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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리성 김작가 Jul 20. 2024

나의 목표가, 내 삶의 잔치가 되는 마술

질문은 깊이가 있다.

어떤 질문이냐에 따라 그 깊이가 달라지겠지만 말이다. 커피를 어떻게 내리느냐에 따라, 향과 맛의 깊이가 달라지는 것처럼 질문도 그렇다. 하긴 질문뿐이겠는가? 모든 것에는, 각자의 깊이가 있다. 음식처럼 향과 맛으로 깊이를 가늠하기도 하고, 책처럼 문장 표현으로 깊이를 가늠하기도 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사람은 마음의 깊이에 따라 가늠하는 경우가 많다. “저 사람은 마음이 참 깊어!”라는 표현이 그렇다. 타인을 배려하는 모습이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마음을 울리면, 마음이 깊다고 표현한다.

     

질문도 그렇다.

같은 질문이라도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초급 중급 고급으로, 그 깊이가 달라진다. 코칭 교육에서 제시하는 자료를 바탕으로 설명하면 이렇다. What-How-Why 순이다. 어떤 업무를 하고 있다고 하자. What은 무엇에 초점을 맞춘다. “지금 뭐 하고 있죠?”라며, 하는 일에 초점을 맞춘다. How는 방법에 초점을 맞춘다.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요?”라며, 하는 방법에 초점을 맞춘다. Why는 어떨까? “이 일을 왜 하는 걸까요?”라며, 하는 이유에 초점을 맞춘다.      


What과 How의 질문은 익숙하다.

일상에서 자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Why 질문은 익숙하지 않다. 소위 말해, 오글거린다. 존재 자체 혹은 그 이유를 묻는데, 익숙하지 않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깊이 생각하기가 싫다는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질문이야말로, 핵심을 꿰뚫는 질문이자, 좋은 성과를 내게 하는 질문이다. 업무 지시를 한다고 하자. A한테는 무슨 업무이며 어떻게 하면 되는지 설명한다. 일반적으로 하는 업무 지시다. B한테는 이 업무가 전체 과정에서 어떤 부분에 해당하는지 그리고 어떤 의미가 있으며 왜 해야 하는지 등을 설명한다. 누가 더 업무 수행력이 좋을까?      


어떤 질문을 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내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상황이 많은가? 그렇다면, 원하는 것을 주지 않는 사람이나 상황을 탓하기 전에, 자신의 질문을 살피는 게 어떨까? 질문에 따라 초점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극단적인 예로, 설문조사를 들 수 있다. 자사 제품과 타사 제품이 있을 때, 만족도 조사를 한다고 하자. 어떻게 질문하겠는가? 보통은 제품만 달리하고 같은 형식으로 질문할 거다. 하지만 목적에 따라 달리해야 한다.   

  

마케팅 전문가에게서 들은 이야기다.

자사 제품은 강점에 초점을 맞춰서 질문한다. “저희 제품을 쓰면서 가장 좋았던 점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그러면 고객은 강점에 초점을 맞춰서 생각하게 된다. 타사의 제품은 이렇게 질문한다. “타사 제품을 쓰면서 가장 아쉬웠던 점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경쟁사 제품이기 때문에, 약점에 초점을 맞춰서 질문하는 거다. 그러면 고객은 약점에 초점을 맞춰서 생각하게 된다. 질문에 따라, 어디로 초점을 맞춰서 생각하게 할지 결정할 수 있다는 말이다.     


자신에게 하는 질문도 마찬가지다.

어디에 초점을 맞출지에 따라, 질문을 달리해야 한다. 원하는 초점과 질문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축복이라 할 수 있다. 새해를 맞이해서 자신에게 하는 질문은 대체로, 원하는 목표를 어떻게 달성할지에 관한 질문일 가능성이 크다. 목표를 세우기는 했는데, 어떻게 갈지 고민하고 질문하며 그 답을 찾는 거다. 하지만 이와는 다른 이야기를 하는 책이 있다. <리얼리티 트랜서핑 2>이다. 한동안 읽다가, 서평과 인터뷰 등으로 다른 책을 읽느라, 잠시 미뤄뒀는데 오늘 그와 관련된 문장을 만났다.      


방법에 대해서 생각하지 말라고 한다.

중요한 것은 방법이 아니라, 목표라고 말한다. 따라서 목표를 제대로 찾아내는데, 집중하라고 한다. 그 목표가 진정(이 책에서는 영혼이 원하는) 자신이 원하는 것인지를 잘 살피라고 강조한다. 자신이 원하는 목표라고 했지만, 진정 자신이 원하는 목표가 아닐 수 있다고 한다. 자신이 원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이 원하는 것일 수도 있고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일 수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이렇게 말한다.      


“당신의 목표는 당신의 삶을 모든 의미에서 잔치로 바꿔줄 수 있어야만 한다는 점을 잊지 말라. 아직은 목표를 이룰 방법에 대해서는 생각하고 있지 말라. 달리 말해서, 당신의 목표로 데려다줄 문에 대해서는 아직 생각하지 말라는 말이다. 중요한 것은 목표를 찾아내는 것이다. 문은 때가 되면 스스로 나타날 것이다.”     


잔치라는 것은, 영혼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말한다.

진정한 기쁨을 주는 것으로, ‘살아 있다는 기쁨’을 가져다주는 것이라고 표현한다. 옷을 고르는 것을 예로 들었는데, 그냥 봤을 때 마음에 드는 것이라고 한다. 이래저래서 이 옷을 사야겠다고 마음먹는 게 아니라, 그냥 끌리는 옷이 영혼이 원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필자도 그렇다. 이것저것 따져서 산 옷인데, 한두 번 입고 어딘가에 내버려둔 옷이 떠오른다. 그냥 무심코 고른 옷인데, 자주 입게 되는 옷도 떠오른다. 영혼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란, 자주 사용하는 말로, 직감이라고 표현해도 좋겠다. 그래서 이렇게 질문하라고 제안한다. 이 질문에 답할 때 가슴이 설레고 마음이 벅차오르면, 그것이 바로 자신의 삶을 잔치로 바꿔줄 목표일지 모른다.     

“너의 영혼은 무엇에 끌리는가? 무엇이 너의 삶을 잔치로 바꿔놓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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