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 해결을 위한 피드백, 어디까지 해봤니?

by 청리성 김작가

화분에서 삭은 나뭇잎을 볼 때가 있다.

다른 잎은 초록색을 뽐내고 있지만, 그 잎만 누렇다. 미운 오리 새끼처럼, 한 무리가 아닌 듯 보인다. 손을 데고 큰 힘을 주지 않아도 나뭇잎은 떨어진다. 그 잎을 떼 내니 잎들이 한 무리로 보인다. 시간이 지나면 다른 잎이 누렇게 변한다. 그 전처럼 다시 그 잎을 떼 낸다. 시간이 지날수록 누렇게 변하는 잎이 많아지고, 그렇게 떼다 보니, 어느새 나무는 앙상한 가지만 남게 된다. 더는 잎이 나지 않고, 결국 그 화분은 버리게 된다.


삭은 나뭇잎만 떼 낸 결과다.

삭은 나뭇잎만 떼 낸 결과라고? 이런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그럼, 삭은 잎을 그냥 둬야 했냐는 의도가 담긴 의문이다. 한 바구니에 담긴 과일이 상하면, 상한 과일은 바로 빼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전염병에 걸린 것처럼, 금방 다른 과일이 썩기 때문이다. 삭은 나뭇잎을 떼 낸 이유도 이와 다르지 않다. 그 나뭇잎을 떼야, 다른 나뭇잎이 살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식물에 관한 지식은 없지만, 이 방법도 틀리진 않을 듯하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될 순 없다.


나뭇잎이 삭은 이유가 무엇일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나뭇잎 자체가 아니다. 나뭇잎이 매달려 있는 가느다란 줄기도 아니다. 그 줄기가 붙어있는 기둥 같은 줄기도 아니다. 흙 아래 보이지 않는 곳, 뿌리가 근본적인 원인이다. 뿌리는 영양분과 수분을 흡수해서 줄기와 잎 전체에 흐르게 한다. 따라서 뿌리에서 제대로 된 영양분과 수분을 흡수하지 못하거나 이상이 생기면, 나뭇잎에 문제가 생긴다. 나뭇잎의 문제는 뿌리에서 시작된다는 말이다. 이 정도의 정보는 이제, 많이 알겠지만 말이다.

나뭇잎과 뿌리를 언급한 이유가 뭘까?

겉으로 드러난 문제를 겉으로 드러난 것에서 찾고 해결해서는 안 된다는 거다. 일시적인 문제는 해결될지 모르지만,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진 않는다. 겉으로 드러난 문제가 있다면 그 문제의 원인이 무엇인지 몇 번은 찾아서 내려가야 한다. 그렇게 찾아 내려가서, 취할 수 있는 가장 작은 행동이나 조치를 해야 한다. 그래야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을 많이 낮출 수 있다.


코칭 기초 교육할 때, 피드백에 관한 부분을 다룬다.

피드백의 종류부터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설명한다. 그리고 피드백의 질문을 어디까지 해야 문제 해결을 할 수 있는지 알게 한다. 예를 들어, 아침에 지각했다고 하자. 이를 해결하려면, 자기 자신에게 어떤 피드백을 주어야 할까? 지각은 대체로 늦잠에서 시작된다. 따라서 다음에는 늦잠을 자지 않아야겠다고 피드백한다. 이렇게 마무리하면 문제 해결이 될까? 그럴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더 크다.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아니기 때문이다.


“왜, 지각했을까?”라는 질문에서부터 파고 들어가야 한다.

지각이라는 결과 바로 직전의 상황은 무엇인가? “차가 막혔다.” 일 거다. 그러면 다음 질문은 “왜, 차가 막혔나?”라는 질문으로 들어간다. “늦게 출발해서”라는 답이 나온다. 이 답은 “왜, 늦게 출발했나?”라는 질문으로 이어지고, 그 이유가 비로소 늦잠이라는 결론에 닿는다. 여기가 중요하다. “왜? 늦잠을 잤는가?”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이럴 가능성이 크다. “알람이 울리지 않아서” 알람이 울리지 않아 제시간에 일어나지 못한 거다. 다음 질문은 이렇게 나올 수 있다. “왜, 알람이 울리지 않았나?” 이에 대한 답은 “핸드폰 배터리가 방전됐기 때문”이라는 답이 나올 수 있다.


이제 앞으로 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잠들기 전 핸드폰 충전을 확인하는 거다. 이것이 바로, 할 수 있는 최소한의 행동이다. 핸드폰 충전을 놓치지 않으면, 방전이 되지 않을 거고 알람도 제때 울릴 거다. 알람을 제때 들으면 평소처럼 제시간에 일어날 수 있다. 외적 변수가 발생하지 않는 한, 지각할 가능성은 작아진다. 피드백으로 문제 해결을 하기 위해서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행동을 찾고 그것을 해야 해결할 수 있다. 어떤가? 설득력이 있는가?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질문해야 한다.

더는 내려갈 곳이 없을 정도로 끝까지 내려가야, 최소한의 행동이 나온다. 이것이 바로 근본적인 문제 해결의 해답이다. 그것을 하고도 문제 해결이 되지 않았다면 더 질문을 깊숙이 내려갈 필요가 있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닌, 다른 외적 요인이 있는지 살펴볼 필요도 있다. 이는 직접 해결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도움을 요청하거나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중요한 건, 드러난 결과를 보고 속단하기보다, 그 이유를 찾기 위해 질문으로 깊숙이 들어가야 한다는 거다. 가장 밑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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