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중’하면, 생각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처음 출간한 책, <완벽한 하루>에 실은 이야기인데요. 제가 만든 짧은 이야기입니다. 존중에 관해 묵상하는데, 문득 떠올랐습니다. 그 이야기를 조금 더 살을 붙여서 풀어보겠습니다. 어느 날, 손과 발이 이야기를 나눕니다. ‘손’이 ‘발’에 이야기합니다. “나는 사람들을 만나면, 악수로 인사를 나누는 중요한 역할을 해. 밥을 먹을 수 있도록 해주고 다양한 활동을 하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존재지!” 자기 존재감을 뽐냅니다.
여기에는 발에 대한 무시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발은 하는 게 아무것도 없어 보였기 때문입니다. 발은 이야기를 듣고 가만히 생각한 후에, 조곤조곤하게 이야기합니다. “그렇구나! 너는 많은 일을 하는구나. 하지만 넌 내가 없으면 어디도 갈 수 없지 않나? 악수하려고 할 때나 밥을 먹으려고 할 때, 그리고 다양한 활동을 하려고 할 때도, 넌 내가 없으면 어디도 갈 수가 없지 않아?” 손은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손과 발은 다른 존재입니다.
누가 더 우위에 있다고 말할 수 없는 거죠. 역할이 다를 뿐입니다. 하지만 손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자기가 실제 하는 역할이 더 많다고 여기는 거죠. 발을 무시한 것도 이런 마음에서 출발했던 겁니다. 누군가를 무시하는 사람을 보면 공통적인 특징이 있습니다. 자기가 그 사람보다 더 우월하다고 여긴다는 겁니다. 그런 생각이 들어차 있으니 가능한, 말과 행동입니다.
‘갑질’이라고 말하는 것이 대표적입니다.
서비스를 받는 처지에 있으니 당연히 자기가 더 우월하다고 여깁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식당에 가서 밥을 먹는다고 해보겠습니다. 돈을 내고 밥을 시키니, 내가 더 우월한가요? 아닙니다. 배고픔을 달래줄 밥을 내어주는 사람은, 식당에서 일하는 분들입니다. 돈이 아무리 많이 있으면 뭐 할까요? 배가 고파 쓰러질 지경인데, 밥을 먹을 곳이 없다면 말이죠. 억만금이 있다고 해도 국밥 한 그릇에 비할까요? 역할이 다를 뿐, 절대 누가 더 우위에 있다고 말할 순 없습니다.
<초보 직장인을 위한 직장 생활 설명서>에 있는 이야기도 소개할까 합니다.
어떤 선비가 배를 타고 강을 건너가고 있었습니다. 한창 공부하던 선비는 뱃사공에서 논어를 아느냐 묻습니다. 뱃사공은 모른다고 말합니다. 선비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어떻게 논어를 모를 수 있냐며 혀를 찹니다. 그리곤 열심히 노 젓고 있는 뱃사공에게, 자기가 아는 지식을 풀어놓습니다. 뱃사공은 그러려니 하고 듣습니다. 이때 갑자기 강한 바람이 불어닥칩니다. 배가 흔들리고 곧 전복될 위기에 처한 겁니다.
뱃사공이 선비에게 묻습니다.
“수영할 줄 아십니까?” 겁에 잔뜩 질린 선비는, 할 줄 모른다고 답합니다. 뱃사공은 선비를 끌고 헤엄쳐서, 근처 육지에 도착합니다. 숨을 고르고 뱃사공은 선비에게 말합니다. “때로는 논어보다 수영하는 법이 더 유용할 때가 있습니다.” 선비는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논어를 아는 것과 수영하는 법.
이 둘을 그냥 놓고 보면, 논어를 아는 것이 더 가치 있어 보입니다. 둘 중 하나의 역량을 얻을 수 있다면, 논어를 선택할 겁니다. 삶의 지혜를 얻게 될 테니까요. 그리고 수영해야 할 상황보다는, 논어를 활용할 수 있는 상황이 더 많은 것도 중요한 이유입니다. 하지만 뱃사공의 말처럼, 물에 빠진 상황이라면 어떨까요? 아무런 역량도 쓸모가 없게 됩니다. 오직 수영할 줄 아는 역량만이, 목숨을 건질 도구가 되는 거죠. 목숨이 붙어 있어야 가지고 있는 역량을 발휘할 수 있고요.
언제 어느 때 유용하게 쓰일지 모릅니다.
그 무엇도 그리고 아무도 모르는 겁니다. 사람 일 모르는 거라고 말하는 것도, 이런 이유겠지요? 한 사람 한 사람은, 다 소중하고 필요한 존재입니다. 언제 어느 때 어떻게, 중요한 역할을 할지 모를 뿐이지요. 그러니 자기 강점을 찾고 살려서, 꾸준히 노력해야 합니다. 강점을 백분 활용할 수 있는 방법도 생각하면서 말이죠. 그렇게 한 걸음씩 내딛다 보면, 나의 시간을 만나리라 믿습니다. “Slowly but never stop.” 천천히 가되, 멈추지만 않으면 되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