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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 비둘기 Mar 08. 2016

알았더라면

관계에 대하여

 아직 봄이 채 다 오지 않은 새 학기였다. 저녁 어스름이 안암역 주변에도 살짝  내려앉은 시간이었다. 신선한 분주함이 가득했고, 어색스러운 만남들이 수도 없이 이루어지며 익숙함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아직 조명이 익지 않았으나 해는 이미 도망가버린 그 시간대에는 눈에 무언가 낀 듯이 설프게 보이는 경향이 있다.(물론 이 모든 묘사가 진심 및 사실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면서도, 앞으로 이야기할 사건에 대한 변명이기도 하다.) 그런 상태에서 안암역 안  인공조명 속에서 저녁 어스름 속으로 나왔을 때, 내 앞에 세훈이가 보였다. 중학생 때 가장 친했던 4인방 중 한 명이지만, 4인방이 대학 온 이후로는 거의 서로를 본 적이 없기에, 참 반가우면서도 머쓱한 관계에 있는 그였다. 그래도 서로의 어색함을 살짝 내린 밤이 덮어줄 것이라 기대하며 용기를 내었다. 

그의 팔을 잡으며

"세훈아"

라고 반갑게 외침과 동시에 나의 뇌는 굉장히 빠르게 작동해야만 했다. 아무리 오랜만에 보았고, 눈에 무언가 끼어있는  듯하고, 살짝 어둡다 하더라도 약 50cm 거리에서 마주한 그는 아무리 봐도 정확히 세훈이는 아니었다. 세훈이보다 살짝 더 어리고, 조금 더 댄디하게 생긴 다른 누군가임이 분명해졌다. 허나 나는 이미 그를 불렀고, 그의 팔을 잡았고, 그와 눈을 마주하고 있었다. 아무리 뇌가 빠르게 돌아도 뚜렷한 해결책은 찾을 수가 없었던지라, 우리는 약 2초간 서로를 둘 다 당황한 채 마주 보고 있었다. 얼른 사과하고 지나치는 게 답이라는 생각이 등장하기 바로 직전..! 상황이 극적으로 전환되었다. 그가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며 반가움의 미소를 얼굴에 띠고 "어?!"를 외친 것이다. 미지의 그가 나를 알아봤다고..? 그럴 리가 없었다.

 당황에 마비되었던 나의 머리가 평정심을 웬만큼 회복한 그 시점에서 분석한 결과, 이제 막 2학년 정도 된 그는 새 학기에 먼저 자신에게 인사한 자신이 알지도, 어쩌면 알아야 할지도 모르는 미지의 이 인간을 알아보지 못한다는 것을 들킨다면 생길 부작용을 우려해, 일단 학교, 수업, 동문회, 술집, 그 어디에선가 만났을 사람일 것이라고 스스로 세뇌하고, 자신의 사회성을 입증이라도 하려는 듯 나에 대한 아는 척을 시전 한 것이다. 아아.. 이제 나의 감정은 안타까움이 되었고, 황망히 자리를 뜨고자 고개를 깊이 숙여 송구함을 표출하고 가려는데, 그가 나를 보며 어떤 이름을 불렀다.

"○○이?"

 우리는 서로 아는 사이가 아닌데.. 그가 나를 부른 그 이름의 주인은 또 무어란 말인가.. 그 이름은 그렇게 주인을 찾지 못한 채 길거리 소음 속에 흩어졌고, 나는 서둘러 밤이 더 깊게  내려앉은 곳을 향해 몸을 옮겼고, 그는 아마 다시 핸드폰을 보았으리라. 우리가 서로 알았더라면-


세훈이는 아직도 만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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