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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 비둘기 Mar 11. 2016

밥의 에세이

나는 가끔, 어렴풋이 만 기억나는 과거에 대한 기억 조각들이 있다.


일괄적으로 옷 입혀진 우리는 차가운 금속성의 방에  몰아넣어져서는 강제로 씻겨졌다.

어떤 아이들은 간지럽다며 웃기도 했고,

어떤 아이들은 무언가를 직감한 듯 울기도 했다.

이따금씩 누군가가 그 금속성의 방에서 도망치는 데에 성공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으나,

그것이 정말 '도망'이었는지, '색출'당함이었는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때론 과격하게, 때론 부드럽게 씻기고 나면

임산부 수중치료라도 받는 듯이 우린, 나는 물에 잠긴 채

회색 방에 가둬진다.

고단했던 샤워와 물의 적절한 포근함. 자기 좋게 꺼져버린 천장의 불 때문일까-

우리는 차분해진다.

그렇게 잠잠해진 채, 뭔가 의도된 듯한 숙면을 취한다.

그리고는 악몽 같은 뜨거움, 터져버릴 듯한 열기와 계속되는 비명

"끼----------------------아------------------------삐------------------취-------------------"

추가 돌았다.

회상에서 깨어 나오자 배가 고팠다.

밥이 다 되었음을 알리는 저 소리는 항상 설레면서도 소름 끼쳤다.

물론 배고픔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설렘의 손을 들어주니, 항상 밥솥을 열고 주걱으로 밥 사이에 숨을  불어넣는다.

김이 한가득 쏟아져 나왔다.

밥들의 숨이 나오고 나의 숨이 불어넣어지는  듯했다.

참 맛있겠다는 생각을 하며 주걱에 묻은 밥을  긁어먹었다.

밥상을 차리고 앉아서 식사기도를 올렸다. 일용할 양식.

숟가락을 들고 언제나 그렇듯 밥을 한술 떠서 입안에 넣는다. 다시 한 번 김. 숨.

챱챱챱..챱...챱....

그러다 문득 내가 울고 있음을 발견했다. 내가, 울고 있는 건가? 혼자 우는 게 아니었다.

입 속에 찐득하게 응어리진 눈물이 가득했다.

숨을 뱉어내고도 눈물만큼은 보이지 않으려고 한恨과 함께 속에 묻어두었으리라..

가슴이 묘하게 먹먹했다.

서둘러 잘 구워진 고등어의 뱃살을 떠서 먹었다.


태어났을 때의 나와 지금의 나의 세포 중에는 같은 것이 하나도 없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태어났을 때의 나를 온전한 나라고 본다면 지금의 나는 무엇인가? 그러다 보니 떠오른 것이 밥이었다. 우리는 태어나서 계속 밥을 먹으며 자라 왔다. 밥을 계속 몸속으로 넣었고, 우리 안의 세포들은 소멸과 생성을 반복했다. 어쩌면 우리 안에 온전한 나의 세포보다 밥의 세포가 더 많아졌을지도 모른다. 더 많아지지 않았을지라도, 수많은 밥은 분명 내가 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내 안 어딘가 깊은 무의식 속에라도 밥의 기억이 응어리져있지는 않을까. 너무 작아 그 하나하나의 세세한 기억은 흩어질지라도, 그 모두가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가장 강렬한 기억만큼은 오랜 시간 한 데 뭉쳐 나의 의식이 약해졌을 때 빼꼼 드러날 수도 있지 않을까. 밥과 나의 공생共生. 

문득 멍하니 밥을 씹다가 우리는 무의식 깊은 구석에서 울고 있는 밥들을 마주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미 그 악몽 같은 고통을 느껴보고 생의 목적을 마치는 길을 걸어본 자들이 나의/그들의 입 안에서 생을 마치고 있는 또 다른 밥들을 보고 있을 수밖에 없을 때의 설움. 살기 위한 동족상잔의 무한 연쇄. 우리의 입이 밥을 만났을 때 스며나오는 수분은 무의식의 찐득한 설움인지도-

챱챱.챱..

하지만 그 설움은, 흔히 무의식의 것들이 그렇듯 너무나도 쉽게 흩어져버린다. '침'이라는 의식의 명명과 '맛있다'라는 감상평 앞에서-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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