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상상하고 상상할 때 그렇게 이루어지는 흐름, 기세
‘기세(氣勢)’라는 말이 유행처럼 퍼진 적이 있다.
이 단어는 한자 그대로, 기운이 뻗어 나가는 상태를 말한다. 기세를 탔다는 것은, 기운이 뻗어 나가는 상태가 유지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좋은 흐름을 유지하고 있다는 말과도 같다. 어디서 이 단어가 많이 언급됐을까? 프로야구에서다. 이 단어를 유행시킨 팀은 바로, 롯데 자이언츠다. 23년 상반기에 롯데의 질주가 무서웠다. 순위권 경쟁에서 1위에 올라설 정도로, 그 기세가 대단했다. 1위에 올라선 게 몇 년 만이냐며, 그 기세를 이어가길 원했다. 시즌 우승까지 상상하지 않았을까?
내가 아니고, 롯데 팬들이 말이다.
그랬던 롯데가 주춤하면서 순위가 계속 내려갔다. 롯데 팬들은 큰 기대를 했을 텐데…. 그때 기세를 타고 있던 다른 팀이 있었다. 기아였다. 한동안 주춤했던 기아가 ‘기세’를 이어받았다. 6연승을 달릴 때만 해도, 4위 탈환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중계하는 해설자들도 기아의 기세는 정말 대단하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중요한 건 내용이었다.
6연승을 한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6연승을 했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말이다. 타고 있는 기세가 일시적인지, 앞으로도 기대할 수 있는지 판단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경기 중 자막으로 그 내용이 나왔다. 5연승을 하는 동안 각 팀에 1, 2선발을 모두 무너트렸다. 아! 참고로 1, 2 선발이라고 하면, 그 팀에서 가장 잘 던지는 2명의 선수라고 보면 된다. 심지어 그 전 경기에서는 당시 리그 최고 투수라고 불리는 선수를, 역대 최다 실점인 7실점으로 3회에 강판시켰다. 그 전에는, 그 선수에게 7회 동안 단 1점도 내지 못했는데 말이다. 이후 9연승까지 했지만, 선수들의 부상으로 결국 6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기세는, 누적된 결과가 쌓이면서 이루어지는 모습이다.
한 번 두 번 세 번이 쌓이면서, ‘어? 뭐지?’라며, 그것이 기세라는 것을 알게 된다. 야구에서도 한두 번 연승했을 때 기세라는 표현을 하지 않는다. 4~5연승 정도 되니 기세라는 표현을 썼고, 6연승 할 때 몰아치는 타자들을 보며, 한마디로 무섭다고 말했다. 기세가 무섭다는 말이다. 야구는 흐름의 스포츠다. 다른 스포츠도 그렇지만, 서로가 대결하는 구도로 진행된다. 주도권을 가지고 있는 팀의 흐름은 좋은 방향으로, 그렇지 않은 팀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흐른다. 뭘 해도 되는 팀과 뭘 해도 안 되는 팀으로 나뉘는 거다. 야구에서 유행하는 표현이 있었다. “왜! 그런 날 있잖아?”라는 표현을 시작으로 자기가 원하는 결과를 적는 거다. 예를 들어 “왜! 그런 날 있잖아? 6연승 할 것 같은….” 기세를 타고 있다는 것을 이렇게 표현하는 거다.
기세는 야구에만 있을까?
아니다. 삶 어디에나 있다. 기세를 타기 위해서는 여러 요건이 잘 맞아야 떨어져야 한다. 야구는, 활발한 공격력과 철저한 수비력이 바탕이 돼야 한다. 거기에 운까지 따라주면, 아무도 그들을 막지 못할 것 같은 무서운 기세로 몰아친다. 팀플레이에서는 그렇다고 치자. 그럼, 개인은 어떨까? 개인이 기세를 타기 위해서는 무엇이 중요하겠냐는 말이다. 정신이다. 나의 정신이 어디를 향하고 있으며 어디로 가기 위해 노력하느냐에 따라, 기세의 분위기가 달라진다. 그렇다면, 정신의 방향은 뭘까? 쉽게 말하면, 머리에 어떤 생각이 담겨 있느냐는 의미다. 이 표현이 그리 좋은 느낌으로 다가오지 않는 이유는, “도대체 네 머릿속에는 뭐가 들었냐?”는 말을 들었기 때문일 거다.
여기서 중요하게 물어야 할 것이 있다.
머릿속에 들어있는 바로 그것! 그것은 어디에서 왔냐는 질문이다. 그래서 이렇게 질문해 볼 수 있다. ‘지금 내 머릿속에 들어있는 건, 어디에서 왔을까?’ 그냥 내가 생각한 건데 어디서 왔냐니? 이 질문이 당황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지금 말하는 생각은 그냥그냥 떠오르는 생각을 말하는 게, 아니다.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 즉, 궁극적으로 추구하려는 생각을 말하는 거다.
어디서 왔을까?
보통은 외부의 자극이나 영향으로 비롯됐다고 말한다. 내가 보고 듣고 느낀 것이 내 안에 들어와서 생각을 만들었다고 말이다. 정말 그럴까? 그렇게 생각하는 건 당연하다. 나도 그랬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와 반대다. 내가 하는 생각이 나를 보게 하고 듣게 하고 느끼게 한다. 머리에 뭐가 들었느냐에 따라, 외부의 자극을 거른다는 말이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는 게, 이 이유 때문이다. 이렇게 설명할 수 있다.
오랜만에 이발하고, 미용실을 나왔다.
미용실을 나서는 순간부터 눈에 들어오는 건 뭘까? 식당 간판일까? 지나가는 버스 혹은 오토바이일까? 생각해보자. 자신이 미용실에서 나왔을 때를 말이다. 사람들의 머리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나? 그 머리를 보면서, 머리가 기니 짧니 파마가 어울리니 아니니 하는 등 머리 감정사라도 된 것처럼, 사람들에 머리를 살폈을 거다. 자! 새 신발을 신고 나왔다고 하자. 그럼, 뭐가 눈에 들어오는가? 그렇다. 사람들 신발이 눈에 들어온다. 구두, 운동화, 스니커즈 등등 다양한 신발 종류가 눈에 들어온다. 마찬가지로, 어울리니 아니니 괜찮으니 이상하니 등등을 따지면서 말이다.
다시 정리해 보자.
기세를 타기 위해서는 정신이 중요하다. 정신은 머리에 어떤 생각이 담겼느냐를 말한다. 그 생각은 외부에서 들어오는 자극에 의한 것으로 생각하지만, 아니다. 머리에 들어있는 생각에 따라 외부 자극이 선택적으로 들어오는 거다. 이 말은, 내가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 내가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이 달라진다는 말이다. 결론은 이렇다. 원하는 것이 있는가? 그렇다면 그것이 이루어졌다고 상상한다. 실제처럼 상상한다. 과거형도 미래형도 아닌, 현재형으로 상상한다. 그렇게 상상하고 또 상상한다. 그러면 그 모습이 내 눈에 들어오는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어떤 기세를 원하는가?
그 기세를 위해 어떤 상상을 하고 있는가? 원하는 것이 아닌, 원하지 않는 것을 상상하고 있지는 않나? 그렇게 되지 않았으면 하고 말이다. 그러면 안 된다. 그렇게 되지 않았으면 하고 상상하지만, 되지 않은 방향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원하는 것을 상상해야 한다. 원하는 기세를 상상해야 하고, 원하는 방향을 상상해야 한다. 그렇게 원하고 이루는 사람은 계속 이루면서 감사하는 삶을 살 것이고, 원했지만 이루지 못하는 사람은 계속 이루지 못해 원망하고 한탄하며 살게 될 거다. 어떻게 살고 싶은가? 결정했으면 그렇게 하면 된다. 상상하는 건, 그 어떤 핑계도 통하지 않는다. 변명에 여지가 없다는 말이다. 그러니 그냥 하면 된다. 어두운 감정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하면서, 계속 어둠에 갇힌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밝은 곳으로 나오고 싶다면, 어둠이 아닌 밝음을 상상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