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이 쉴 집은 어디인가?

몸과 마음, 모든 것을 내려놓고 쉴 수 있는 집

by 청리성 김작가

여행이 좋은 이유는, 돌아올 집이 있어서라고 한다.

여행 관련 명언(?) 중 잘 알려진 표현이다. 이 말에 깊이 공감한다. 공감하는 포인트가 좀 다르긴 하지만 말이다. 한여름, 군대에서 유격 훈련을 받은 적이 있었다. 종일 가만히 있는 시간 없이, 꽉 찬 일정으로 거세게 돌아갔다. 밥을 먹고 일과가 시작되기 전, 잠깐의 쪽잠이 유일한 휴식이었다. 2주간 천막에서 생활했는데, 훈련도 훈련이지만, 의식주가 영 아니었다. 군대가 다 그렇지만, 야외 생활은 더 했다. 먹는 것도 그렇고 씻는 거 자는 거 잠자는 것까지 어느 것 하나 온전한 게 없었다. 아! 힘든 훈련이라 그런지 메뉴는 체력을 보충할 수 있는 좋은 것들이었다. 흙바닥에 앉거나 돌 위에 걸쳐 앉아서 먹어야 하는 환경이 온전치 않았다는 말이다.


하루하루 버텨내는 생활이었다.

우리를 위로한 건, 2주만 버티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말년 병장이 집에 가는 날을 손꼽듯, 우리는 이곳을 떠날 날을 손꼽았다. 그렇게 마지막 날 아침이 밝았다. 그 여느 날보다 상쾌했다. 마지막 날은 별도의 훈련 없이 복귀할 준비를 했다. “자! 이제 집에 갈 준비하자!” 이 한마디에 우렁찬 대답과 함께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한시라도 이곳을 빠져나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짐을 챙기고 완전군장을 한 다음, 부대를 향해 이동했다. 행군이 이 훈련에 마침표였다. 처음에는 모두 발걸음이 가벼웠다. 복귀해서 뭘 하고 싶은지 이야기하는 선임들도 있었다. 하지만 몇 시간 지나자, 발걸음과 입이 무거워졌다. 휘어지는 도로에서 보이는 행렬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 끈에 엮여 끌려가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그렇게 힘겨운 발걸음을 옮기는데, 저 멀리 부대가 조그맣게 보이기 시작했다.



모두 환호를 지르며 다시 힘을 내기 시작했다.

걸음도 조금 빨라졌다. 그렇게 순조롭게(?) 가는 데 입구에 다다르자, 정체되기 시작했다. “에이, 뭐야?” 순조로운 발걸음에 제동이 걸리자, 짜증을 내도 누가 뭐라 할 수 없는 한 분이, 한마디 내뱉었다. 고개를 들고 기웃해 봐도 군장과 덩치가 큰 사람들로 잘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이 좀 빠지자, 바닥에 커다란 드럼통이 보였다. 그 앞에 다다른 사람들은 무언가를 떠서 한 모금씩 마셨다. ‘뭐지?’ 차례가 다가오자, 뭔지 알게 되었다. 얼음이 동동 떠 있는 막걸리였다. 그때는 술을 거의 마시지 못했지만, 그 한잔이 그렇게 맛날 수가 없었다.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나며 이런 기분일까? 그때까지 마셔본 술 중, 단연 최고의 술맛이었다. 내무반에 도착해서 짐을 풀고 정리했는데, 그 한 잔에도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정리를 마치고 선임과 함께 밖으로 나왔는데, 노을이 지고 있었고 선선한 바람이 불어온 것으로 기억된다. 그리고 선임에 한마디도 기억난다. “야~ 집에 오니까 좋다~ 그치?” 그랬다. 그때 우리의 집은 내무반이었다.



집은 내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 있는 곳이다.

어깨에 짊어진 군장도 불편한 생활도 무거운 몸도, 다 내려놓고 편하게 쉴 수 있는 곳이다. 군대에서 경험한 집은 나에게 이런 의미였다. 지금 집도 그렇다. 밖에서 쌓인 여러 가지 짐을 내려놓고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곳이다. 많은 사람이 집을 이렇게 여기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러니 원해서 집을 떠난 여행이 좋은 이유가, 돌아올 집이 있기 때문이라 말하지 않았겠는가? 집이 안정적이지 않으면 모든 게 불안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가화만사성'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집은 물리적인 공간 이외에 마음에 쉼을 가져다주는 그런 곳이라는 말이다. 몸과 마음을 분리해서 생각할 순 없지만, 사람이 추구하는 건 결국 마음이 쉴 곳을 찾는 듯하다. 최근에 만난 사람들에 이야기를 들어봐도 그렇다. 그들이 찾는 곳은 마음이 쉴 곳이다.



내 마음이 쉴 집은 어디인가?

앞서 말한 것처럼, 사람들은 마음이 쉴 곳을 찾는다. 어떤 곳을 갔을 때 혹은 어떤 것을 할 때 마음에 쉼을 느낀다. 일상적으로 표현하면, 작은 의미에서,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마음에 쌓여있던 짐을 내려놓거나 찌든 때를 벗겨내는 방법 말이다. 안타까운 건, 이런 방법들이 일시적인 해소 방법이지, 근본적인 방법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잘못하면 중독으로 이어져, 약으로 사용한 방법이 독이 되는 일도 있다. 그래서 근본적으로 해소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나에게는 이런 집이 있다.

신앙이 그렇고, 신앙 안에서 하는 찬양이 그렇다. 요즘도 그런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노주사 청사희망'이 그것이다. 두 시간가량 진행되지만, 힘들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 에너지가 점점 더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몸의 에너지도 올라왔지만, 마음에 에너지도 올라왔다. 세상 안에서 받은 마음에 찌꺼기가 깨끗이 씻겨 내려가는 느낌이었고, 집안에 들어가 편안하게 쉬는 느낌이었다. 보통 10곡 정도를 부르는데, 모든 곡이 그랬다. 이런 느낌을 받을 때마다,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청년들이다.

마음에 쉴 곳을 찾지 못해 방황하는 청년들이 많다는 것을 직간접적으로 보고 듣는데, 참 안타깝다. 요즘 청년들에 대해 끈기가 없고 자기만 안다는 이야기도 많지만, 마음이 쉴 곳도 많지 않다. 그렇게 약으로 쓰려고 했다가 독으로 중독되기도 하고, 삶에 의지를 꺾기도 한다. 오픈 채팅방 <청년 리더 성장학교>를 만든 이유도 여기에서 시작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힘겨워하는 청년들이, 방향을 안내해 주는 누군가를 만나면 어떨까?

안개가 걷히는 기분이 들지 않을까?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할지 알게 되면 마음이 어떨까?

그 상태가 곧 마음에 쉼을 주지 않을까?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과정과 그 과정에서 만나는 상황들로, 마음이 쉴 수 있는 집을 찾지 않을까?


많은 청년이 마음 쉼터를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내 마음의 쉼터는 어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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