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m 달리기에서, 중요한 게 뭘까요?
짧은 거리기 때문에, 무엇이든 시간을 최소화하는 게 중요합니다. 그 시작은, 스타트인데요. 매우 중요해서 이 연습을 엄청 많이 한다고 합니다. 출발신호와 함께 앞으로 튀어 나갈 수 있는 반응 속도와 탄력을 키우는 거죠. 복장도 중요합니다. 바람의 저항을 최소화할 수 있는 복장을 갖추는 거죠. 올림픽을 보면, 머리카락의 저항마저 줄이려고, 옷에 달린 딱 달라붙은 모자를 쓰기도 합니다. 백 분의 일 초 차이로 순위가 결정되니 그럴 만도 합니다. 이게 다가 아닙니다.
결정적인 한 가지가 더 있습니다.
더 많을 수도 있겠지만, 아는 한도 내에서는 그렇습니다. 뭘까요? 간과하기 쉬운 건데요. 결승선을 통과할 때, 달리던 속도를 유지하는 겁니다. 입시 체육을 할 때 선생님이 하셨던 말씀이 기억납니다. “100m가 아니라, 120m를 뛴다고 생각하고 달려야 해.” 그래서 결승선보다 조금 더 떨어진 곳을 결승선이라 여기고 달리는 연습을 했습니다. 이렇게 해야 결승선을 통과할 때도 달려온 속도를 유지한다는 겁니다. 결승선을 결승선으로 여기면 자기도 모르게 속도를 줄이게 된다는 거죠. 이런 장면은 올림픽에서도 가끔 나옵니다. 단거리뿐만 아니라 중장거리에서도 나오는데요.
결승선 바로 앞에서 역전되는 장면이죠.
제일 앞서 달리던 선수는 자신이 1등이라는 생각에 세레모니 동작으로 결승선을 통과하는데, 뒤에서 누군가 백 분의 몇 초 차이로 먼저 통과합니다. 먼저 들어온 선수는 환호하고 역전당한 선수는 망연자실합니다. 1초도 안 되는 시간, 조금만 더 참고 끝까지 달렸으면 괜찮았을 텐데요. 아마 이 선수는 순위 안에 들지 않은 선수보다 더 괴로운 시간을 보내야 했을지도 모릅니다. 계속 그 장면이 머릿속을 헤집고 다닐 테니 말이죠. 주변에서도 말이 많았을 겁니다. 인터넷에서는 그 장면이 일파만파로 퍼지기도 하고요. 원하지 않은 유명세를 치르게 됩니다.
여기서 얻는 교훈이 있습니다.
마지막이, 진짜 마지막이 아니라는 겁니다. 우리는 삶의 끝을 죽음이라 여깁니다. 죽으면 끝이라는 생각을 하는 거죠. 하지만 아니라는 겁니다. 죽음 이후의 삶이 있다는 거죠. 영원한 생명을 말하는 것도 이런 이유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위해 지상 여정에서 해야 할 역할을 주문받습니다. 사랑하라는 겁니다. 배려하고 친절을 베풀고 자비한 마음으로 대하라고 합니다. 하고 싶지만, 하지 않아야 할 것이 있고, 하고 싶지 않지만 해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누군가 들으면 뭘 그리 피곤하게 사냐고 할 수도 있겠네요.
피곤하게 사는 게 아닙니다.
끝이 아니니 그렇게 살아내야 하는 거죠. 며칠 전 본, 영상이 그 이유를 잘 설명합니다. 지상의 고통과 연옥의 고통인데요. 누군가가 병마와 싸우고 있었습니다. 힘들어서 더는 살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그때 천사가 나타나서 말합니다. 지상에서 1년 더 고통받고 천국에 들어갈래? 아니면 연옥에서 하루 고통받고 천국에 들어갈래? 선택하라고 합니다. 이 사람은 당연히 연옥에서 하루를 택합니다. 일 년보다는 하루가 더 짧으니까요. 그리고 죽음을 맞이합니다.
연옥에서 고통당할 때 천사가 지나갔습니다.
이 사람은 천사에게 따졌습니다. “왜 거짓말했어요. 하루라면서요. 벌써 20년이 지났어요!” 하루면 된다고 해서 연옥에 왔는데, 그보다 훨씬 오랜 시간 있으니 억울할 수밖에요. 하지만 천사가 말합니다. “네가 느끼기엔 20년일 수 있지만, 아직 하루가 지나지 않았다.” 연옥에서의 하루는 그만큼 긴 시간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이야기의 결론은 이렇습니다. 지상에서 받는 고통은, 연옥에서 받을 고통을 대신 치르는 시간으로 여기라는 겁니다. 오히려 감사한 일이죠. 연옥에서 받을 고통을 여기서 치르고 가니까요. 이 말씀을 들으니 겪고 있는 어려움과 힘듦을 감사하게 여기게 됐습니다.
삶을 잘 살아야 하는 이유는 많습니다.
그 이유 중 단연 으뜸은, 연옥 이야기에서 말해줍니다. 지상에서의 삶이 끝이라고 여기고 안일한 마음으로 살면, 그에 따른 고통과 손해는 본인이 고스란히 떠안게 됩니다. 어쩌면 지상에서의 삶보다 더 오랜 시간 힘들게 보내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곳을 다녀오진 않았지만, 다녀왔다는 분들의 증언을 들어도 그렇습니다. 지금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살아내야 할지 명확해집니다. 그렇게 살아내도록 봉헌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