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 수 없는 건 흘려보내고 어쩔 수 있는 건 지켜야 하는 흐름, 변화
<책은 도끼다>
인문학으로 광고하는 광고인, 박웅현 작가의 책 제목이다. 어울리지 않는 두 개의 단어, ‘책’과 ‘도끼’를 조합한 문장이다. 처음에는 이 문장이 어색하기도 했고, 어떤 의미인지 선뜻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작가의 설명을 듣고 나서는 “아! 그래서!”라는 생각이 강하게 내리꽂혔다. 깊이 공감했다는 말이다. 맞다. 책을 읽고 나서, “어, 그렇구나.”라는 밋밋한 느낌과 반응이라면, 굳이 책을 읽을 필요가 없다. 그 시간에 잠을 자거나 쉬는 게, 훨씬 생산적인 활동이라 볼 수 있다. 책은 전반적으로든 한 문장이든 어찌 되었든, 내 머리에 도끼가 찍히듯, ‘쿵’하는 울림이나 ‘찌릿’한 전율이 느껴져야 한다. 이 말은, 책에 모든 탓을 돌리라는 말이 아니다. 책은 분명 어떤 메시지나 느낌을 담고 있다. 그것을 발견하지 못한 건, 자신이라는 말이다.
책을 읽은 태도의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이렇게 설명할 수 있다. 책을 선택했을 때의 기대와 달리 ‘어! 뭐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뒤에 뭔가가 있겠지?’ 하며, 희망을 놓지 않고 끝까지 완주한다. 하지만 뭐가 없을 때의 허무함은 정말이지, ‘헐’하다. 여기서 책을 그냥 덮어버리면, 진짜 더는 뭐가 없다. 하지만, 책을 덮고 가만히 돌이켜보면, 뭐라도 하나가 올라온다. 스쳐 지났던 문장 하나가 올라올 때가 있다. 그러면 어디쯤이었는지 기억을 더듬어 그곳을 찾아서 들어간다. 보물찾기하듯 살피다 발견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책을 덮었을 때는 몰랐는데, 시간이 조금 지나고 문득 어떤 느낌이 올라올 때도 있다. 산에 오를 때는 오르는 데만 집중하느라 느끼지 못한 상쾌함이, 정상에 도착했을 때 올라오는 것과 비슷하다. 책을 집중해서 읽는 태도도 중요하지만, 무언가를 꼭 발견하고 만나겠다는 의지도 중요하다. 보려고 할 때, 보이는 법이니 말이다.
휴가 때, 독서법에 관한 책 3권을 읽은 적이 있다.
읽고 나서 새롭게 다짐한 게 있다. ‘하루 1권 읽기’다. 지금까지의 독서 습관이나 양으로 봤을 때, 충분히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물론 모든 책을 그렇게 읽은 순 없다. 시간을 두고 정독이나 묵독해야 할 책도 분명히 있다. 독서법에도 선택과 집중이 적용된다고 하니, 하루 1권 읽을 수 있는 책을 선별하고자 했다. 또 하나, 하루 1권이라고 해서, 한 번에 다 읽고 끝낸다는 의미는 아니다. 하루에 완독했지만, 다시 읽어야 할 책은 몇 번을 다시 읽을 마음이었다. 예전처럼 어떤 책이든 글자 하나하나 꼼꼼히 살피며 읽는 게 아니라, 문장과 문단 중심으로 쭉쭉 읽어 내려가고, 필요한 책은 몇 번을 다시 읽겠다는 말이다. 이런 독서법을 생각하기는 했는데, 잘 안됐다. 하지만 이번 독서법 책 몇 권을 읽으면서 그래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독서 고수들은 다 그렇게 한다고 하니 말이다.
<나는 죽을 때까지 지적이고 싶다>
그렇게 선택한 첫 책이다. 출근하면서 버스에서 좀 읽었는데, 과연 하루에 다 읽을 수 있을지 걱정스러웠고, 다 읽고 다시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번 읽고 접어둘 책은 아니라는 말이다. 철학 서적을 읽고 작가의 삶에 빗대어 쓴 글에서, 마침표가 아닌, 물음표가 느껴졌다. 작가도 곳곳에, 발자국을 남기듯, 질문을 남겨둔다. 대놓고 묻진 않지만 스스로 묻게 만든다. 그래서 이 책이 베스트 셀러가 됐는지도 모르겠다. 나에게 한 질문 중에, 가장 깊이 질문하고 싶은 질문이 있다.
“변해야 할 것은 무엇이고, 변하지 않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이 장의 소제목은 ‘변해야 할 것과 변하지 않아야 할 것’인데, 그 내용은 이렇다. “모든 만물은 변한다.”라고 주장하는 헤라클레이토스와 “절대 변하지 않는다.”라고 주장하는 파르메니데스가 있다. 전자의 주장은 이렇다. “우리는 같은 강물에 발을 두 번 담글 수 없다.” 일리 있는 표현이다. 흐르는 강물에서 발을 담그고 있으면, 물은 계속 흘러내려 간다. 발을 뺐다 담그지 않더라도, 담그고 있는 상태에도, 같은 강물이라 할 수 없다. 공감한다. 후자의 주장은 이렇다. 따뜻한 물을 부어 만든 레몬차가 있다. 시간이 지나서 레몬차가 식었다고 하면, 이것은 레몬차가 아닐까? 아니다. 식었어도 레몬차가 맞다. 변한 건 온도의 차이일 뿐, 레몬차라는 본질은 변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따라서 파르메니데스는 본질에 집중하라고 말한다. 이 역시 공감한다.
작가는, 자신에게 이렇게 질문한다.
“나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어떤 것을 남기고 어떤 것을 버릴까?” 이 질문은 곧 이렇게 묻는 것이라 말한다. “어떤 부분을 변화시키고, 어떤 부분을 유지할까?” 모든 만물은 변한다는 주장과 절대 변하지 않는다고 하는 주장 사이에서,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않고 균형을 이룬다. 이런 태도에 공감한다. 싸움은 대부분, 흑백논리라고 하는 이분법적 구분 때문에 일어나지 않는가? 아닌 건 아니라고 주장도 해야겠지만, 가치를 따질 때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 우문현답이라고 했던가! 둘 중 하나가 아니라, 둘 다를 포용하는 마음도 필요하다.
시간 흐름에 따라 변하는 건, 어쩔 수 없다.
거스를 수 없는 그 무언가가 있다. 사람은 태어나서 성장하고 어느 시점에서는 퇴화하면서 죽음을 맞이한다. 이 순리를 거스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변해야 할 것과 변하지 않아야 할 것은, 내 의지에 따라 결정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 말은, 내 의지에 따라 변할 수도, 아닐 수도 있다는 거다. “어쩔 수 없었어!”라고 말하지만, 마음에 들든 그렇지 않든, 결국 내 선택이다. 원하는 선택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 많아 안타까울 뿐이다.
두 철학자의 말을 빌려, 이렇게 질문해 본다.
“세상에 모든 것은 변하지만, 그 안에서 변하지 않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누가 한 말인지 기억나진 않는데, 인상적인 말이 있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진리는 오직 하나, 세상에 모든 것은 변한다는 사실이다.” 헤라클레이토스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말이다.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충분히 공감되는 말이다. 세상 모든 게 변하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파르메니데스의 본질에 집중하라는 말을 새길 필요가 있다. 본질은 어떤 포장을 하거나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본래 그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변하지 않아야 하는 그것이라는 말이다.
“변하지 않아야 하는, 그것은 무엇인가?”
이런 질문으로 바꿔볼 수 있겠다.
“간직하고 싶은 내 마음의 기준은 무엇인가?”
“다른 것은 다 잃어도 잃고 싶지 않은 그것은 무엇인가?”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은 마음의 중심은 무엇인가?”
무엇이 떠오르는가? 떠오르는 게 있다면, 그것을 기준으로 삼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하면 된다. 소중히 간직하며 생각과 마음의 중심에 두면 된다. 그렇게 변하지 않도록 간직한 그것이, 결국 자신을 지켜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