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움이 곧 평화로 가는 길

마음에 쌓이는 벽돌을 내려놔야 찾아오는, 마음의 평화

by 청리성 김작가

<원래 그런 슬픔은 없다>

허찬욱 신부님이 쓰시고 ‘생활성서사’에서 펴낸 책이다. 잡지에 연재한 글 중에, ‘슬픔’이라는 공통 분모를 가진 글을 모아서 펴냈다고 소개한다. 저자는 모든 글 들을, ‘작은 이야기’라고 표현하셨다. 잔잔한 울림을 주고 싶은 마음에서였다고 한다. 제목에 첫 단어, ‘원래’에는 깊은 의미가 담겨 있는 것으로 읽혔다. 예전부터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래야 하는, 정해져 있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무엇이? 슬픔이. 사람마다 슬퍼하는 방식이 다르듯이 타인의 슬픔을 이해하는 일은, 타인을 마주할 때마다 매번 새로이 시작해야 한다고 필자는 강조한다. 누군가 슬픔에 빠져 있을 때, “다 이해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과연 다 이해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슬픔은, 그 슬픔에 빠져봤거나 빠져 있는 사람이 그나마 조금은 이해한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너무 쉽게 이해한다는 말을 사용하지 않았으면 하는 게, 저자와 공감하는 부분이다.


슬픔은 다른 단어로도 읽힌다.

고통, 아픔, 외로움, 두려움 등, 슬픔이라는 감정을 일으키는 원인 혹은 감정이 그렇다. 평화롭지 않은 상태로 풀이해도 틀리지 않겠다. 우리는 크고 작은 슬픔에 빠져봤거나 빠지며 살아낸다. 금방 훌훌 털고 일어나는 슬픔도 있고, 몇 년 혹은 몇십 년 품어 안고 있다가 놓아주는 슬픔도 있다. 놓아준다는 표현보다, 잠시 잊고 지내는 힘이 생겼다고 하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각자가 슬픔을 마주하는 방법과 놓아주는 방법이 다르니, 그 시점도 다르다고 보는 게 적절할 듯하다. 따라서 타인의 슬픔과 마주하는 태도를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하기도 하다. 너무도 큰 슬픔일 때 특히 그렇다. 이럴 때 어떻게 뭐라도 해주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 좋은 방법을 이 책에서 소개한다.


“우리는 그저 가만히 손을 잡아 주거나, 기대어 울 수 있는 어깨를 내어 주거나, 가만히 등을 토닥여 줄 수 있을 뿐입니다. 그것도 아니라면 울부짖는 소리를 먹먹한 마음으로 들어 줄 뿐입니다. 이외의 다른 애도의 방법을 저는 알지 못합니다. 그 외 애도의 순간을, 저는 모릅니다.”



말보다는, 행동이다.

곁에 가만히 머물러 주는 행동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위로라는 말이다. 무엇을 하려고 하지 말고 하지 않도록 마음을 다스릴 필요가 있다.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의무감에 사로잡힌, 자기만족을 위한 위로는 매우 위험하다. 특히 조언이랍시고 무심히 던지는 말은 폭력이 될 수도 있다. 자기는 뭐라도 했다고 뿌듯할지 모르지만, 타인의 마음은 더 뒤집혔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저자는 이런 사람을 표현하는 용어를 소개한다. ‘욥의 위로자들’이다. 겉으로는 고통 중에 있는 사람을 위로하려는 것처럼 보이나, 결과적으로는 상황을 더 악화시키는 사람들을 이른다고 한다. 차라리 하지 않았으면 좋을 말들이 세상에 너무도 많이 뿌려지는 현실이 참 안타깝다.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가 맞아 죽는다는 말처럼, 그렇게 마음에 상처를 입는 사람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언제든 편안하게 기댈 수 있어야 한다.

고통이든 아픔이든 외로움이든 두려움이든, 슬픔이 올라오는 상황에서 그렇게 쉴 수 있는 곳이 있어야 한다. 사람이든 공간이든 그 무엇이든, 그렇게 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직원 면접을 볼 때 꼭 물어보는 게 있다. “스트레스를 푸는, 자신만의 방법이 있나요?” 실제 하는 사람은 어떻게 하는지 명확하게 이야기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얼버무리거나 일반적인 것을 나열한다. 이건 매우 중요하다. 스트레스를 푸는 자신만의 방법이 있는 사람은 어떤 고난이 와도 다시 일어설 힘을 얻는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금세 꺾이기 쉽다. 고난을 흘려버리거나 털어내지 못하고, 떠안고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 벽돌을 준다고 하자.

어느 정도 쌓이면 어딘가에 내려놓아야 한다. 그렇지 않고 계속 받아안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무너져 내린다. 팔에 힘이 빠져 무너질 수도 있고, 벽돌에 자신이 깔릴 수도 있다. 고난을 마주하는 방법도 이와 같다. 누군가 고난이라는 벽돌을 주면 계속 받아안고 있지 말고, 어딘가에 내려놔야 한다. 스트레스를 푸는 자신만의 방법이 필요한 이유다. 다만 술만 마시거나 잠만 자는 건 오히려 마음이 더 가라앉을 수 있다. 마음을 편안하게 하거나 땀을 쏟을 수 있는 활동적인 것을 선택하면 좋겠다. 흘려버리든 쏟아버리든 할 수 있는 것 말이다. 최근에는 명상이 좋은 방법으로 소개되고 있다. 실제 해보면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낀다. 호흡을 잘 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에 안정을 가져온다. 내가 먼저 바로 서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기댈 수 있도록 어깨를 내어줄 수 없다. 같이 무너져 내릴 수 있다. 그러니 누구보다 내가 먼저 바로 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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