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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리성 김작가 Mar 09. 2024

감사는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그 자체로 충만히 느껴야 하는 마음, 감사

감사 일기를 쓴지, 100일이 되는 날이었다.

일기라고 해서 장문의 서술형으로 쓰는 건 아니다. 간단하게 한 문장으로, 감사한 일 5가지를 적는 거다. 더 있으면 더 적기도 한다. 우연한 계기로 가족 모두가 시작했는데, 현재 생존한 사람은 나 혼자다. 이렇게 저렇게 설득하고 꼬시고 윽박질렀지만, 한 번 끊긴 감사 일기를 다시 연결하기가 만만치 않다. 다들 한창 잘 쓸 때는, 가족 단톡방에 쓴 내용을 올려 인증했다. 하지만 지금은 나 홀로 인증하고 있다. 그것으로, 다시 쓰자고 알람을 보내고 있다. 모두 인지하고 있지 못하는 것 같긴 하지만 말이다. 그래도 언젠가는 한 명 두 명 다시 시작하면서 불씨가 되살아나리라 희망을 품어본다.    

 


감사 일기를 쓸 때, 몇 가지 에피소드도 있었다.

모두가 흔쾌히, 감사일기 쓰는 것에 동참한 이유가 그 원인이다. 용돈이다. 아! 아내는 나와 함께 아무런 보상이 없는 것으로 했다. 감사 일기를 쓰는 조건으로, 용돈의 1.5배를 걸었다. 한 달 간격으로 정리하는데, 하루도 빠짐없이 쓴 아이는 1.5배를 받는 거다. 첫 달은 모두 받았다. 약간의 아량을 베풀어서 그렇게 했다. 아량이라는 것은, 시간이 늦어지는 것에 대한 인정이었다. 감사 일기는 매일 쓰는 것이니 그날을 넘기면 안 된다. 하지만 야행성인 아이들이 새벽에 올리는 날이 종종 있었다. 이것을 인정하고 다음 달은 자정 이전에 올리는 것만 인정하기로 했다.      


최대한 지키려고는 했지만, 살짝 넘기는 날이 점차 늘어났다.

심지어 다음 날 아침에 올라오는 날도 있었다. 두 달이 넘어가는 시점에서는 점점 올라오지 않는 날이 많아졌다. 누군가(?)는 아예 쓰지 않게 되었다. 이렇게 늘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규칙을 바꿨다. 용돈을 더 주는 것이 아니라, 쓰지 않은 날만큼 차감한다고 선전포고 한 거다. 손실 회피 성향이 강한 사람의 심리를 이용했다고 할까? 그렇게 선포하자 아이들이 살짝 긴장했는지 다시 잘 쓰더니 며칠 가지 않았다.      


앞서 말한 누군가(?)는 꿈적하지 않았다.

암묵적으로 용돈이 필요 없다고 말하는 듯했다. 살짝 기분이 상했다. 무시당한다는 생각이 올라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짐했다. 절대로, 주지 않겠다고 말이다. 그렇게 한 달이 막 지나고 같이 밥을 먹을 때였다. 누군가(?)가 말을 꺼냈다. “용돈 미리 주시면 안 돼요?” 용돈은 월급이 들오고 주기 때문에, 5일 이후에 준다. 그래서 그렇게 말한 거다. 이때다 싶었다. “용돈? 무슨 용돈? 감사 일기 안 썼잖아. 이번 달은 없어!” 어조는 낮았지만 단호하게 이야기했다.      


아이는 이때부터 말이 없었다.

그렇게 애매한 분위기에서 밥을 먹고 정리했다. 아이가 말이 없었기에, 인정하고 용돈을 포기하나 싶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정한 규칙을 인정하는 것도 아니었다. 당장 돈 들어갈 곳이 있었는데, 그렇게 하지 못해 속상한 마음이 가득한 모양이었다. 어색함을 깨트리고자 아이와 대화를 시도했다. 하지만 단단히 삐친 모양이었다. 말하려 하지 않았다. 어찌 되었든 이래저래 이야기하고 마무리했는데, 문득 내가 너무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제일 혐오(?)하는 행동을 했다는 생각이 든 거다.    


상대의 약점을 이용한 거다.

나는, 상대의 약점을 이용하여 그 사람을 좌지우지하려는 것을 매우 혐오한다. 가장 비겁한 방법이다. 드라마나 영화를 볼 때, 가장 화가 치밀어오르는 장면도 이런 부분이다. 하루라도 돈을 벌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에게는 돈으로, 자신의 위치를 지켜야 하는 사람에게는 그 위치로 겁박한다. 그것밖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사람에게 선택권을 줬다고 말하지만, 그건 선택을 하게끔 한 게 아니라, 선택을 강요한 것밖에는 되지 않는다.     


아이들에게 용돈이 그렇다.

아이들은 용돈 이외에 돈을 확보할 방법이 없다. 어쩌다 주변 어른이 주시는 것 말고는 없다. 이런 아이들에게 용돈을 담보로 감사 일기를 쓰지 않으면 주지 않겠다고 했으니. 의도에는 악의가 없었지만, 폭력을 행사한 거나 다름없는 결과가 되었다. 처지를 바꿔서 생각하니 더 마음에 와닿았다. 일하면 당연히 받아야 하는 월급인데, 다른 조건을 걸고 그걸 하지 않으면 주지 않겠다고 한다면 어떻겠는가? 그렇게 보면 우리 아이들은 참 착하다. 평소에도 느꼈지만, 참 착하다. 이렇게 자라 준 아이들이라 감사해야 하는데, 감사 일기를 쓰지 않는다고 아빠로서의 권위를 남용했다. 감사 일기를 쓴다고 자부한 나였지만, 진심 감사한 마음을 내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진정한 감사는 수단이 아닌, 그 자체다.

이러저러해서 감사한 게 아니라, 그 자체로 감사해야 한다는 말이다. 일해서 돈을 벌 수 있으니 감사한 게 아니라, 일할 수 있음에 감사해야 한다. 학교를 진학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음에 감사할 게 아니라, 진학한 자체를 감사해야 한다. 아이들이 어떻게 하고 부모님이 어떻게 해서 감사한 게 아니라, 그 존재 자체로 감사해야 한다. 그렇게 감사한 마음을 낼 때, 진정으로 기뻐할 수 있고 감사하며 살 수 있다. 감사의 본질은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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