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부 교구 주보를 넘기다, 반가운 이름을 만났다.
‘십자가의 성 요한’. 주보에 올라오는 연재 글이 있는데, 그 글에 ‘십자가의 성 요한’이 쓰신 「가르멜의 산길」의 한 문장을 인용했다. 이 책의 제목은 많이 들었다. 읽어야겠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이번 기회에 정말로 읽어야겠다고 마음을 굳혔다. 기억에 관한 글인데, 글 안에서 십자가의 성 요한은, 기억의 정화(淨化)를 중요하게 생각했다고 언급한다. 지금을 기쁘게 살다가도 과거의 고통스러운 기억이 떠오르면, 그 일이 지금 똑같이 일어나는 것처럼 느낀다는 거다. 좋았던 오늘이 사라지고 불안한 과거가 현재를 덮고, 미래까지도 영향을 준다는 말이다. 부정적인 생각으로 뒤덮이는 거다.
“인간은 본시 연약한 것이므로 제아무리 훈련이 되었다 할지라도 기억을 가지고는 실패하기가 쉬우니, 생각을 끊고 고요와 평화 속에 있던 마음도 변하고 어지러워지는 것은 기억 때문인 것이다.” (십자가의 성 요한, 「가르멜의 산길」 중)
문득 그럴 때가 있다.
고요했던 마음이 갑자기, 알 수 없는 이유로 가라앉는다. 불안이 엄습하기도 하고, 뭔가 뻥 뚫린 듯이 휑한 기분이 들 때도 있다. 갑자기 올라온 감정으로 어리둥절하다가, 이 감정의 출처를 찾아 생각해 보면, 불안한 생각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계속 시도했지만,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을 때, 불편한 마음이 든다. 불편함은 시간이 지나면서, 불안함으로 바뀐다. 이후에 시도하는 도전도 비슷한 결과가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불안함은 비슷한 경험을 통해 되살아난다. 불편한 기억이, 불안함을 만드는 거다.
우리는 누구나 불편함과 불안함을 경험한다.
그 기억에 계속 머물진 않지만, 문득 되살아나서 마음을 괴롭힌다. 어제, 호주 오픈 테니스 남자 단식 결승전을 봤다. 테니스 경기를 즐겨봤던 건 아닌데, 일정을 알게 돼서 보게 됐다. 세계랭킹 1위와 2위의 대결이었다. 해설자의 소개를 듣는데, 세계랭킹 2위 선수는 그랜드 슬램에서의 우승 경험이 없다고 했다. 투어 등 다른 경기에서는 우승 경험이 많지만, 그랜드 슬램에서만큼은 없다고 했다. 항상 우승 후보로 언급됐지만, 실제 우승하지는 못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 말을 들으니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두 선수 다 잘 알지는 못했지만, 세계랭킹 2위 선수를 응원했다. 풀지 못했던 숙원을 풀었으면 하는, 마음에서였다.
경기는 막상막하였다.
첫 번째 경기를 내주고, 두 번째 경기는 타이브레이크까지 가는 접전을 펼쳤다. 승부가 기우는 결정적인 장면이 연출됐다. 네트에 맞고 넘어온 공으로 점수를 내준 거다. 분위기가 싸해졌다. 결국, 그 경기마저 내주고, 다음 경기에도 지면서 3-0으로 패하고 말았다. 패한 선수는 자리에 앉아 고개를 숙이고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었다. ‘이번에도 또….’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지금까지 그랜드 슬램에서 우승하지 못한 기억이, 기울어지는 승부에 쐐기를 박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기억은 이렇게 무섭다. 한순간에 기선 제압할 수도 있고, 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기억을 바꿀 순 없다.
이미 벌어진 상황을 바꿀 순 없는 거다. 하지만 그 기억을 어떻게 하느냐는, 달리할 수 있다. 과거의 안 좋은 기억을 되새길 수도 있고, 미래의 원하는 모습으로 새롭게 세팅할 수도 있다. 그랜드 슬램 우승을 하지 못한 경험은 사실이다. 그리고 그렇게 기억할 순 있다. 하지만 그 기억이 아닌, 그랜드 슬램에서 우승하는 모습을 계속 그렸다면 어땠을지 싶다. 결승전에 진출하고 계속 그렇게 그림을 그렸을 거다. 이미지 트레이닝이나 마인드 컨트롤을 통해 그렇게 했을 거다. 하지만 불안한 상황이 거듭되면서 그 모습보다는, 우승하지 못했다는 부정적 기억이 더 크게 자리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누구나 그러하듯이 말이다.
부정적인 기억과 생각은 악마에게서 온다.
악마가 원하는 모습이 그런 모습이기 때문이다.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그 안에서 허우적대는 모습을 좋아한다. 악마의 유혹이랄까? 마음에 어둠이 계속되고 부정적인 생각에 빠진다면 그것은 악마의 유혹에 빠진 거다. 그 안에서 벗어나야 한다. 어둠을 이기는 것은 빛이다. 밝은 점을 찾고 그곳을 향해 방향을 돌려 걸음을 옮겨야 한다. 그것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분이 진정 원하는 모습이다. 하고자 하면 방법이 생긴다. 하고자 하는 마음을 굳게 다짐하고 그렇게 나아가고자 한다면, 그 방법이 보일 거다. 그것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