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정도는 괜찮겠지?”
많은 사람이 유혹에 빠지는 첫 생각이다. 이 생각이 들어서는 순간, 정도의 크기는 다르지만, 이후 생각이 물밀 듯이 들어온다. 간신히 버티던 담이 무너지고, 물살이 몰아닥치는 듯한 형국이 되는 거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끝은 창대하리라는 좋은 의미의 성경 구절도 있지만, 여기서는 매우 좋지 않은 상황으로의 전개를 말해준다. 어렵게 버텼던 하나가 허락되면, 뒤따라오는 둘 셋은 더욱 쉽게 허락된다.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지만, 어렵게 하게 되는 게 있다. 처음은 안 된다고 마음으로 발버둥 치지만, 한 번 하면 어떻게 되는가? 두 번 세 번을 하게 되고, 횟수가 늘어갈수록 이제는 당연하게 되어 버린다. 그렇게 한순간에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사람들이 있다.
빈틈을 보였기 때문이다.
고전에서 적과 투쟁하는 이야기를 보면, 자신을 알고 타인을 알기 위해 노력한다. 잘 알기 위해 노력한다는 건, 강점과 약점을 살피는 것을 의미한다. 자국의 강점을 강화하고 약점은 보완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타인의 약점 즉, 빈틈을 찾는 데 온 신경을 집중한다. 빈틈을 발견하는 순간, 자국이 강점을 활용하여 그 빈틈을 파고든다. 직접 하기도 하고, 다른 나라의 힘을 빌리기도 한다. 이 또한 자국의 강점을 활용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렇게 약소국이 강대국을 이기는 일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만큼 빈틈은 단단하고 거대한 성을 한순간에 무너트리는 방아쇠가 된다.
개인에게 있어 빈틈이 바로, ‘이 정도’다.
‘이 정도’는 자기 스스로 노출하는 빈틈이다. 사람의 마음에는 두 개의 자아가 있다고 하지 않는가? 선한 자아와 악한 자아 말이다. 마음에 자리하고 있는 악한 자아가, ‘이 정도’라는, 빈틈을 보고 놓칠 리 없다. “그래! 맞아.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냐. 아주 괜찮다고!”라며, 내 생각에 동의해 주며 마음에 안정감(?)을 준다. 그리고 이차 삼차, 그래도 되는 합리화를 펼친다. 여기에 주변 사람까지 동조해 준다면 어떻겠는가? 게임 끝이다. 얘도 그러고 쟤도 그러는 데 뭐, 어떻겠는가? 주변 환경이 중요하다는 말이, 정말 중요한 이유다. 그렇게 무너지는 단적인 사례가 있다.
음주 운전이다.
공인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음주 운전 소식을 전할 때가 있다. 좋은 이미지로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실망감은 더 커진다. 오랜 시간 어렵게 쌓은 이미지가 한순간에 바닥으로 곤두박질치게 된다. 이미지도 이미지지만, 더 중요한 건 타인의 생사를 가를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자기 혼자 어떻게 되면 자업자득이라 여기겠지만, 타인은 무슨 잘못으로 그 무게를 떠안아야 하는가? 피해자가 그 사람뿐이겠는가? 가족과 지인들까지 엄청난 피해를 주는,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모든 사람이 실수라 말하지만, 절대 실수라 말해서는 안 되는 문제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나에게 있어 ‘이 정도’는 무엇이 있을까?
원하는 목표가 있고 달성해야 할 과제가 있다고 할 때, 그곳에 닿지 못하게 하는 ‘이 정도’는 무엇일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다. 나 자신에게 관대함을 주면서, 허용하지 않아야 하지만, 허용하게 되는 그 무엇. 그것을 명확하게 알고 빈틈을 주어서는 안 될 거다. 군대에서 이런 빈팀을 철저하게 막고자 다짐한 문장이 있었다. “나 자신과 타협하지 말자!” 왜 이 문장을 적었는지 기억나진 않지만, 여기저기에 적어놓고 스스로 다짐했다. 나약한 생각이 들 때, 타협하지 말자며 말이다.
나 자신과 타협하고 싶은 것이 있는가?
몇 가지 질문을 통해, 그 타협이 옳은 것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지금 하려는 타협이 지금이 아닌 이후의 삶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 생각해 보았는가?”
“나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에게, 피해를 주거나 얻을 수 있는 이익을 빼앗지는 않는가?”
“타협하는 방법 말고 다른 대안은 없는가?”
“지금 타협하려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을 제거하는 방법은 없는가?”
“타협하지 않고 하려던 대로 한다면, 어떤 기대를 얻을 수 있는가?”
자신과의 타협은, 지금 순간의 감정과 생각에서 오는 거다.
그것이 과연 옳은 것인지 잘 살피고 결정할 필요가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