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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바다 Feb 15. 2019

개인 공간과 기본 예의라는 것

매너의 경쟁력

한국을 다녀온 지 12년 가까이 되었다. 지금은 우리가 세계화를 이끌고, 외국 문화에 익숙해지면서 한국 사회 전체가 세련되고 많이 변했으리라 생각된다. 종종 뉴질랜드에 오는 한국 관광객들과 유학생들을 만나게 되면서 영어권 국가에서 지켜야 할 기본 매너를 몇 가지 적어보고자 생각했다. 나도 처음 미국에서 생활할 때는 전혀 알지 못했던 아주 간단하고 기본적인 것이다.  


1. 'Please'와 'Thank You'는 남발해도 좋다. 

Please는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부디... 해주세요'라고 애원이나 구걸할 때 쓰는 표현이 아니다. 특히 뉴질랜드에서는 부모가 어린 자식들한테도 자주 쓴다. '이것 좀 치워줄래?' 할 때 ' Can you please put this away?"라고 말한다. 딱딱한 명령조의 어감을 부드럽게 바뀌어 주는 윤활유라고 생각하면 된다. 무슨 부탁을 하는 경우, Please를 안 쓰면 기분 나빠하는 뉴질랜드 사람도 상당수다. 그만큼 당연하게 따라붙는 일상적 예의의 한 표현이다. 아래 두 경우에서 처럼 어감 또한 상당히 다르다.

난 스테이크를 먹을래요 I will have a steak. 와 I'd like to have a steak, please. 

다음 기회로 미루죠. Give me a raincheck! 과 Please let me take a raincheck.

Thank you는 진짜 고마울 때만 쓰는 표현이 아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사용하는데 특히 인색하다. 카페에서 커피를 사고 거스름돈을 받을 때, 식당에서 주문한 음식을 갖다 놓아줄 때 모두 'Thank You!'다. 내 돈 내고 내 거스름돈을 받는데, 내 돈 내고 주문한 음식을 웨이터나 웨이트리스가 가져다주는데 뭐가 고맙냐고 반박하기 쉽다. 이건 서비스가 제공되는 것에 대한 기본적인 감사라고 생각하면 된다. 즉 그 식당이 지금 이 자리에 없었으면, 내가 주문한 음식이 메뉴에 없고, 그 음식을 요리사가 요리해주지 않았으며, 그 음식을 내게 가져다주는 사람이 없으면 난 지금 그 음식을 이렇게 먹을 수 없지 않은가'란 사고가 밑바탕에 깔려 있다. 굳이 서비스 제공자가 아니더라도 이런 마음가짐은 다른 사람, 불특정한 상대에 대한 기본적인 예우다. 인종, 나이, 외모, 옷차림, 젠더, 사회적 지위를 불문하고 그냥 사람에 대해 갖춰야 하는 기본적인 예우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똑같은 사람이니까. 때문에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가 없는 사람은 자신이 예의범절이라고는 ㄱ, ㄴ의 기본 조차 모르는 싸구려임을 반증하는 갑질을 하게 마련이다.


2. 'Excuse me'는 공공장소나 특정 공간에서 다른 사람의 개인 공간을 침범했을 때, 예를 들면 몸을 스치거나 부딪혔을 때나 길을 가다가 다른 사람의 통행을 방해했을 때, 또는 다른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 때 (절대로 다른 사람이 얘기하는 도중에 무작정 끼어들어 말을 자르지 말자), 다른 사람의 주의를 끌려고 할 때, 예를 들면 식당에서 웨이터나 웨이트리스를 부를 때 (우리 Hello라고 더 이상 소리치지 말자 ^^) 또 하나, 이번 기회에 평소에 꼭 하고 싶었던 얘기가 있는데, 한국 엄마들은 자신의 아이들을 공공장소에서 너무 풀어놓는다. 레스토랑에서, 가게에서, 심지어는 성당이나 교회에서 아이들은 놀이터 마냥 제멋대로다. 이때 부모들의 태도가 한심하기 그지없다. 안하무인으로 마구 휘젓고 다니는 자기 아이들을 바라보며 '너무 이쁘지 않아요'하는 표정으로 자랑스럽게 미소 짓고는 그만이다. (그건 당신 생각이고 공적인 공용 공간에서 각자의 개인 공간을 마구 침범하는 애들을 사랑스러운 눈으로 쳐다보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다만 그것을 표현하지 않을 뿐이지.)

Social Language, Digital Media에 따른 개인의 사적 공간 (Private Space)의 정의는 아래 표에서 보듯 자신을 중심으로 직경 1.2m까지를 포함하는 원형 공간이다. 사적 공간은 다시 세 개로 나뉘는데, 이 공간을 어디까지 공유하느냐에 따라 상대와의 관계가 결정된다고 보면 이해가 쉽다. 

Intimate Space: 심리적, 육체적으로 자신만의 내밀한 공간, 주로 부부와 연인 사이까지 공유될 수 있다. 

Personal Space: 직계 가족 또는 친한 친구들까지에 한하며, 팔을 뻗어 닿는 직경 45cm까지의 공간이다. 

Social Space: 그 너머 직경 1.2m까지의 원형 공간이다. 직장 동료, 친구, 지인, 비즈니스 관계나 모임에서 새로 알게 된 각종 사교적 만남들이 이 영역 내에서 이루어진다. 

자신으로부터 직경 1.2m 이내의 원형 공간을 개인의 사적 공간으로 정의한다.

그 너머는 모두 공공의 공간이다. 뉴질랜드에서 자란 우리 아이들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가장 이해하지 못하고 힘들어하는 부분이다. 서울은 인구가 절대적으로 많기도 하지만, 공공 공간에서 개인의 사적 공간까지 무차별하게 침범한다. 무표정한 얼굴로 아무렇지 않게 밀고 부닥치고 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뷔페에서 차례를 기다리지 못하고 바싹 머리를 드밀고 새치기를 하거나 빨리 가라고 재촉하면서 뒤에서 등을 마구 밀쳐대는 사람들에게 아연실색하곤 한다. 서울에선 서울의 상황에 빨리 익숙해져야 한다고 타일러 주었다.  


사소하지만 쉽게 지나치게 되는 몇 가지 상식적인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공공장소에선 큰 소리로 말하지 않는다. 더더욱 소리치지도 말자. 

언제나 뒤에 오는 사람을 위해 문을 잡아 준다. 다른 문화권은 안 가봐서 모르겠지만, 영어권 국가들을 여행할 때 주의 깊게 살피면 모두 그렇게 낯선 사람을 배려한다. 

엘리베이터도 타고 내리는 순서가 있다. 남자는 여자를 뒤따라 타고, 엘리베이터 안에 사람이 많을 경우 문에 가까운 쪽부터 내린다. (왜 이 당연한 상식을 지키지 못하는지 모르겠다) 꽉 찬 엘리베이터 안에서 맨 뒤에 서 있고 내려야 할 층에서 아무도 내릴 기미가 안 보인다면 이때 'Excuse me/us'라고 양해를 구하면서 부득이 그들의 개인 공간을 침범하여 내리는 것이다. 모르는 남녀 단 둘이 탔을 경우 남자가 여자를 등지고 엘리베이터 문쪽에 선다. 계단을 오를 때도 남자가 먼저 앞장서야 하고, 차를 탈 때도 여자의 옷차림 등을 고려해서 남자가 먼저 뒷 좌석으로 들어가 앉거나 여자를 먼저 태운 후 앞자리에 앉도록 한다. 

식사할 때 음식 씹는 소리를 내지 않는다. 음식을 입 안에 든 채 얘기하지 않으며, 볼이 터지도록 음식을 한 번에 많이 넣지도 않는다. 식사하면서 얘기를 많이 하기 때문에 소량으로 조금씩 음식을 먹으면서 대화에 참여한다. 같은 테이블의 사람들과 속도를 맞추면서 먹는 것도 중요하다.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 본인이 먼저 말하지 않는 이상 절대 묻지 않는 - 나이, 젠더, 연봉, 결혼 여부 등과 같은 지극히 개인적인 질문을 삼가고, 특히 남자 친구나 여자 친구가 있느냐고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묻지도 않는다. 당신은 통계청에서 나온 호구 조사원이 아니지 않은가.


류시화 시인의 책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중에서 네팔의 유적지 주변에서 울고 있는 노점상 여인을 발견하고, 앞에 쪼그리고 마주 앉아 함께 울었다는 배우 김혜자 선생님의 말이 생각난다. 

"우리는 모두 똑같아요. 그들도 나처럼 행복하기를 원하고, 작은 기적들을 원하고, 잠시라도 위안받기를 원하잖아요. 우리는 다 같아요."

여기서의 우리는 나와 다른 다양성을 받아들이고 나와 다른 차이를 인정하면서 상대의 심리적 신체적 개인 공간을 존중할 때 생겨나는 관계일 것이다. 내가 대접받고 싶은 대로 상대를 대접하는 것, 동시대를 살아가는 나 아닌 다른 사람들에 대한 기본 예의가 아닐까란 생각을 조심스레 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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