 망각한다. 상대방의 속도 모르고, 충고랍시고 떠들어 댔다고 생각하니, 얼굴이 화끈해지고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상대방은 이렇게 생각했을 거다. “쥐뿔도 모르면서!”
코칭 실습을 하면서 깨달았다.
입으로 하는 경청의 힘을, 실습하면서 깨달았다. 그렇게 하는 것만으로, 상대방은 위로받는다고 했다. 진심으로 자신을 걱정해 주는 느낌이 들었다는 말도 들었다. 듣기만 했고 공감만 했을 뿐인데 말이다. 더 놀라운 건, 자기 얘기를 하면서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스스로 마음 깊은 곳에 덮어둔 생각을 끄집어냈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하면 어떤 기적(?)이 일어나는지 아는가? 해결하고 싶다고 꺼낸 문제가, 바뀌는 경험을 하게 된다. 바다가 두 갈래로 갈리는 기적까지는 아니지만, 잘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덮어둔 진짜 문제를 꺼냈다는 건 엄청난 기적이다. 겉으로 표현한 생각이 아니라, 진정 자신이 고민하고 원하는 생각이다. 게으름이라고 생각했던 문제가, 두려움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 그렇다. 타인에게 공감하지 못했던 이유가, 자기 사랑이 부족해서였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 그렇다.
여기저기서 역량에 관한 많은 이야기를 한다.
시대가 급변하면서 IT를 기반으로 한 다양한 역량이 필요하다고 소개한다. 다 필요한 것 같고 다 중요한 것 같다. 하지 않으면 뒤처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 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의기소침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역량은, 시대에 따라 변하는 것이 아니다. 시대가 변해도 변치 않는 역량이 진짜 필요한 역량이고 갖춰야 할 역량이다. 어떤 역량일까? 바로, 공감과 경청하는 역량이다. 이게 무슨 역량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공감과 경청도 많은 연습과 노력을 해야 키울 수 있다. 그리고 매우 어렵다. 이것저것 해야 할 것이 너무 많다고 생각한다면, 이것만은 꼭 갖추면 좋겠다. 고전에서도 그 효과를 알려준다.
매우 유명한, ‘항우’와 ‘유방’의 대결 이야기다.
누가 보더라도 항우가 우세하다고 판단했지만, 결과는 달랐다. 그 이유에 대해 유방은 이렇게 이야기했다.
“나는, 장막 안에서 계책을 세워 천 리 밖에서 승리를 거두는 것은 ‘장량’만 못하다. 국가의 안녕을 도모하고 백성을 사랑하며, 군대의 양식을 대어 주는 것은 ‘소하’만 못하다. 백만 대군을 이끌고 나아가 싸우면 이기고 공격하면 빼앗는 것은 ‘한신’만 못하다. 하지만 나는 이 사람들을 내 사람으로 만들었고 그들의 능력을 발휘하게 해줬다. 그래서 내가 천하를 얻을 수 있었다.”
유방이 여러 장군의 강점을 잘 활용하여, 가능성이 희박한 싸움에서 이겼다. 어떤 능력 때문이라 생각하는가? 공감과 경청의 힘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