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관문 옆에, 성수대가 걸려 있습니다.
밖을 나갈 때나 들어올 때, 성수를 찍고 성호경을 긋기 위해서입니다. 코로나로 성당에서 성수를 찍을 수 없을 때, 뭔가 허전함이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성당을 갈 때, 집에서 성수를 찍고 가면 좋겠다는 생각에 설치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평소에도 성수를 찍고 성호를 그으면서, 새로운 하루를 봉헌하고 지나간 하루에 감사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잠깐이지만요. 이제는 가족 모두가 집을 나설 때 성수를 찍고 성호를 그으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성수가 바짝 마를 때가 있습니다.
증발해서 마르는 거죠. 그래서 수시로 채워 넣어야 합니다. 나갈 때 마른 것을 보면 바로 채워 넣을 수 있게, 작은 통에 성수를 담아서 현관 한쪽에 두었습니다. 여름에는 날이 더워서, 금방 증발합니다. 매일 채워 넣는다는 느낌이 들 때도 있었습니다. 이제는 누구라도 성수가 말라 있으면, 성수를 채우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직접 성수를 채웠을 때가 언제인지 기억이 나질 않네요.
최근에는 좀 신기한 느낌을 받고 있습니다.
며칠 전에, 성수대에 성수가 거의 없는 것을 알았습니다. 다음 날 채워 넣으면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다음 날 보니, 전날 상태와 거의 비슷했습니다. 누가 채워 넣은 것 같진 않았습니다. 그랬으면 양이 좀 늘어났을 테니까요.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성수대 안이 촉촉한 상태였고, 손에 찍힐 만큼의 성수가 남아있었습니다. 며칠 동안 이런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인지는 하고 있었는데요.
오늘 출근할 때도 마찬가지 상태였습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득하진 않지만 메마르지 않은 성수처럼, 우리 가정도 그렇지 않을까?’ 우리 부부는,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결혼했습니다. 돈은 물론 직업도 없었습니다. 임용고시를 준비하고 있었으니까요. 세상 물정 모르고 결혼한 거죠. 그래서 처음부터 넉넉하지 않은 생활이었습니다. 넉넉하지 않다는 표현보다, 항상 부족한 생활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겠네요. 버는 돈보다 나가야 하는 돈이 많아서, 매달 생활비를 걱정하며 살았습니다. 맞벌이했으면 조금이나마 나았겠지만, 아이는 엄마가 키워야 한다는, 저의 확실한 철학(?)으로 혼자만 일했습니다.
빚으로 시작한 생활이라, 빚에서 벗어난 적이 없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매달 고정비를 계산하고 부족한 부분을 어디서 채워야 할지 고민하는 게, 매달 해야 할 중요한 일 중 하나입니다. 다행인 건, 어떻게든 메우게 되었다는 겁니다. 그렇게 살아온 지 벌써 20년이 흘렀네요. 빚은 늘어나지만, 어떻게든 살아내고 있다는 것에 감사한 마음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돈은 없지만,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을 얻었다는 사실입니다. 많은 사람이 부러워 하기도 합니다. 저도 이 부분이 가장 자랑스럽고 감사한 일이라 여깁니다. 다른 어떤 것이 부족해도, 이것만으로 아주 풍족함을 느낍니다. 무엇일까요?
행복한 가정입니다.
매우 부족한 가운데에도, 예쁜 마음으로 성장하고 있는 세 딸이 그렇습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아이들 잘 키워주고 저를 잘 보필해 준 아내가 그렇습니다. 서로 믿고 사랑하며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우리가 그렇습니다. 그래서 저는 참 행복한 가정이라 자부합니다. 주변 분들은 성가정이라 칭찬해 주시지만, 과분한 말씀입니다.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그냥 잘 살아내고 있는 가정인 거죠. 다투기도 하고 투덕거리기는 하지만, 금방 마음을 풀고 서로를 이해하는 조금은 괜찮은 가정입니다.
오늘 성수대의 성수를 보며 느낍니다.
성수대의 성수처럼 풍족하진 않지만, 메마르지 않게 해주신다는 것을 느낍니다. 항상 촉촉하게 채워주고 계신다는 것을 느낍니다. 촉촉함의 중심에, 가정이 있습니다. 부족한 것이 많지만, 마음만은 풍족한 가정이 있습니다. 그냥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좋다는 게, 좋습니다. 그래서 우리 가정은 마음 부자입니다. 그렇게 풍족한 마음으로, 또 하루하루를 살아내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