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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이 아니다.

by 청리성 김작가

양양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계획한 여행은 아니었다. 결정하고 바로 출발했기 때문이다. 아내가 밖에 나가고 싶다고 말했는데, 전부터 바다가 보고 싶다는 말이 생각나서 가게 됐다. 간단하게 가는 여행이라 챙길 것도 별로 없었다. 그렇게 출발했다. 처음에는 강릉 혹은 속초에 가자고 했다. 가본 곳이라 그나마 익숙했기 때문이다. 강릉보다 속초가 조금 더 가까우니 그곳으로 결정하고 출발했다. 숙소를 정한 것도 아니었다. 옆자리에 앉아서 검색하던 아내가 ‘하조대’라는 곳을 언급했다. ‘어?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데?’ 낯설지 않은 지명이었다. 검색에서 찾은 몇 가지를 이야기하다가, 그곳으로 목적지를 바꿨다.


양양이라는 곳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양양도 낯선 곳은 아니었다. 강릉에 가던 중 우연히 들렀던 곳이었다. 외국과 같은 풍경의 해변이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서핑하는 사람들이 즐겨 찾는 해변이라고 했다. 양양에 대한 기억은 그랬다. 건너편 차선은 체증이 심했다. 하지만 우리가 가는 길은 막히지는 않았다. 2시간 정도 걸렸다. 오후 늦게 출발했는데, 저녁이 되기 전에 도착했다. 알아본 숙소 앞에 도착했는데, 주변이 너무 휑했다. 식당도 보이지 않았다. 이곳에 묵기에는 뭔가 부족해 보였다. 일단 위치만 확인하고, 바다로 향했다.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살피기 위해서였다.

아주 가깝지는 않았다. 차로도 몇 분 정도 가야 했으니 말이다. 거리도 거리지만, 점점 어둑해지는데, 숙소 근처에 아무 곳도 없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 바다에 도착하니, 커다란 조형물이 여기가 ‘하조대’라고 알려주었다. 도착한 곳은, 기억하는 양양 해변과는 완전히 달랐다. 겨울이라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주변 자체도 그랬다. 고요했다. 바람이 불어서인지 원래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물결이 셌다. 고요한 바다에 밀려오는 강한 파도가 인상적이었다.


도착한 바다 오른쪽 멀리에 환한 불빛이 보였다.

식당으로 보였다. 아마도 횟집이 아닐까 했다. 확인해 보자며, 그곳으로 이동했다. 횟집이 맞았다. 두 곳이 붙어있었다. 대게도 함께 파는 집이었다. 그 식당 말고는 다른 식당이 보이지 않았다. 치킨집 하나 있는 게 다였다. 정말 너무 고요한 동네였다. 알아본 숙소와 이곳과의 거리는 더 멀었다. 어찌할지 고민하는데, 근처에도 숙소 몇 곳이 보였다. 가장 깔끔해 보이는 곳에 전화했는데, 가격이 괜찮았다. 바로 숙소를 예약하고 짐을 내려놓고 나왔다.


밥을 먹고 밤 바다를 잠시 걸었다.

해변 중간에 조명이 늘어서 있어, 어둡지는 않았다. 폭죽을 터뜨리는 사람도 보였다. 저녁이라 그런지 바닷바람이 더 세졌다. 일단 바다 맛보기만 하고 숙소로 들어갔다. 이곳이 일출 명소라는 것을 알고, 검색해 보니 7시 30분이 일출 시각이라는 것을 알았다. 너무 이른 시간도 아니라, 일출을 보러 가기로 했다. 일출을 보고자 마음먹은 건 거의 처음이지 않나 싶었다. 슈퍼 아줌마한테 어디로 가면 되는지 확인까지 마쳤다. 숙소 바로 뒤편으로 올라가면 됐다.


이른 아침, 아직 어둠이 그대로였다.

30분 전에 출발해서 올라가면 여유 있게 볼 수 있겠다고 생각하고 출발했다. 어두운 곳인 데다 낯선 곳이라 마음에 살짝 긴장감이 돌았다. 가는 길에 해변도 보였는데 또 다른 느낌이었다. 군사시설이 있어서인지 철조망이 쳐져 있었다. 정자와 등대 두 곳이 있는데, 일단 정자 쪽으로 가기로 했다. 올라가서 보니, 아직 어둡기는 했지만, 커다란 바위들이 보였고 그곳에 부딪히는 파도가 보였다. 장관이었다. 커다란 바위 위에 소나무 한 그루가 있었는데, 심상치 않아 보였다. 옆에 설명 표지판을 보니, 보호수라고 적혀있었다. 200년 된 소나무라고 했다.

아무도 없었다.

겨울이라 일출을 보러 오는 사람이 없나 싶었다. 시간이 다가오고 점점 밝아지기 시작했는데, 해는 어디에 있는지 느낌조차 오지 않았다. 하늘과 바다의 경계가 불그스름하게 되는 곳이 아닐지 짐작하고 그곳만 뚫어지게 쳐다봤다. 시간이 됐는데도 보이지 않았다. 날을 더 밝아졌다. ‘날 샜다.’라는 표현을 이런 때 하는 게 아닐지 싶었다. 나도 모르게 이 말이 뛰어나왔기 때문이다. 날이 밝아지자, 몇몇 사람들이 올라왔다.


등대 쪽을 보니 사람들이 보였다.

등대로 이동했다. 그곳에서도 역시 보이지 않았다. 정자에서는 나무가 많아 시야가 좀 가렸었는데, 등대에서는 시야가 트여서 바다가 더 잘 보였다. 결론은 날이 흐려서 해가 보이지 않는 것으로 정리되었다. 우리도 그렇고 주변에 있던 사람들도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아쉽지만, 그래도 좋은 경관을 봤다는 것으로 만족하고 내려왔다.


일출을 보지 못해 아쉬웠다.

그렇다고 해가 뜨지 않은 건 아니다. 우리는 물론, 일출을 보지 못한 사람들도 그렇게 말했다. 흐려서 보이지 않는 것 같다고 말이다. 해가 보이지 않았지, 해가 뜨지 않았다고 하는 사람은 없다. 날이 밝아오는 것을 보면서, 그것을 믿는다. 해가 보이진 않지만, 떴다는 것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라 여겨진다.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여긴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원하는 대로 보이지 않는다고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았을까? 아니다. 잘 생각하고 살펴보면, 원하는 대로 그리고 원하는 만큼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지, 아예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아니다. 원하는 것이 아닌, 필요한 것으로 이루어질 때도 있다.


원하는 것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그것이 나에게 독이 될 수도 있다. 오히려 이루어지지 않아, 다행이라 여길 때도 있다. 당장은 아니지만, 시간이 지나고 돌아보면 그렇다.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이 아니듯,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삶이 잘못되는 건 아니다. 어떻게든 나에게 필요한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이 믿음이 있으면 어떤 방향으로 흘러도,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리고 실제 그렇게 되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된다. 보이지 않아도 있다는 것을 믿는 사람이 얻게 되는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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