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찜질방에 갔다.
불가마에서 땀을 좀 빼고, 때를 밀고 싶은 마음으로 갔다. 오랜만에 갔는데, 그 사이 찜질복 대여료가 100% 올라있었다. 1,000원에서 2,000원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인상 시기는, 1월 1일 자였다. 새해는, 새롭게 시작한다는 좋은 의미도 있지만, 무언가를 조정해도 큰 저항감을 주지 않는다는 묘한 기운이 있다. 아마도 그것을 염두에 둔 듯했다. 이유는, 모든 공공요금 인상이라고 적혀 있었다. 다른 곳이 올랐으니, 불가피하게 올린다는 말이다. 그냥 원가 상승이라고 해도 이해할 텐데, 굳이 다른 곳 핑계를 댈 필요가 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고온 불가마에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안경이 뿌옇게 될 정도로 습한 기운이 덮쳤다. 점심 이후였는데, 이제 막 시작한 듯한 상쾌함도 느껴졌다. 안에 아무도 없어서 더 그랬다. 10분 정도 있었는데, 얼굴부터, 온몸이 열에 쪼그라드는 느낌이 들었다. 줄줄 흐르는 땀이 느껴졌고 실제 보기도 하니, 그 자체로 상쾌했다. 밖으로 나와 얼음 방에 들어가 땀을 식혔다. 한파 특보가 발령된 상황에 얼음 방이라니. 가끔 이러고 있으면 이곳은, 마치 바깥세상과 단절된, 또 다른 세상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한여름에 불가마에 들어갈 때도 그렇고.
불가마와 얼음 방 몇 번을 순회하고 밖에 앉았다.
땀을 많이 빼서인지, 기운이 좀 빠진 느낌이 들었다. 물을 마시면서 아내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 단편 소설을 집필 중이라는 이야기를 꺼냈다. 2월 말과 3월 말, 단편 소설 공모전에 내려고 한다는 말도 했다. 아내는 에세이만 쓰고 있는 나의 문체가 좀 딱딱하다는 말을 종종 했었다. 드라마도 보고 소설도 좀 읽으면서, 좋은 문장들을 섭렵하라는 이야기도 했었다. 알고 있지만 잘 안되는 부분이라 가만히 있는데, 아내가 자세를 바꾸더니 최근 본 드라마 이야기를 꺼냈다.
제목은 묻지 않아 모르는데 대략 내용은 이렇다.
세탁소를 운영하는 노부모 아래, 아들이 결혼해서 함께 살았다. 아들은 사법고시 1차를 수석으로 합격했다. 수석이라, 2차는 무난하게 합격할 것으로 여겼다. 하지만 9수까지 했는데, 합격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죽었다. 슬하에 두 아이가 있었는데, 아내는 악착같이 일하면서 아이들을 키웠다. 그러다 막내 아이가 거의 실명되고 있다는 것을 안다. 다행히 회복할 수 있는 안약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는데, 한쪽 눈에 4억이라는 말을 듣는다. 양쪽 하면 8억이다. 노부모는 아들 기일에 맞춰 나물을 캐러 산에 갔다가 고립된다. 산속을 헤매던 중, 체격이 좋고 목에 문신이 있는 사내가 커다란 보따리 두 개를 땅에 묻는 것을 본다. 사내가 떠나고, 그곳을 파보게 된다. 돈이었다. 100억 정도 되는 돈이다. 누군가 자식에게 상속했는데, 15년이 지나면 양도세를 내지 않는다고 하여 집에 둔 돈이었다. 그 돈을 사내가 훔친 거다. 아들 부모는 떨리는 마음으로 일단 내려왔는데, 우연히 장례식장에서 돈을 묻은 사내가 죽은 것을 알게 된다. 돈의 주인이 사라진 거다. 산에 올라가 한 보따리를 가지고 내려왔다. 30억 정도 하는 돈이었는데, 숨길 곳이 없어 사용하지 않는 커버를 씌운 에어컨 안에 넣어두었다. 그런데 세탁소에 불이 난다. 세탁소는 물론 돈까지 모두 타버린다. 이후도 계속 이야기가 이어지는데, 일단 여기까지.
아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이렇다.
이 드라마가 재미있는 이유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이야기가 이어진다는 거다. 다음 이야기는 뭘지, 궁금증을 유발하면서 계속 이야기가 전개되는 것이 재미있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를 써보면 어떻겠냐고 했다. 말은 쉽지. 공감한다.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지는 소설이나 드라마는, 멈추기 어렵다. 내가 드라마를 한 번에 몰아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흐름이 끊기는 게 싫다. 재미있기 때문이고,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기 때문이다.
드라마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작가는 전체 이야기를 설정하지 않았을 거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떠오르는 이야기를 덧붙였을 거다. 아닐 수도 있지만, 가능성이 크다. 글을 써본 사람은 안다. 소설이나 드라마 각본뿐만 아니라, 에세이도 그렇다. 처음부터 기승전결을 다 설정하고 쓰지 않는다. 첫 문장 혹은 어떤 소재로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면, 바로 글을 쓴다. 쓰다 보면 의도한 대로 그대로 밀고 나갈 때도 있지만, 다른 방향으로 흐르기도 한다. 때로는 손이 생각을 따라가지 못하기도 한다. 글쓰기의 카타르시스를 맛보는 거다. 이것이 바로 글쓰기의 매력이다.
“오늘 어떤 글이 나올지 궁금하다.”
글을 쓸 때 하는 생각이기도 하고, 사람들에게 글쓰기에 관해 이야기할 때도 하는 말이다. 실제 그렇다. 오늘 어떤 글이 나올지, 나도 궁금하다. 지금도 그렇다. 처음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삶과도 같다.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예상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나쁘다고 할 순 없다. 더 좋은 방향으로 흘러갈 때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은총이라는 말 이외에 설명할 단어가 있을까? 모든 상황을 불평이 아닌 은총으로 여기면, 은총이 된다. 오늘도 은총 속에 살고 있음에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