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하는 길이었습니다.
지하철을 타기 위해 입구로 향하고 있는데, 큰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입구에 도착해서 내려갈 때쯤, 목소리의 출처를 알 수 있었습니다. 등산 하고 오는 중이었던, 아저씨였습니다. 아저씨라고 하기보다 할아버지가 되어 가는 나이랄까요? 등에 메고 있던 작은 가방에, 접히는 폴대가 꽂혀있는 거로 알 수 있었습니다. 산에서 내려와, 술 한잔을 하셨던 모양이었습니다. 맨정신은 아닌 것으로 보였거든요. 뭔가 할 말이 더 남으셨는지, 내려가는 계단 한쪽을 향해 한마디를 더 던지고 밖으로 나가셨습니다. “젊은 사람이 일할 생각을 해야지!”
한 남자가 계단에 앉아 있었습니다.
양 무릎을 모으고 계단에 고개를 파묻고 있었습니다. 그 앞에는 작은 통하나가 놓여있었습니다. 나이를 분간할 순 없었지만, 나이가 많아 보이진 않았습니다. 아저씨 말처럼, 일을 할 수 있는 나이로는 보였습니다. 그 사람은 미동도 하지 않고 그대로 있었습니다. 혹시 분노에 차서 아저씨한테 달려들진 않을지 마음이 쓰였습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그 사람이 어떤 상황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그렇게 말한 모습이 좀 안타까웠습니다. 많은 사람이 지나다니는 그곳에서 말이죠. 얼마라도 주면서 조곤조곤 조언을 해줬으면 어떨지 싶기도 했습니다.
저도 젊은 사람이 구걸하는 모습을 보면,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몸도 멀쩡해 보이는데 뭐라도 해야지 저게 뭐 하는 거지?’ 좋은 마음으로 바라보지 못한 거죠. 하지만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이 생각을 고쳐먹었습니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몸이 좋지 않은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가만히 있으면 잘 모르지만, 움직이면 몸이 안 좋다는 걸 알아차리게 되는 사람처럼 말이죠. 일하려고 해도, 어디도 써주지 않는 사정도 있다고 합니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일하려고 여기저기 찾아다녀도 써주질 않는다는 겁니다. 당장 빵 하나도 사 먹을 형편이 안 되니, 구걸이라도 해야 했던 거죠. 이야기를 듣고, 섣부른 판단을 한 저를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사정을 모르면서, 말을 함부로 해선 안 되는 이유입니다.
내 생각과 기준이 옳다고 여기며 내뱉는 말이, 누군가한테는 큰 상처가 될 수 있습니다. 계단에 쭈그리고 있던 사람도 그랬을 겁니다. 본인도 어찌하지 못하는 상황인데 그렇게 막말하는 사람의 말을 들으면서, 얼마나 분통이 터졌을까요? 당장에라도 달려들고 싶지만, 그럴 용기가 없거나, 그럴 수 없는 상황일지도 모릅니다. 부양가족이 있을 수도 있는 거죠. 소란을 피워서 경찰에서 잡혀가면, 더 곤란한 상황이 되기 때문입니다. 조금이라도 조용히 통에 넣는 분들은, 아마도 이런저런 판단을 떠나, 자비의 마음을 내어놓은 것이 아닐지 싶습니다.
사람을 대하는 두 부류의 사람을 봅니다.
자비의 마음으로 위로하는 사람과 자기 기준으로 판단하는 사람입니다. 대부분 후자의 마음으로 사람을 바라보게 됩니다.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각자의 가치 기준이 있고, 그 기준에 따라 말하고 행동하게 되니까요. 하지만 위로가 필요한 사람에게는, 나의 가치 기준을 조금 내려놓을 용기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내 가치 기준과 판단이 옳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앞선 이야기처럼, 내가 알지 못하는 사정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상황을 모르고 비판했다가 속 사정을 듣고 후회하신 적 있지 않으신가요?
저는 있었습니다.
매우 부끄러웠습니다. 옳지 못한 행동으로 봤는데, 오히려 매우 자비로운 행동이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직접 말을 내뱉은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생각한 것 자체로도 너무 부끄럽고 미안했습니다. 그래서 이후로는 어떤 상황에서도 먼저 이해하려고 노력합니다. ‘뭔가 이유가 있겠지!’. ‘뭔가 속 사정이 있겠지.’ 등등 말이죠. 자기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특히 위로가 필요한 사람과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더욱 그래야 합니다. 그 사람에게는 지금 하는 행동이, 할 수 있는 최선이거나 마지막 방법일지도 모릅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자 하는 마음을 끊어버리는 행동이 과연 누구에게 좋을까요? 판단하기보다는 자비의 마음을 먼저 내어놓을 수 있도록, 마음을 잘 챙겨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