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_두려움에서 용기로 건너가는 방법

두려움을 온전히 내어 맡기고 던져야 얻게 되는 힘, 용기

by 청리성 김작가


두려움과 용기는, 실과 바늘 같다.

실과 바늘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비유할 때 사용하는 표현인데, 두려움과 용기도 그렇다. 용기를 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가만히 있는데 갑자기 “용기를 내야지!” 하며 벌떡 일어서는가? 그렇지 않다. 두려움이 올라왔기 때문이다. 두려운 감정 말고도, 마음을 불편하게 하거나 불안하게 하는 원인은 몇몇이 있다. 하지만 용기를 내야 할 가장 대표적인 순간이 두려움인 건 사실이다. 그렇다면 두려움은 무조건 안 좋고 없어야 할 감정일까? 세상에 쓸모없는 건 없다고 하지 않았나? 두려움도 마찬가지다. 뭐든 과하면 해롭지만, 적당한 건 도움이 될 때가 있다.



‘메기 효과(catfish effect)’라는 것이 있다.

‘청어’는 북유럽 사람들이 즐겨 먹는 생선이다. 과거에는 이 청어를 먼바다에서 잡아, 장시간 운송해서 항구로 들여왔다. 하지만 오랜 시간 이동해서인지 죽어있는 청어가 많았다. 신선도를 유지하기 어려운 게 숙제였다. 그러다가 일부러 그랬는지 우연히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수조에 천적인 메기를 함께 넣어 운반하게 되었다. 몇몇은 메기에게 잡아먹혔지만, 기존보다 더 많은 청어가 싱싱하게 살아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메기에게 잡아먹히지 않으려고 끊임없이 움직였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청어를 실어 올 때, 메기를 넣었다고 한다. 천적인 메기 덕분에 청어들이 죽지 않게 되는 현상을 빗대어, ‘메기 효과(catfish effect)’라는 용어가 생기게 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참조)



<두려움과 용기의 시소 타기>라고 명명한 이유도 그렇다.

두려움은 무조건 없어야 할 감정이 아니다. 적절한 두려움은 용기를 낼 수 있게 하는 마중물이 된다. 삶을 활기 있게 해주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앞서도 말했지만, 과하면 문제가 되지만 적절한 두려움은 필요하다. 그래서 두려움과 용기의 시소를 잘 타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두려움이 슬그머니 올라올 때, 그 두려움에 짓눌리기보다, 딛으며 용기를 내야 한다는 말이다. 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수 있다면, 지금까지 없던 힘을 발휘할 수 있다. 확신이 막연함을 밀어내면, 움츠렸던 용기가 일어나고 앞으로 나아갈 힘을 내게 해준다. 그렇게 시동이 걸린 용기는, 관성에 힘으로 더 큰 용기를 내게 해준다.




“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수만 있다면!”

영화<명량>에서 나온, 명대사다. 두려움이라는 공포가 용기라는 자신감으로 바뀌면, 못할 게 없다는 말이다. 객관적인 수치로 봤을 때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생각은,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만든다. 하지만 그 두려움이 해볼 수 있다는 용기로 바뀌는 순간, 드러나지 않았던 역량을 발휘하게 한다. 거기에 더해 용기로 가득 찬 표정과 눈빛은, 상대의 기를 누를 가능성도 커진다. 반대로 그들은 할 수 있는 역량마저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무너지게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두려움에서 용기로 넘어갈 수 있을까?



그네 타기 곡예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미국의 영성가 ‘헨리 나우웬’이 서커스를 보면서 깨달은 내용이다. 한쪽 그네에서 다른 쪽 그네로 넘어가는 묘기가 있다. 넘어가는 사람은 자신이 잡고 있던 그네에서 손을 떼고, 반대편 그네에 매달린 사람에게 자신을 온전히 던져야 한다. 그네에서 손을 떼지 않으면 반대편 그네로 넘어갈 수 없다. 손을 뗀다고 해도, 온전히 자신을 던져 반대편 사람에게 가지 않으면 바닥으로 떨어지게 된다. 두려움에서 용기로 넘어가는 과정도 마찬가지다. 내가 믿고 의지하는 신념에 온전히 자신을 던져야 한다. 우물쭈물하다가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내 발목을 잡은 건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이다. 자신 안에 가득 찬 두려움이 용기로 넘어가지 못하게 잡는 거다. 온전히 내맡기는 결단만이, 용기 있는 행동을 만들어 낸다.



두려움을 누르는 건, 용기다.

하지만 용기를 일으키게 하는 건, 확신이다. 확신이 있다면, 용기가 일어난다. 용기가 나지 않는다면, 용기 낼 힘이 없는 것이 아니라 확신이 없는 거다. 확신이 용기를 일으키게 하는 힘이기 때문이다. 그럼, 확신은 어디에서 오는가? 희망에서 온다. 지금보다 더 나아질 거라는 희망을 품고, 그 희망을 믿으면 확신이 선다. 희망과 확신과 용기 이 셋은, 이렇게 차례로 연결된다.


두려움에 눌려, 용기가 나지 않는가?

그럼, 먼저 희망을 두자. 지금보다 더 나아질 거라는 희망을 두자. 그렇게 확신하기 위한 노력을 하자. 그러면 마음에서 용기가 꿈틀대기 시작할 거다. 꿈틀대는 용기에 대고 ‘그래! 한 번 해보자!’라고 응원해 주자. 그러면 용기는 힘을 내서 고개를 들고 당당하게 일어서게 된다. 용기는 다시 확신에 힘을 더해주고, 확신은 희망을 더 크고 밝게 보게 해준다. 선순환되는 거다. 그 시작은 희망에 있다. 희망을 놓지 말고 희망을 꼭 붙들고 있자. 희망이 확신을 부르고 확신이 용기를 부를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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