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평온하길 원하시나요?

내 앞에 벌어진 상황에 이유를 찾을 때 얻을 수 있는 마음의 상태, 평온

by 청리성 김작가

어떤 상황에도 잘 지내는 비결이 있을까?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내 앞에 벌어지는 상황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마음을 평온하게 유지하는 상태 말이다. 참 어려운 일이다. 과연 가능할까?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옛 성인(聖人)들은 이런 상태에 머물렀을지 몰라도, 평범한 사람이 도달하기에는 불가능한 곳이라 여겨진다. 엄두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러면 좋겠다는 생각은 든다. 언제나 한결같이 평온한 마음을 유지한다면, 그보다 좋은 게 있을까 싶다. 사람들이 다양한 활동을 통해 마음을 챙기는 이유가, 어쩌면 이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마음이 평온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의미가 없다.

우리는 한 번쯤 이런 경험을 했다. 값비싼 음식이 앞에 놓여 있어도, 떠나지 않은 걱정을 안고 있다면, 음식 맛을 느낄 수 없다. 음식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분간조차 되지 않는다. 반대로 지금 먹을 게 김밥 한 줄밖에는 없다. 하지만 마음이 매우 평온하다. 이때 먹는 김밥은 단돈 몇천 원에 샀지만, 앞서 말한 값비싼 음식보다 더 큰 가치를 느낀다. 이것만 보더라도, 중요한 건 외부에 놓여 있는 가치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마음이 그 가치를 결정한다. 아! 값싼 음식을 먹는 데 마음도 평온하면, 최고겠지만 말이다.




마음이 평온하게 유지되려면, 어떤 상태여야 할까?

넓고 깊어야 한다. 몇 가지 예를 들어 설명하면 이렇다. 웅덩이에 고여 있는 물이나 작은 강물은,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요동친다. 돌을 던지면 온 물이 다 움직이고 뛴다. 하지만 넓은 강이나 바다를 보면 어떤가? 웬만한 바람에도 크게 흔들림이 없다. 돌을 던지면 떨어진 지점 근처를 제외하고는 고요하다. 그래서 넓고 깊어야 한다. 외부에 어떤 상황이 내 마음에 떨어져도 평온을 유지하려면, 넓고 깊어야 한다.


다른 비유도 있다.

한 이야기를 빌려 설명하면 이렇다. 사소한 것에도 불평을 가득 담고 투덜대는 제자가 있었다. 한번은 스승이 그 제자를 불렀다. 제자가 스승을 찾았는데, 앞에는 물이 담긴 그릇과 소금 한 줌이 있었다. 스승이 제자에게 소금을 그릇에 담으라고 했다. 제자가 소금을 그릇에 담자, 스승은 제자에게 그 물을 마시라고 했다. 제자는 시키는 대로 물을 마셨는데, 바로 물을 뱉어냈다. 너무 짰기 때문이다. 제자는 오만상을 지으며 스승을 마음으로 원망했다.


스승은 제자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넓은 호수에 다다르자, 스승이 제자에게 똑같이 소금 한 줌을 호수에 넣으라고 했다. 제자가 호수에 소금을 넣자. 이번에는 호숫물을 마시라고 했다. 제자는 스승의 말에 따라 호숫물을 마셨다. 스승이 제자에게 물었다. “호숫물 맛이 어떠냐?” 제자가 대답했다. “맑고 시원합니다!” 그러자 스승이 제자에게 말했다. “같은 소금의 양이지만 어디에 넣느냐에 따라 짠맛을 느끼기도 하고 아무런 맛도 느끼지 못하기도 한다. 그러니 소금을 탓하지 말고 자신이 그릇의 물인지 호숫물인지를 먼저 헤아려야 한다.”


소금의 짠맛을 느끼는 건, 소금 자체가 아니다.

소금이 담기는 물의 양 때문이다. 우리는 당연히 짠맛을 내는 소금이 원인이라 여긴다. 하지만 호수처럼, 넓고 깊으면 소금의 짠맛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 간단하지만 매우 의미 있는 이야기다. 외부에서 벌어지는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나 내 마음을 불편하게 할 때, 생각해 보면 좋겠다. 문제의 원인이라 여기는 소금 때문이 아니라, 내 마음의 넓이와 깊이가 좁고 얕아서 그렇게 느끼는 건 아닌지 하고 말이다.



마음의 넓이와 깊이는, 어떻게 확장할 수 있을까?

아! 외부의 현상이 불편하게 여겨지는 이유부터 설명해야겠다. 불편했던 상황을 떠올려 보자. 다양한 이유가 있었겠지만, 하나로 귀결된다.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은가? 나는 오른쪽으로 가고 싶은데, 왼쪽으로 가야 할 상황이 생긴다. 가벼운 예 하나를 들면, 나는 순댓국으로 해장을 하고 싶은데, 같이 밥 먹는 사람들이 파스타를 먹으러 가자고 한다. 어떤가? 방향을 틀 수 있는 상황이라면 틀어보겠지만, 그러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소 끌려가듯 끌려가게 된다. 가지 못한 순댓국집을 떠올리면서 말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불편한 마음은 쓰레기통에 던져버리고,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는 거다. 내가 원하는 순댓국집이 아니라 파스타집에 온 이유가 있겠거니 하고 생각하는 거다. 별 이유를 찾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생각지도 못한 이유를 발견하기도 한다. 생각보다 해장이 잘되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새로운 해장 식단을 발견했다고 해야 할까? 좋은 분위기가 마음에 들어, 다음에는 연인과 함께 오면 좋겠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평소에 이런 곳을 잘 다니지 않던 사람이라면, 이런 취향의 사람들과 함께 올, 식당 리스트를 하나 추가하게 된 거다. 그 밖에도 이유를 찾으려고 하면 더 많이 찾을 수 있다.


중요한 건, 이유를 찾았다는 게 아니다.

이유를 찾을 수 있는, 마음 상태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이다. 계속 가지 못한 곳을 생각하며 앉아 있으면, 어떤 마음 상태에 머물겠는가? 뭐든 마음에 들지 않는다. 맛도 그렇고 분위기도 그렇다. 왁자지껄 떠들어대는 사람들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렇게 먹다가 체하기까지 하면 정말 최악이 된다. ‘이봐! 괜히 여기 와서….’ 불만은 절정에 이른다. 아무것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누구 손해일까? 자기만 손해다. 이유를 찾지 않고 불만에 휩싸여 있으면 자기만 손해다.



처음부터 쉽게 되진 않는다.

연습해야 한다. 자주 가야 길이 된다. 한두 번 지나갔다고 길이 되진 않는다. 완만한 길을 만들기 위해서는 자주 다녀야 한다. 연습이 그렇다. 의식적으로 이유를 찾는 연습을 해야 한다. 그렇게 하다 보면 작은 이유를 발견하게 되면서, 신기한 느낌을 받는다. 성공 경험이랄까? 그러면 다음에는 조금 더 수월하게 의식하게 된다. 또 다른 성공 경험은 더 자주 그 길을 가게 만든다. 그렇게 잘 다져진 길이 되면, 의식하지 않아도 그 길로 발길을 옮기게 된다. 이렇게 마음이 평온한 상태에 머물도록 자기를 이끈다. 그냥 자연스럽게 되는 건 없다. 내가 발길을 옮기는 노력과 연습을 해야, 다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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