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허망

제발 좀...

by 청리성 김작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않은 것을, 발견한 느낌


필자는 커피를 매우 좋아한다.

커피 이론이나 원두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마시는 것을 좋아한다.

하루에 보통 4~5잔 정도 마시고, 한여름에도 따뜻한 커피를 마신다.

더운 것을 싫어하지만, 커피만큼은 따뜻해야 제맛이라는 것이 지론이다.


휴일 아침에 일어나면, 원두를 갈고 물을 끓인 다음, 정성스럽게 드립을 한다.

처음 커피를 내려 마실 때는, 포트에 물을 끓이고 그 자체로 물을 부었다.

물을 붓는 속도와 양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는 말을 듣고, 작은 핸드 드립 주전자를 구입했다.

한 주전자로, 커피 한 잔이 나오는데, 보통 2번 정도 내려 마신다.

그렇게 기본으로, 아침에 2잔의 커피를 마시게 된다.

글을 쓰거나 무언가에 집중하는 날이면, 연거푸 4잔까지 마시기도 한다.


어느 아침에, 휴일 아침 루틴에 따라, 물을 끓이고 원두를 갈고 드립을 했다.

커피를 담아내는 유리 주전자가 깨져서, 텀블러로 대체했다.

약간 높긴 했지만, 몇 번 사용한 경험으로는, 나름 괜찮았기에 그대로 사용했다.

물이 절반 정도 내려갔을 때쯤, 드립 주전자를 내려놓으려다 텀블러를 건드렸다.

텀블러는 그대로 넘어졌고, 물에 젖은 커피 가루와 커피가 싱크대 전체를 덮어버렸다.

싱크대에 있던 물건들을 하나하나 들어 올리면서, 물티슈와 키친타월로 닦아냈다.


‘허무’를 넘어 ‘허망’했다.

공복에 넘어가는 따뜻한 커피 한 모금의 행복이 날아간 것이 그랬다.

쟁반 바닥 안쪽 깊이까지 들어간, 젖은 커피 가루를 닦는 것이 그랬다.

누리고 싶은 작은 행복이 날아가고, 정성을 들인 것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것이 그랬다.

커피를 쏟은 것은 아주 미약한 것이지만, 말할 수 없이 허망함을 느낀 것이다.


요즘 많은 사람이 느끼는 감정 중의 하나가, 허망함이 아닐까 생각한다.

‘코로나 19’로 희생하시는, 공무원분들이나 의료진분들은 더욱 그럴 것 같다.

잠잠해질 만하면 터지는 상황을 보면서, 속이 터지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개인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고생하시는 분들이 허망하지 않도록 노력해야겠다.


당연하다고 생각한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님을 깨닫는다.

하지만 행동의 변화는 거의 없다.

신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가득하다.

일부 생각 없는 사람들은 오히려 극한 상황으로 몰고 가고 있다.

무엇을 위해서인지 알 수는 없다.

그것이 무엇을 위한 것이든, 타인에 대한 배려가 없다면, 명분이 되지 않는다.


가장 큰 피해를 받는 것은, 사회적 약자들이라는 것도 기억해야 한다.

사랑을 실천해야 할 사람들이, 보호받아야 할 사람들을 아프게 하고 있다.

지금은 자신의 행동이 정당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정의롭지 않은 행동은, 언젠가는 그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그때, 지금 고통에 허덕이고 있는 사람들의 허망함을 느끼게 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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