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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진 사람이 더 받고 가진 것 없는 자가 빼앗기는 원리

by 청리성 김작가

성경에 쉽게 이해되지 않는 구절이 나온다.

가진 자는 더 가지고, 가진 것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긴다는 문장이다. 사회적으로 매우 심각한, ‘부익부 빈익빈’ 현상에 동조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미 가졌는데, 더 받는다니 참 불공평하게 느껴진다. 가진 것도 없는데, 가지고 있는 것마저 빼앗긴다는 말은 매우 매몰차게 들린다. 왜 이런 말이 성경에 버젓이 있는 것일까? 가난한 이웃에게 자비를 베풀고 사랑으로 대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말이다.


달란트 이야기도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다.

다섯 달란트를 받은 사람과 두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그것과 같은 돈을 벌어 주인에게 돌려준다. 주인은 이 종들을 크게 칭찬하며 잔치를 즐기라고 말한다. 하지만 한 달란트를 가진 사람은 그것을 땅에 묻었다가 그대로 가져온다. 주인은 게으른 종이라고 혼내고 가지고 있던 한 달란트마저 빼앗으라고 말한다. 참 매몰찬 주인이 아닐 수 없다. 겉으로 드러난 내용만 보면 그렇다.


여기에는 숨겨진 메시지가 있다.

처음에는 몰랐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깨닫게 되었다. 자신이 받은 달란트만큼 번 사람들은, 자기가 받은 것에 감사하며 활용했다. 그리고 결과를 만들었다. 하지만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어떻게 했는가? 가지고 있던 한 달란트를 땅에 묻어 두었다. 주인의 말처럼 은행에라도 맡겼으면 이자라도 받았을 텐데,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자신이 받은 것이 한 개든 두 개든, 받은 것에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감사한 마음이 있을 때, 그것을 활용해서 결과를 내도록 애쓰게 된다. 감사한 마음 그리고 그 마음을 표현하는 행동이, 메시지의 핵심인 거다.

가진 자가 더 받는다는 것.

그리고 가진 것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긴다는 말도 이와 같다. ‘부익부 빈익빈’을 강조하려는 게 아니다. ‘가진 자’라는 표현 앞에는 이 말이 생략되어 있다. ‘베풀면서’라는 표현이다. 베풀면서 가진 자는 더 받는다는 말이다. ‘가진 것이 없는 자’ 앞에도 생략된 말이 있다. ‘베풀지 않으면서’이다. 가진 것이 없다고 베푸는 마음도 갖지 않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긴다는 말이다. 달란트의 가진 사람의 비유와 비슷한 느낌이다. 얼마나 가졌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감사한 마음과 베풀고자 하는 마음을 품었느냐 그렇지 않으냐가 다른 결과를 낸다.


가진 사람이 베풀기는 쉽다.

가지고 있으니 나눠도 자신이 쓰는 데 여유가 있기 때문이다.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은 어떤가? 베풀기가 쉽지 않다. 이것을 내어놓으면 내가 쓸 게 없거나 줄어들기 때문이다. 더 움켜쥐게 되는 거다. 몸의 원리와도 같다. 영양소가 언제 들어올지 모르는 몸의 상태는, 열량을 움켜쥐게 된다.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의 태도와 흡사하지 않은가?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규칙적으로 영양소가 들어오는 몸은 어떨까? 열량을 소비한다. 다시 들어올 것을 알기 때문이다. 가진 사람이 더 받는다는 말과 같다. 논리적으로는 그렇다. 하지만 논리를 조금만 비틀어보면 어떨까?


영양소와 열량의 관계를 조금 비틀어 보자는 거다.

영양소가 들어올 것을 아니, 열량을 소비하는 게 아니다. 열량을 소비하니 영양소가 들어오는 거다. 그리고 열량을 소비하지 않으니, 영양소가 들어오지 않는 거다. 차 있으면 들어올 수 없다. 비어 있어야 들어올 공간이 생긴다. 컵에 물이 차 있으면 다른 것으로 채울 수 없는 것과 같다. 물을 비워야, 다른 것으로 채워진다. 주는 만큼 아니, 그 이상 채워진다는 말이다. 움켜쥔 손으로는 다른 것을 잡을 수 없다. 움켜쥔 손을 펼쳐야 다른 것을 잡을 수 있다. 중요한 건, 얼마만큼 더 가졌느냐가 아니다. 움켜쥔 손을 펼칠 용기를 낼 수 있느냐다. 움켜쥔 손을 펴야 다른 것을 잡을 수 있다. 더 좋은 몫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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