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죽은 모든 이를 기억하는 위령의 날’입니다.
죽은 모든 이의 영혼, 특히 연옥 영혼들이 하루빨리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도록 기도하는 날입니다. (‘매일 미사’ 참조) 11월은 전례력으로 ‘위령 성월’인데요. 오늘뿐만 아니라, 11월 한 달은, 세상을 떠난 모든 분을 기억하고 기도하는 달입니다. 교회에서는 1일부터 8일까지 묘지를 방문하여 세상을 떠난 분들을 위해 기도하라고 권장합니다. 어떤 묘지라도 상관없습니다. 모르는 분의 묘지에 방문해도 된다고 합니다. 기간 안에 꼭 묘지를 방문해서, 기도를 드리면 좋겠습니다.
<내 가슴에 살아있는 선물>
지금 읽고 있는 책 제목입니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위령 성월’에 묵상하기 좋은 책입니다. ‘마뗄암재단’에서 소명을 다하고 계신 이영숙 베드로 수녀님의 책입니다. 지난 성령 기도회 찬양할 때, 강사로 오셨는데요. 이 책은, 수녀님께서 성모자애병원(현, 인천성모병원)에서 호스피스 소임을 하던 시절의 이야기를 엮은 책입니다. 강의에서 언급하셨던 이야기도 있어 반가웠는데요. 한 분 한 분의 이야기를 읽고 있자니, 먹먹함과 짠한 느낌이 올라옵니다. 이 책은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읽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갑자기 울컥하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죽음을 잘 맞이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누군가 한 말이 떠오릅니다. 삶은 죽음을 잘 준비하는 과정이라고요. 태어나면서부터 죽음으로 향하는 게 삶이긴 하지만, 벌써 죽음을 언급한다는 게 그리 편하지만은 않습니다. 하지만 태어나는 건 순서가 있어도, 세상을 떠나는 건 순서가 없다는 말이 있죠? 그러니 잘 준비해야 한다는 말을 그냥 흘려듣기 어렵습니다. 이 책에서도, 한 분의 이야기가 그렇습니다. 젊은 나이에 억울함을 잔뜩 품고 죽음을 기다리는 분의 이야기입니다.
시댁에서 반대하는 결혼을 한 여성분입니다.
가정 형편의 균형이 맞지 않은 분이라, 반대가 심했다고 합니다. 그래도 어떻게든 며느리로 인정해주길 바라며, 갖은 노력을 했습니다. 꼼짝 안 하던 시댁에서 아들 둘을 낳자 이제는 맞아들이기는 했다고 합니다. 단, 손자들만요. 이분은 명절 때도 일하는 분들과 같이 주방에서 일만 했고, 겸상하지도 못했다고 합니다. 이 정도만 들어도 마음이 매우 불편해지죠? 그러다 남편이 그만 쓰러지고 맙니다. 식물인간이 된 거죠.
이분은 억울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럴 만도 합니다. 온갖 고생은 다 했는데, 남편이 식물인간이 됐으니 말이죠. 남편을 간호하다 화가 나서 꼬집기도 하고 때리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러다 미안함을 느끼고 용서를 구하기도 했고요. 그렇게 살아내고 있는데, 본인이 암에 걸린 걸 알게 됩니다. 억울함이 몰려왔습니다. 억울함은 미움과 분노가 되었고 그 상태로 죽음을 기다리게 됩니다. 그러다 수녀님을 만나게 된 거죠.
수녀님은 용서를 구하라고 했습니다.
수녀님의 말씀을 듣고 마음을 열던 중, 시댁 부모님들도 찾아와 무릎 꿇고 용서를 빌게 됩니다. 드디어 마음 편하게 세상을 떠나게 된 거죠. 임종을 남편 품에서 맞이하고 싶다는 말에, 옷을 잘 입혀서 누워있는 남편 옆에 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인사를 하고 편안하게 눈을 감았습니다.
한편의 드라마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세상을 떠나기 전, 용서하고 용서를 받은 모습에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음 편안하게 세상을 떠날 수 있으니까요. 수녀님은 묵상하신 내용 중, 용서를 구해야 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십니다.
“내가 원수를 용서하지 못하고 원수를 가슴에 안고 있는 것은, 내가 독을 마시고 남이 죽기를 바라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너무 명확한 설명이 아닌가요?
내가 독을 마신다는 표현에 바로 수긍이 갑니다. 너무 딱 들어맞는 표현이라 생각됩니다. 용서는 타인이 아닌, 자기 자신을 위해 하는 것이라는 말도 이해가 됩니다. 우리는 매일 죽음으로 다가가고 있습니다. 그때가 언제인지 모릅니다. 그러니 지금부터 시작해야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