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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은총입니다.

by 청리성 김작가

한 해의 마지막 날을 맞이했습니다.

매년 이날이 되면 머릿속이 복잡해집니다. 한 해 동안 있었던 주요 장면들이 여기저기서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떠오른 장면의 감정을 색상으로 표현하면, 각 장면의 색상은 제각각입니다. 밝은 색상 계열도 있고 어두운 색상 계열도 있습니다. 어떤 장면은, 좋은 감정인지 그렇지 않은 감정인지 헷갈리기도 합니다. 당시에는 좋았던 것 같은데, 떠오른 이미지의 색상은 어두운 톤입니다.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당시에는 마음이 불편했는데, 지금 떠오른 이미지의 색상은 밝은 톤인 겁니다. 시점에 따라 감정의 톤이 달라진다는 것을 알게 되는 날입니다. 그래서 머릿속이 더 복잡한지도 모르겠습니다. 헷갈리니까요.


일 년 365일은, 모두 같은 날입니다.

지나가는 하루가 있고, 새로 맞이하는 하루가 있습니다. 하지만 12월 31일과 1월 1일은 그 느낌이 다릅니다. 평소 일찍 자던 사람도, 자정이 지나 다음 날로 넘어갈 때를 기다립니다. 매일 뜨는 해를 보기 위해, 굳이 먼 곳까지 가서, 밤을 새우며 기다리기도 합니다. 왜 이럴까요? 한 해 마지막 날과 한 해 첫날이라 그럴까요? 그렇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또한, 누군가한테는 별 의미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의미를 담지 않으니까요.


이날이 의미 있게 느껴지는 이유는, 의미를 담기 때문입니다.

한 해를 보면, 의미 있는 날이 곳곳에 존재합니다. 대표적으로는, 생일이 그렇고 기념일이 그렇습니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기억해야 하는 날도 있습니다. 의미 있는 날이라고 해서 항상 밝은 톤의 날은 아닙니다. 짙은 어둠과 슬픔으로, 꼭 기억해야 하는 날이 있습니다. 누군가한테는, 매달 특정 요일이 그럴 수 있습니다. 공식적으로 의미 있는 날도 있지만, 각자가 기억하고자 하는 의미 있는 날도 있으니까요. 어쩌면, 공식적인 날보다, 각자가 기억하는 날의 의미가 더 깊을지도 모릅니다. 자기의 모든 것일 수도 있으니까요.


의미는 그렇습니다.

내가 담으면 의미가 됩니다.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담느냐에 따라, 의미의 톤이 달라집니다. 시련이었지만 걸림돌이 아닌 디딤돌로 담는다면, 그 돌의 색상은 밝은 톤이 됩니다. 도움을 받았지만, 감사보다는 당연함으로 여겼다면, 그 도움의 색상은 어두운 톤이 됩니다. 더 받지 못한 불만으로 확대한다면, 색은 더 어둡게 짙어지겠지요. 드러난 현상보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톤이 결정됩니다. 어떤 톤으로 담을지 내가 결정할 수 있습니다.


올 한 해를 돌아봅니다.

굵직한 몇몇 장면들이 떠오릅니다. 매우 어두운 톤이네요. 유난히도 어려움이 많은 해라, 그런 듯합니다. 여기에 의미를 더해봅니다. ‘이 어둠의 장면이,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의미를 찾고 담아봅니다. 덧칠이 되면서 어두웠던 장면이 점점 밝아짐을 느낍니다. 돌아보면 그렇습니다. 절망적이고 암울한 순간이 찾아왔었습니다. 하지만 어떻게든 또, 해결되었습니다. 신기하게 그렇게 되었습니다. 귀인을 만나기도 하고, 변할 것 같지 않은 상황이 변하기도 했습니다.


깔딱 고개를 몇 번 넘었습니다.

어려움에서 완전하게 벗어난 것은 아니지만, 막막함의 껍질이 많이 얇아졌습니다. 깔딱 고개 몇 번을 넘으며, 그 안에 숨겨진 빛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도 그런 경험이 몇 번 있었는데, 잊고 있었습니다. 빛은 사라지지 않고 항상 있는데, 그것을 보지 못한 것이죠. 빛으로 향하기보다, 어둠에 눌려 고개를 숙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고개를 떨구지 않으려 합니다. 고개를 떨군 상태에서는 빛을 바라보지 못하니까요.


모든 것이 은총입니다.

불편하고 어렵고 힘든 상황들이 향한 곳은, 은총이었습니다. 이해하지 못했을 뿐이지, 이유가 없는 건 아니었습니다. 평소의 경험과 지식으로 헤아릴 수 없는, 은총의 길로 안내하는 안내자였습니다. 인내를 통해 기다리면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때, 안내자는 그 역할을 다합니다. 이것을 잊지 말자고 다짐해봅니다. 돌아보면 은총입니다. 은총이라 여기며 그 길을 살필 때, 길이 보입니다. 은총의 길인데, 스스로 벼랑 끝으로 몰고 있는 건 아닌지 살펴봐야 합니다. 내 마음이 향하는 곳이, 곧 그곳이기 때문입니다. 내 마음은 지금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살펴보는 한 해의 마지막 날이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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