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은, 내 안에 한계를 걷어낼 때 만들 수 있다.

마음에서 짓누르는 한계를 뚫고 나아가고자 할 때 드러나는 선물, 기적

by 청리성 김작가

우리는 한계에 부딪힌다는 표현을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역량으로는 도저히 어찌할 수 없을 때, 이렇게 표현한다. 한계에 부딪힌다는 말을 들으면, 바로 생각나는 곤충이 있다. 벼룩이다. 벼룩은 자기 몸 크기에 50배에서 100배 이상까지 점프할 수 있다고 한다. 물리적으로 불가능할 것 같은데 그걸 해낸다고 하니, 미물이지만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벼룩의 점프력을 줄이는 방법이 있다. 뚜껑이 있는 통에 넣어두는 거다. 그러면 뚜껑에 계속 부딪히면서 학습이 된다. 여기까지만 뛰어야 한다고 말이다. 학습된 다음에는, 뚜껑을 열어도 그 높이까지만 뛴다. 심리적 뚜껑이 높이에 제한을 두는 거다.



한계에 부딪히면서, 한계를 설정하게 된다.

처음 몇 번은 의욕적으로 도전하지만, 몇 번에 실패를 경험하고 나서는, 포기하게 된다.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그 정도까지만 노력하고, 더는 노력하려 하지 않는다. 어차피 안 될 건데, 시간과 노력을 써봐야 자기 손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전문용어로 학습된 무기력이라고 한다. 사람들로 인한 학습된 무기력 사례가 있어 소개하면 이렇다. 잘 아는 후배가 회사 관리자로 있는데, 한 번은 나에게 하소연했다. 입사하는 직원들이 몇 달 있지 못하고 퇴사한다는 거다. 일을 가르쳐서 써먹을 만하면 나간다니 얼마나 속상했을까! 이런 상황이 반복되니, 일을 가르쳐줄 의욕이 생기지 않는다며, 앞으로는 좀 지켜보고 일을 가르쳐 줄 거라 했다. 이 말을 듣고, 나는 잘했다고 했을까? 공감해 주면서 잘했다고 해야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러지 않았다.



악순환의 반복이라 했다.

일을 가르쳤는데 나가니 속상하고 의욕이 나지 않는 건, 당연하다. 심정을 전혀 모르는 건 아니다. 나도 많이 경험했으니 이해한다. 그렇다고 일하러 온 직원에게 일을 가르쳐주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지금까지와는 다른 직원이 들어왔다고 하면 어떻게 될까? ‘이 회사 뭐지?’ 하며 나갈 가능성이 크다. 그러면 후배는 이렇게 생각할 거다. ‘그래! 역시, 일을 안 가르쳐주길 잘했어!’ 자기 선택이 옳았다며 뿌듯(?)해할 거다.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는 눈치였다. 그래서 말해 줬다. “이건 악순환이다. 금세 나간다고 일을 가르쳐 주지 않는 게 답이 아니라, 왜 나가는지 명확한 이유를 파악해야 한다. 금방 나갈 거라 일을 가르치지 않는다면, 아예 뽑지 않는 게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


후배가 잘못 생각하는 게 뭘까?

직원이 금방 나가는 상황을, 실패로 정의하고 결과로 판단한 거다. 이유는 달라도, 금방 나갈 수 있다. 이것도 흐름을 타는지 그런 분위기일 때는, 너도나도 나간다. 이를 실패라 할 순 있지만, 결과는 아니다. 있을 수 있는 과정이라는 말이다. 실패가 결과라고 단정 지으면, 더는 방법이 없다고 단념한다. 그러면 답을 찾기보다, 안 되는 이유와 핑계를 찾는다. 사람의 뇌 구조가 그렇게 되어있다. 내가 생각하는 방향으로 시선이 향하고, 그렇게 해석한다. 그리고 그걸 믿는다.


실패는 과정이지, 결과가 아니다.

실패는 안 되는 과정 중 하나일 뿐이고, 성공으로 가기 위한 과정이다. 가장 좋은 예로, 에디슨의 인터뷰 장면을 들 수 있다. 수천 번 실패 끝에 전구 발명에 성공한 에디슨을 기자가 찾았다. 기자는, 그렇게 많이 실패하면서도 어떻게 연구를 계속할 수 있었냐고 질문했다. 수천 번 실패를 겪으면서도 포기하지 않은 이유가 궁금했던 모양이다. 누구라도 궁금해할 수 있는 질문이다. 상식적으로는, 진작에 그만뒀어야 했기 때문이다. 에디슨은 이 질문에, 자신은 실패한 것이 아니라 안 되는 수천 가지 사례를 발견한 것뿐이라고 말했다. 너무 멋지지 않은가? 실패한 것이 아니라, 안 되는 사례를 발견했다는 말은 곧, 과정으로 인식했다는 말이다.



부딪히면, 더는 가고 싶지 않은 마음이 생긴다.

다시 부딪히는 경험을 하고 싶지 않고, 부딪히는 아픔과 고통을 겪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을 능가하는 모습도 있다. 높이뛰기나 역도 같은 기록 스포츠에서 이런 장면이 나온다. 모두, 도전할 기회가 3번 주어진다. 다 성공하면 좋겠지만, 중간에 실패하게 된다. 마지막 기회가 남았을 때 보통은 이전에 실패한 기록 혹은 좀 낮춘 기록에 도전한다. 하지만 실패한 기록보다 더 높은 높이와 무게를 설정하는 선수가 있다. ‘아니! 저것도 실패했는데, 더 높은 기록에 도전한다고?’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도전이나 해보려는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그 기록을 보기 좋게 성공한다. 소름이 돋았다. 성공한 선수의 얼굴도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중계하는 사람은 물론 지켜보던 많은 사람도 놀란다. 누군가는 기적이라고까지 한다.


기적 맞다.

실패한 기록을 뛰어넘었다는 건, 기적이다. 분명 실패한 기록이 머릿속에 남았을 거다. 벼룩이 부딪혔던 뚜껑처럼, 마음에 계속 부딪히는 한계가 있었을 거다. 사람들이 가장 넘기 힘든, 마음에 한계다. 그 한계를 보기 좋게 넘었으니 기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적은, 두려움을 넘어서려는 사람에게 드러난다. ‘에이, 안 되겠지. 뭐.’라며 기적을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드러나지 않는다. 기적을 바라는가? 그럼, 기적을 믿어야 한다. 내 안에 한계가 나를 짓누르려고 할 때, 이렇게 외쳐보자! “그래! 어디 한번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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