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 그 어처구니없이 늦은

기차 여행 - 열둘

by 강바다
고통이 없다면 축복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 에드가 알런 포우 -

Parliament Building, Wellington <사진=강바다>

초겨울의 이른 노을이 웰링턴 국회의사당 앞뜰 잔디를 검붉게 물들이고 있다. 오늘도 어김없이 찾아온 어둠을 반기기라도 하듯 길게 늘어선 가로등이 하나둘씩 노란빛을 살포시 뿜어내기 시작한다. 의사당 낮은 담벼락을 따라 군데군데 자리한 벤치는 일상에 지친 영혼 하나 감싸지 못하고 텅 빈 채이지만 초겨울 저녁 바람에 실린 마른 잎새들이 공간의 허전함을 쓰다듬듯 달래 주고 있다.

두툼한 스카프로 목을 감싸고 재킷 주머니에 양손을 찌른 채 잔디밭 광장을 천천히 거닐어 본다. 푸른 잔디밭에 누워 뒹구는 연인들의 싱그러운 여름엔 여름대로, 아지랑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꽃들 사이로 유모차를 미는 젊은 엄마의 초봄엔 초봄대로, 낙엽 뒹구는 정겨운 가을 오후 두 손 잡고 산책하는 노부부의 가을엔 가을대로, 이 운치 있는 낯익은 광장에 홀로 서서 풍요로운 고독을 마음껏 즐겨본다. 코끝을 빨갛게 달구는 겨울에 이곳을 찾은 지는 꽤 오래인 듯싶다. 귀가 시릴 만큼 차가운 바람이 내 가슴에 쌓인 온갖 번뇌와 상념의 찌꺼기들을 쓸어내듯 씻어버려 시원하기만 하다.
일상의 여유에 감사하는 기쁨에 찬 영혼 하나가 벤치 한 곳에 몸을 기댄다. 그곳에 앉아 저녁에서 밤으로 흘러가는 시간의 조각들을 찬찬히 만지듯 훑어본다. 의사당 석조건물 여기저기엔 아직도 불빛이 환한 채이고, 땅거미 짙게 서린 벤치 한쪽엔 계절에 미처 쓸려가지 못하고 남은 낙엽들을 따라 몇 마리 새들이 저만치에 모여 저녁거리를 찾고 있다.

‘이 녀석들은 끼니나 제때 찾아 먹는지… 어두운 밤이 되면 돌아갈 집이나 있는지…’
안타까운 생각이 들어 재킷 주머니에 남아 있던 과자 몇 개를 부수어 뿌려주었다. 처음엔 망설이던 녀석들 중 제일 용감하거나 아니면 제일 배고픈 녀석 하나가 선뜻 달려들어 서툰 만찬을 시작한다. 주춤거리며 이를 지켜보던 나머지 녀석들이 하나둘씩 달려든다. 슬그머니 웃음이 배어져 나왔다. 이들이 나 혼자만의 사색을 방해하는 훼방꾼이 아니어서 좋다. 오히려 텅 빈 광장에 홀로 앉아 흐르는 시간을 느껴보는 나처럼 생생하게 살아 꿈틀거리는 것들이어서 그저 반갑고 고맙기까지 하다.
9시가 넘은 까만 밤이 돼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아내와 아이들을 보자, 한껏 쌓였던 고독감이 일순 사라지고 푸근한 행복감이 몰려든다. 방금 끓인 향긋한 재스민 녹차 한 잔을 앞에 놓고 매주 즐겨보는 TV 드라마 ‘프레이저’(Frasier)를 보았다.

미드 시트콤 '프레이저'

프레이저는 미국 시애틀의 정신과 의사인 프레이저와 그의 가족에게 벌어지는 이야기를 풍자적으로 담은 미국의 시트콤 드라마다.
오늘 본 에피소드는 프레이저의 동생이자 역시 정신과 의사인 나일즈가 심장 혈관이 막혀서 수술받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수술받기 직전, 초초해하는 나일즈와 프레이저 형제는 서로에게 사랑하며 얼마나 각자에게 소중한 사람인지를 새삼 확인한다. 수술실로 이동하는 나일즈에게 그의 아버지가 말한다.

“사랑한다. 아들아!”
나일즈의 아내 다프네는 남편에게 “수술 후 깨어나면 옆에 있겠다”라고 말한다.

그러자, 나일즈는 “약속하냐”라고 되묻는다.

이때 TV 화면에 ‘가장 힘든 일은 마냥 기다릴 때’라는 소제목이 나타났다 사라진다.

나일즈가 수술받는 동안 가족 모두는 안절부절못하며 나름대로의 불안감을 드러낸다. 나일즈가 병실에서 수술대로 이동하는 장면이 나오자, 나도 ‘그때의 일’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나도 병실에 누워 대기하고 있다가 온갖 검사와 수술 준비를 마친 후 나일즈처럼 저렇게 수술실로 옮겨졌었다. 수술 후 중환자실로 옮겨져 의식이 스멀스멀 돌아왔을 때 눈꺼풀을 밀어 올려 눈을 뜨는 것이 그렇게 힘든 일일 줄 몰랐다. 억지로 눈을 뜨려다 포기한 채 다시 잠으로 빠져 들었다.


캐나다 밴쿠버에서 들렀던 빨간 지붕의 카페가 보인다. 바다가 보이는 언덕 중턱에 자리 잡은 이 노천카페 주변으론 계피 향기가 그득하다. 빅토리아 섬 뒤편에서 밀려온 소금 내음 가득한 미풍이 코끝을 간지럽힌다. 기다렸다는 듯 난 바닷속으로 서서히 잠겨가는 가을 석양빛으로 얼굴을 돌린다. 카페 카운터 너머로 토니 베넷의 ‘Fly me to the moon’이 잡힐 듯 귓전을 울리고 그 위로 낙엽 잎사귀들이 사각거리며 길거리로 흩어진다. 한가롭기만 가을 정취에 한눈을 팔다 보니 그리운 그녀의 모습이 언뜻 배경에 서린다. 자주색 체크무늬 머플러를 맵시 있게 목에 두른 그녀의 모습이 잡히자, 한껏 부푼 설렘은 일순 사라지고 짜릿한 행복감이 등줄기를 타고 스르르 전신에 흐른다.

Gas Town, Vancouver

꿈결인 듯 귀에 익은 아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전히 눈이 잘 떠지지 않았으나, 아내의 목소리를 들으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아내는 “수술이 잘 끝났다”라고 말해 주었다. 수술 시간도 평균보다 짧았다고 했다. 내가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자, 한동안의 침묵이 그렇게 흘러갔다. 그러다가 갑자기 나 자신도 모르게, 아까 수술실로 들어가기 전에 하지 못했던 한 마디가, 아주 힘들게 그리고 천천히 토해져 나왔다.

“…사… 랑… 해….”

그 말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아내는 아무런 대답이 없다.

아내를 쳐다볼 힘이 없던 나도 그 소리가 그저 꿈속에서 흥얼거린 잠꼬대 인양 또다시 잠에 취해 들었다.


나중에 아내가 해준 얘기지만, 그 소리를 듣고 너무 놀랐다고 한다.

그러기도 했을 것이다. 10년이 넘는 결혼 생활 동안 무슨 TV 드라마에서 감동적인 사랑의 고백 장면이라도 나 올라치면 아내는 “당신도 한 번 해보라”라고 졸라대곤 했다. 그러면 난 ‘닭살 돋게 시리…’ 또는 혼자 머쓱해서 “별 쓸데없는 소리를 한다”라고 핀잔만 주기 일쑤였다. 여태껏 단 한 번도 하지 않던 소리를, 아니 평생 못 들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고백을 그렇게 갑자기, 그것도 그런 상황에서 들으리라곤 전혀 기대하지 못했을 것이다. 지나고 보니 누구나 쉽게 하는 그 한 마디를 뭐가 그렇게 힘들다고 아꼈는지 모르겠다.

그때 알았다.

나를 담은 마음이 저절로 전해지지 않는다는 걸.

누구도 내 속마음을 가늠하고 추측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걸.

분명히 알아들을 수 있도록 또박또박 입술 사이로 소리를 내야 한다는 걸.

그리고 속 마음을 담은 그 한 마디가 내 삶을 초강력 프레스기로 압축했을 때 나올 수 있는 첫소리이자 가장 중요한 소리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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