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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의 자세

by 청리성 김작가

백령도에서 군 생활을 했다.

해병대였다. 백령도라는 섬은, 자대 배치를 받으면서 처음 알았다. 재수 없으며 그곳으로 간다며, 동기들은 그곳에 가지 않길 바랐다. 자대 배치는 강당에 모두 모여 제비뽑기로 했다. 대표 몇 명이 나가 통에 들어있는 작은 공을 잡았다. 대표들은 배정받는 부대를 상징했다. 대표가 뽑은 번호와 가슴에 달고 있던 번호가 연관성이 있으면, 그 부대에 배치받는 거였다. 30년이 조금 못 된 기억으로는 그렇다. 번호가 불리면 누군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누군가는 절망하는 표정을 지었다. 절망하는 표정은 대체로, 백령도 혹은 연평도였다.

섬으로 끌려가는 기분이 들었던 것 같다.

나는 설렜다. 군 생활 아니면 언제 들어가 보겠냐라는, 그런 느낌이었다. 군 생활을 돌이켜보면 힘들고 어려운 점이 많이 있었던 건 사실이다. 무엇보다 환경이 열악했다. 섬이라 보급이 잘 안되었다. 배가 들어오지 못해서, 반찬이 김 하나였던 때도 있었다. 피엑스라고 하는 곳에 들어온 품목 중 가장 좋은 것이, ‘애플파이’였다. 휴가 나가서 친구 면회 간 적이 있었는데, 그곳에서는 전자레인지에 데워먹는 것도 있어서 놀랐던 기억이 있다. 외박도 면회를 와야 가능했다. 섬이라, 면회는 정말 큰맘 먹지 않으면 오기 힘들었다. 시간과 비용이 적지 않게 들었기 때문이다.


전반적으로는 재미있었다.

지나고 나니 그랬다는 것이지, 그 안에서는 참 힘든 상황이 여럿 있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무언가를 먹이는 거였다. 백령도는 작은 도마뱀이 많았다. 서식지라고 했다. 봄에 진지 공사를 나가면, 잠들었던 도마뱀들이 나온다. 선임과 함께 있던 후임은 그 도마뱀을 보는 순간, 눈앞이 깜깜해진다. 그 도마뱀을 먹어야 했기 때문이다. 선임이 보지 못했다는 것을 알아채면, 빠르게 다른 곳으로 도망쳤다. 굼벵이도 먹었다. 엄지손가락 정도로, 꽤 컸다. 제대를 앞둔 선임 중 누군가는, 자기가 그것을 먹기도 했다. 고단백이라면서 말이다. 듣기로는, 인천시에서 공문이 내려왔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도마뱀이 멸종 위기에 처했으니, 먹는 것을 삼가라는 거였다. 얼마나 반가운 공문이었는지 모른다.


그곳은 못 먹여서 안달이 난 곳처럼 느껴졌었다.

한번은 소각장에 쓰레기를 버리고 나오는데, 작은 청개구리 한 마리가 뛰어나왔다. ‘소각장에 청개구리라….’ 무심히 쳐다보고 나오는데, 누군가 불렀다. 같은 소대 선임은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고 있었는데, 그의 손에는 방금 봤던 청개구리가 놓여 있었다. 다른 한 손으로 빨리 오라며 손짓했다. 들고 있던 쓰레기통을 내려놓고, 빠르게 달려갔다. “먹어!” 순간, 당황했다. ‘청개구리는 먹이는 목록에 없는데?’ 머뭇거리자 빨리 먹으라며 재촉했다. 장난이겠지? 생각하고 입으로 가져가는데,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잠시 주춤하자, 다시 한번 외쳤다. “빨리 먹어!” 눈 딱 감고 그 아이를 입으로 털어 넣었다. 그냥 삼키려 했는데, 또 다른 임무(?)가 주어졌다. “씹어!” ‘아…….’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씹었다. 물컹한 무언가가 ‘퍽’ 하고 터짐과 동시에 입안에 퍼졌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찜찜함이었다. 빠르게 경례하고 되돌아가 입안을 헹궜지만, 찜찜한 느낌과 냄새가 한동안 계속됐다.


날 좋은 휴일.

뒷마당으로 빨래를 널러 갔다. 인적이 드문 곳이라 서둘러 널고 나오려고 했다. 빨래를 널고 돌아서는데, 원래 거기 있었는지 아니면 방금 왔는지 모를 선임 두 명이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경례하고 옆으로 지나가려는데, 불렀다. 돌아보니 한 손에 무언가를 집어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사마귀였다. 꽤 큰 놈이었다. ‘에이 설마….’ 소각장에서와 마찬가지로 이건 아니겠지 하는데, 조용하지만 단호한 한마디가 들렸다. “먹어!” 이번엔 좀 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마귀는 독이 있는 아이가 아니던가. 청개구리는 어찌했다 하지만, 사마귀는 잘못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매우 긴장됐다. 시키는데 안 할 수도 없어 눈 딱 감고 사마귀 다리를 집어 들어 입으로 가져가는데, 선임이 내 손을 세게 내려쳤다. 사마귀는 한쪽으로 내동댕이쳐졌다. 손은 아팠지만, 마음은 편해졌다. 먹지 않아서 다행이라 여겼다. 선임은 기특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멋지게 한마디 했다. “난, 내가 직접 먹어보지 않은 건 먹이지 않는다.” 그러곤 내 옆을 지나 다른 곳으로 갔다.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

자칫, 큰일 날 뻔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정신이 제대로 박힌 선임이 아니었다면, 진짜 먹였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식은땀이 맺혀있음을 느끼면서, 마지막으로 한 말이 계속 맴돌았다. 자기가 먹어보지 않은 건 먹이지 않는다는 말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지금까지 기억하는 것을 보면 그렇다. 이 말은 사회생활을 하는데, 하나의 기준이 되었다. 내가 직접 해보지 않은 일은 시키지 않는, 습관이 된 거다. 내가 직접 해보지 않은 일은, 피드백을 명확하게 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자기가 먹어보지 않은 것을 먹였을 때 어떻게 될지 몰라 먹이지 않은 선임처럼, 그렇게 했다.


낯선 프로젝트가 들어오면 먼저 실행했다.

이런 습관은, 훗날 후배들에게, 어떤 프로젝트라도 피드백을 명확하게 줄 수 있는 선임이 되는 계기가 되었다. 해보지 않은 일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줄 수가 없었다. 직접 해본 일은 이론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예상되는 문제점도 알려줄 수 있다. 어떤 느낌이 드는지까지 알려줄 수 있다. 따라서 후배들에게 말한다. 먼저 직접 해보고 후배들에게 지시하라고 말이다. 경력이 더 쌓이고 나서는, 맥락이 같은 일이라면, 해보지 않은 일도 피드백을 줄 수 있게 되었지만 말이다. 해본 사람은 명확하게 알게 되고, 전문가가 된다. 전문가가 되어야, 제대로 알려줄 수 있다. 전문가로 불리는 사람들은, 이런 마음에서 시작하지 않았나 싶다. 내가 먼저 해보고 알려주자는 마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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