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내내 몸 상태가 너무 안 좋았다.
몸살기도 좀 있었고 무엇보다 속이 안 좋았다. 쓰리기도 했고 뭔가에 걸린 것처럼 답답하기도 했다. 더부룩한 느낌에 밥도 잘 먹지 못했다. 몸살이 걸려 하루 이틀 골골 댄 적은 있었지만, 이렇게 복합적으로 상태가 좋지 않은 적은 거의 없었다. 이런 적이 언제였나 기억을 더듬어 보지만,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러고 보니 오랜만에 이런 시간을 갖게 된 것도 감사하게 여길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도 완전히 회복된 상태는 아니지만, 그래도 주말보다는 좀 나아졌다.
이래서 사람이라고 하는가?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가지고 있을 때와 누리고 있을 때는 소중함을 모른다. 그래서 소중하게 다루지 않는다. 물만 봐도 그렇다. 평소에는 수도를 열어놓고 세수하거나 머리를 감는다. 하지만 단수가 돼서 사용할 물의 양이 제한적이면 어떻게 하나? ‘어? 이 양으로 되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매우 적은 양으로 해결한다. 소중할 때 소중함을 알고 소중히 여기면, 소중할 때 소중하게 사용할 텐데 그게 잘 안된다.
몸도 그렇다.
평소에는 먹고 싶은 거 마시고 싶은 거 그리고 피고 싶은 거 마음대로 한다.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사는 삶이 최고라 여기며 그렇게 하는 거다. 어르신 중에서도 이런 이야기하시는 분을 종종 본다. 어차피 죽는 거 몇 년 차이 나지 않는데,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다 가는 게 더 낫지 않겠냐고 말이다. 연륜이 있는 분이 하시는 말씀이라, 더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하지만 몸 상태가 온전하지 않으면, 이 말은 설득력을 잃는다. 몸이 최고라는 생각이 드는 거다. 아무리 좋은 음식이 있고 풍경이 있으면 뭐 하나? 몸이 안 좋으면 그림의 떡이니 말이다.
아픔의 시간(?)이 그냥 생기는 게 아닌 이유다.
아픔의 시간은, 잘 관리하라는 신호다. 어떤 관리를 말하는 걸까? 건강 관리를 말하는 걸까? 물론 이 부분도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이보다 조금 더 깊이 들어갈 필요가 있다. 건강을 포함해서 전반적으로 해야 할 관리다. 바로, 악습이다. 몸 상태가 안 좋아진 이유나 마음 상태가 안 좋아지는 이유를 찾아 들어가면, 그 밑바닥에 무엇이 있는가? 그렇다. 악습이 있다. 몸에 좋은 음식만 찾아가며 먹을 순 없다. 먹는 즐거움을 주는 음식은, 대체로 몸에 그리 좋지 않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습관적으로 먹는 것이 문제라는 거다.
다른 습관도 마찬가지다.
가끔 이라면 모를까, 좋지 않은 줄 알면서 습관적으로 하는 행동이 악습이 되고 삶의 문제를 불러온다. 많은 사람이 악습을 끊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고 하지만 잘 안 된다고 말한다. 그렇다. 쉽지 않다. 개인 의지가 문제일 수도 있지만, 주변 분위기에 휩쓸리게 되는 것도 문제다. 하루 이틀은 어떻게 잘 넘기지만, 그 이후에 무너지는 거다. 간격을 조금만 더 두었으면 완전히 끊을 수 있었다며 안타까워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악습을 끊는 방법이 도저히 없는 걸까? 아직 확실하게 검증하진 않았지만, 주요하다고 생각되는 방법이 있다.
토니 로빈스가 조언한 말이다.
한 영상에서 토니 로빈스가 했다며 소개한 내용이 있는데, 공감이 갔다. 이 말을 듣기 전에 이와 비슷한 방법을 몇 번 사용했었는데, 효과가 있었기 때문이다. 토니 로빈스가 말한 것은 이렇다. 내가 원하는 것과 나를 막는 것이 있다고 하자. 이 두 가지에 각각의 감정을 대입시키는 거다. 지금 나를 막는 것에는 엄청난 고통을 연상시키고 새로 하게 될 경험에 엄청난 기쁨을 연상시키는 거다. 따라서 우리를 막는 행동에 더 큰 고통을 부여하면, 그 행동과 다른 행동을 하게 된다는 거다.
이 말을 이렇게 적용할 수 있다.
계속하고자 하는 행동과 계속하지 않았으면 하는 행동이 있다고 하자. 계속하고자 하는 행동이 있으면 그 행동으로 얻을 기쁨을 상상한다. 그렇게 하면, 하고자 하는 마음이 불러일으켜지고 행동으로 옮겨지는 거다. 반대로 끊고 싶은 행동은 어떤 마음을 상상해야 할까? 매우 불쾌하고 불편한 마음을 불러일으키면 된다. 안 좋은 습관으로 인해 경험한 나쁜 경험을 상상하는 거다. 그러면 그 행동을 더는 하고 싶지 않게 된다는 거다. 이 방법을 몇 번 사용해 봤는데, 실제 그렇게 됐다. 불쾌하고 불편한 느낌을 떠올리니, 하고 싶던 행동 욕구가 사그라들었다.
살면서 모든 것을 다 담아갈 순 없다.
내려놓아야 할 것이 있는 거다. 삶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그 순위에 따라 담아갈 것은 담아가고 내려놓아야 할 것은 내려놓아야 한다. 모든 것을 담으려다, 우선순위에 있어야 할 것을 놓칠 수 있다. 나의 우선순위에는 그것으로 얻을 기쁨을 상상하고, 내려놓아야 할 것에는 그것으로 오는 고통을 상상해야 한다. 그러면 필요한 것은 담아가고 필요 없는 것은 내려놓을 수 있다. 완전하다고 할 순 없지만, 이 노력만으로도 원하는 삶의 방향으로 가는 데 충분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