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보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기운, 에너지
내가 알고 있는 게 전부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자기만 그렇게 생각하면 그나마 다행이겠지만, 강요까지 한다. “이게 더 좋아!”, “이게 더 맛있어!”, “이게 더 좋은 생각이야!”, “이게 옳아!” 등등 타인의 취향이나 생각은 안중에도 없다. 취향에 관련된 거라면 어느 정도 이해는 된다. 자기가 좋은 느낌을 받았고 맛있게 먹은 것을 권유하는 건, 생각하는 마음에서 하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너무 과하게 해서 권유가 아닌 강요가 되는 게 부담스럽긴 하지만 말이다. 취향이든 생각이든 가장 큰 문제는, 자기가 “이거다!”라고 생각하면, 이거여야 하고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도록 강요한다는 사실이다. 다름이 아닌 틀림으로 인식하고 고치려고 한다. 그러니 부딪힐 수밖에 없고 심하면 다툼으로 이어진다.
공동체에서 발생하는 흔한 부딪힘은 이렇게 시작된다.
내가 아는 게 옳은데 내 앞에 있는 사람은 다른 이야기를 한다. 의견을 내는 것뿐인데, 자기 의견과 다르니 공격으로 받아들인다. 공격하면 어떻게 하는가? 방어하게 된다. 그 말을 잘 듣고 무슨 의미인지 해석하려는 노력은 하지 않고, 어떻게든 방어하려고만 한다. 그리고 바로 반격에 들어갈 준비를 한다. 말에서 모순된 점이나 허점을 찾아 그 지점을 후 짚고 들어간다. 공격과 방어 그리고 공격이 반복되는 사이, 이들 사이에 간격은 점점 벌어진다. 각도가 틀어진 평행선처럼, 시간이 약이 되는 게 아니라 독이 된다. 이때는 서로의 생각을 내려놓고 상대방의 생각을 듣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돼야 관계가 개선된다. 하지만 그놈의 자존심이 뭔지 절대 굽히려 하지 않는다. 지는 거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기고 지는 게 뭐라고 말이다. 진짜 전쟁도 아니고 지면 많은 것을 잃는 것도 아닌데 집착한다.
무엇이 우리를 그렇게 만드는 걸까?
무엇이 우리를 그토록 공격적으로 그리고 집착하게 만드는 걸까? 에너지로 설명할 수 있을 듯하다. 예를 들어 이런 거다. 오래전에 들은 이야기인데, 매우 공감됐다. 남자와 여자는 하루에 사용할 수 있는, 단어의 수가 다르다고 한다. 그걸 다 소비하지 않으면 어떻게라도 소비해야 직성이 풀린다고 한다. 남자는 5천 단어이고, 여자는 2만 단어이다. 직장 생활을 하는 남자와 주부로 있는 여자가 있다. 남자는 직장 생활을 하면서 이미 5천 단어를 다 써버린다. 그래서 퇴근하면 더는 말하고 싶지 않게 된다. 에너지가 고갈된 거다. 하지만 주부로 있는 여자는 어떤가? 주변 사람들과 친교 시간을 가졌다면 그나마 낫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5천 단어도 사용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남자가 들어오면 그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2만 단어를 채워서 에너지가 소진돼야, 짐을 내려놓은 듯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이미 에너지를 다 사용한 남자와 이제 에너지를 소비해야 할 여자 사이가 마주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기보다, 자기를 이해해주길 바라기 때문에 다툼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지만, 20년도 더 된 예전에는 보통 부부의 모습이 이랬다고 봐야 할 거다. 종일 일 하느라 피곤한데 계속 말 시켜서 피곤하다는 남자와 종일 대화할 상대도 없어서 이제 말 좀 하려는데 받아주지 않아 속상하다는 여자의 갈등 말이다.
사람은 하루 동안 사용해야 할 에너지가 있다.
어디에 사용하더라도 소진해야 할 에너지가 있는 거다. 그래야 다시 재충전되고 새롭게 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다. 에너지를 사용하지 못하면 어떻게라도 사용하려는 곳을 찾게 된다. 의식적이라기보다 본능적으로 그렇다. 아기의 모습을 보면 어떤가? 어떻게든 자기가 사용해야 할 에너지를 소비해야, 곤히 잠이 든다. 그래서 아이를 키우는 집은 낮에 실컷 놀린다. 그래야 밤에 잠을 오래도록 자기 때문이다. 하루에 사용해야 할 에너지를 사용하고자 하는 본능은, 태어나서부터 가지고 난 것이라 볼 수 있다.
에너지는 방향성이 있다.
어느 분야에 에너지를 쓰면, 계속 그와 비슷한 곳에 에너지를 사용하게 된다. 책을 읽는 사람들은 책에 더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고,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은 운동에 더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게 된다. 생산적인 곳에 에너지를 사용하는 사람은 생산적인 곳에, 소비적인 곳에 에너지를 사용하는 사람은 소비적인 곳에 에너지를 사용하게 된다. 끌어당김의 법칙이 적용된다고 봐야 할까? 신기하게도 그렇다. 머리를 자르고 나오면 사람들에 머리를 쳐다보게 되는 것처럼, 그냥 그렇게 된다.
내가 사용하는 에너지는,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앞서 말했던 사람처럼, 누군가와 다툼하는 데 에너지를 주로 사용하는가? 아니면 자기 발전을 위한 곳에 에너지를 사용하는가? 에너지는 관성이 붙어서 한쪽으로 쏠리는 경향이 있다. 에너지의 방향을 바꾸기 위해서는 많은 에너지가 소비돼야 하는 걸 본능적으로 안다. 그래서 습관을 쉽게 바꾸지 못하는 거다. 내가 사용하는 에너지의 방향이 내가 원하는 곳이라면 다행이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지금이라도 에너지의 방향을 바꿔야 한다. 불안, 초조, 외로움, 두려움 등등의 에너지 초점이 맞춰져 있으면서 마음이 평안하기를 바라는 건 모순이다. 마음이 평안하기를 바란다면, 그럴 수 있는 곳으로 에너지의 초점을 맞추고 향해야 한다. 지금 내 에너지는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