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것을 잘 챙긴다.’와 ‘자기만 안다.’
두 표현이 같은 의미라면, 어떻게 생각하는가? 같은 의미라고 표현한 건, 같은 모습에 대한 의견이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어떤 행동을 보고, 누군가는 자기 것을 잘 챙긴다고 표현하고 누군가는 자기만 안다고 표현하는 거다. 전자는, 좋은 시선으로 바라봤을 때 하는 표현이다. 매사에 꼼꼼하게 챙기는 모습을 보고 이렇게 말한다. 후자는, 반대다. 꼼꼼하게 챙기는 모습은 좋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거다. 자기 것만 챙긴다고 여긴다.
왜, 의견이 다를까?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서 생기는, 해석의 차이 때문이다. 좋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은, 뭘 해도 좋아 보인다. 약속에 늦어도 그 사람의 잘못이 아니라, 이유를 찾는다. 무슨 급한 일이 있었던지, 불가피한 사정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안 좋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은 어떨까? 뭘 해도 안 좋게 보인다. 친절을 베푸는 모습조차 가식으로 본다. 무슨 꿍꿍이가 있을 것이라 짐작한다. 객관적인 사건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마음이 중요한 이유다.
객관적이라는 말을 신뢰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어떤 사건이나 상황에 관한 의견을 나눌 때, 객관적으로 말하라고 이야기한다. 이 말을 들을 때마다 생각한다. ‘사람이 어떻게 객관적일 수 있지?’ 영화 <도둑들>에서 이를 잘 설명하는 장면이 나온다. ‘예니콜’이 ‘마카오박’과 이야기를 나누고 나오는데, ‘잠파노’와 마주친다. ‘예니콜’이 웃옷을 걸치면서 나오는데, ‘잠파노’에게 한마디 한다. “벗는 게 아니라 입는 중이야.” 그 장면만 봤을 때 누군가는 입는 모습을 볼 수 있고 누군가는 벗는 모습으로 볼 수 있다. 실제가 중요한 게 아니라, 바라보는 사람의 시선과 생각이 그 모습을 결정한다는 말이다.
인간은 매우 주관적인 동물이다.
주관적인 동물이라는 해석 안에는, 생각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포함한다. 사람의 생각에 따라, 자기 생명을 보존할 수도 있고 잃을 수도 있다. 잘 아는 사건이 있다. 냉동고에 갇힌 사람이 다음 날 얼어 죽은 상태로 발견되었다. 하지만 냉동고는 실제 작동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냥 한 공간에 갇힌 것뿐이다. 질식사라면 이해가 된다. 갇혀있었으니, 산소가 부족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얼어 죽었다는 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스스로 ‘이곳은 냉동고이니 나는 곧 얼어 죽을 거야.’라는 생각이 강했던 거다. 생각은 곧 현실이 되었다. 그럴 상황이 아니었는데도 말이다.
반대의 상황도 있다.
잘 아는, ‘피그말리온 현상’이다. 비타민을 먹으면서, ‘이 약을 먹으면 내 병이 나을 거야.’라고 믿으면 실제 병이 낫는다. 지금은 아니겠지만, 예전에는 군대에 약이 다양하지 않았다고 한다. 아픈 증상에 따라 약을 처방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니, 비타민을 주면서 각종 질병에 해당하는 약이라며 줬다고 한다. 병사들은 그 약을 먹고 실제 나았다. 병사들이 실제 먹은 것은 비타민이지만, 마음으로는 자기 질병을 치료하는 약을 먹었기 때문이다.
생각은 매우 중요하다.
사람을 살리고 죽이는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많은 것을 변화시킬 수 있다. 최악의 상황을 기회로 만들기도 하고, 기회를 최악의 상황으로 만들기도 한다. 중요한 건 실제 상황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생각이다. 나는 어떤 생각을 중심에 두고 살아가고 있는가? 내 삶의 방향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살피는 가장 중요한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