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지도를 펼쳐 들다

정거장 여덟 - 플랫폼

by 강바다

표민수의 인생을 송두리째 뒤바꾼 건 아버지 표신제의 죽음이었다.

충청도 만석꾼의 외아들로 일제 때 동경 유학을 다녀올 정도로 인텔리였던 그의 아버지는 경성 전기 - 동양 산업에서 일하다가 정부 수립 직후 대한민국 거국 내각에 참여, 재무부의 요직을 두루 거쳤다.

그는 머리도 좋았지만 정치적 수완도 뛰어났다. 재무통으로 내각에 참여한 후 6.25를 겪으면서 미군정 - 외무부로 자리를 옮겨 승승장구하다가 5.16 혁명을 맞았다. 군사정권 초기 구시대 청산이란 기치 아래 잠시 주춤하긴 했으나 워낙 실무에 정통하고 당시 미 고문단 사령부 요인들과 관계가 돈독한 탓에 자리를 보전했다. 정부 관리로선 한계가 있다고 판단한 표신제는 지방의 작은 중소기업에 불과했던 가업을 이어받는 한편 정계에 입문, 민주공화당의 공천을 받아 고향인 충남 음성에서 내리 당선했다. 6선 의원으로 막강한 정 재계 인사들과 폭넓은 인맥을 쌓아가며 지방의 중소기업이었던 신제상회를 재계 50위권에 드는 (주)신화그룹으로 키워냈다. 그룹의 모태는 해방 직전 표민수의 조부가 아들의 이름을 따와 시작한 신제상회다. 쌀, 연탄, 고무신 등 생활용품을 다루던 동네 잡화점 수준에서 표신제가 가업을 물려받은 1966년부터 비로소 기업화되었다. 특히 한일 국교 정상화 직후 양국 정계의 지원을 등에 업고 가정용과 산업용 전자 제품을 독점 수입하면서 이름을 (주)신화로 바꾸고 덩치를 크게 불리기 시작했다. 70년대 들어서면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급 물살을 탔고 이어 중동 건설 붐으로 막대한 돈을 벌었다. 이때 황금 알을 낳는 거위가 시멘트였다. 그 뒤론 자동차 부품, 화학제품으로 사업을 다각화하면서 재벌기업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재벌가 5남매 중 셋째 아들이었던 표민수는 아버지가 쌓아 놓은 막강한 부와 권력에 비해 비교적 평범한 학창 시절을 보냈다. 기사 달린 외제차로 매일 등 하교하고, 고액 과외, 일류대학 입학, 6년간의 미국 유학, 군 면제란 특혜를 빼곤 크게 두드러진 점은 없었다. 하고 싶은 걸 언제나 쉽게 할 수 있다는 건 특권이었다. 그 특권도 아버지의 말 한마디에 언제든지 날아가 버릴 수 있다는 걸 버림받은 어머니의 존재를 통해 일찌감치 깨달았다. 회장 개인 비서였던 어머니는 아버지의 관심이 식으면서 존재조차 부각되지 않은 채 내버려졌다. 네 번째 부인이 안방을 차지할 즈음 표민수는 중학교를 졸업했다. 생모는 그가 얼마나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지 끊임없이 되새겨주었다. 두 가지를 신신당부했다. 자신의 생각을 절대 입 밖으로 내지 말 것이며, 아버지에게 절대 순종하라는 것이었다.

재벌 2세 망나니의 전형이었던 손위의 배다른 두 형들과 자기 밑으로 생겨난 철부지 여동생들 틈바구니에서 조용히 숨을 죽였다. 고등학교와 대학을 마치고 유학까지 다녀온 그에겐 신화그룹의 후계자가 된다는 야심 따윈 애초부터 없었다. 그가 원하는 건 평범한 삶이었다. 친구 같은 아내, 아무런 조건 없이 사랑을 듬뿍 나눌 수 있는 아이들, 하루의 고단한 일상을 편히 뉘일 수 있는 따뜻한 안식처, 그런 행복한 가정을 꾸리며 마음의 평화를 추구하는 보통의 삶이었다.

신화 시멘트의 대리로 첫 사회생활을 시작한 그는 상사와 동료들, 부하 직원들에게도 깍듯하게 대하면서 착실히 회사 업무를 익혔다. 모나지 않고 서글서글한 성격의 그에 대한 평판은 안하무인으로 방탕 방종한 두 형들과 대비되면서 그룹 내에 보이지 않는 지지 세력을 만들어냈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에 알력과 시비가 얽히면서 다양한 여러 계층의 눈길이 쏟아졌고, 그런 그에게 아버지의 기대와 신뢰가 눈에 띄지 않게 서서히 쌓여갔다. 30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그의 소망과는 정반대로 신화그룹의 차세대 후계자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대학 때 만나 9년 넘게 연애한 여자 친구 혜진과 헤어진 것도 이 무렵이었다. 경기도 모 중학교 교사인 아버지와 단 둘이 사는 혜진과 결혼하겠다고 처음 말을 꺼냈을 때 아버지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특유의 야유에 가까운 코웃음만을 쳤을 뿐이었다. 노기 탱천 한 아버지의 반대를 예상했던 표민수는 전혀 예상치 않았던 반응에 맥이 빠져 잠시 주춤했다. 그사이 혜진이 아무런 연락도 없이 갑작스레 종적을 감췄고, 그녀의 아버지가 서울시 교육부 장학관으로 갑작스레 자리를 옮긴 걸 알게 된 건 한 달이 채 못 되어서였다. 안팎으로 꼼짝 못 하게 죄어오는 아버지의 교묘하고 집요한 방해에 견디다 못해 결혼 계획은 무효화됐고 결국 유력한 국회의원 딸과 호화스러운 결혼식을 올렸다. 아니할 수밖에 없었다. 태산 같은 아버지를 거스를 힘도 용기도 없었을뿐더러 호시탐탐 트집을 잡으려 으르렁거리는 두 형들에게 공연한 빌미를 주어선 안 된다는 어머니의 애정 어린 충고도 흘려버릴 수 없었다. 거래나 다름없는 정략결혼이었다.

짧은 신혼기간이 끝나자마자 신화 백화점의 경영에 손을 대기 시작한 아내는 아이 갖기를 단호하게 거부했다. 집에서 안식을 찾지 못한 그는 일에만 파묻혀 매달렸다. 중동시장의 시멘트 판로를 개척, 확대한 공로로 신화 시멘트 기획본부장으로 경영 전면에 나서면서 명실 공히 신화그룹의 황태자가 되었다. 그의 나이 36세였다. 형들과 그들을 따르는 무시할 수 없는 그룹 내 세력의 감시와 견제도 노골적으로 쏟아졌지만, 누구도 그룹 내 절대 권력자인 아버지를 거스르진 못했다. 아버지의 지도 하에 본격적인 경영수업을 쌓기 시작했다. 2년 뒤 그룹 종합 기획실장 자리에 올라 그룹 핵심 전략 사업에 간여했다.

순풍의 돛을 단 듯이 보였던 그의 앞날도 태산처럼 밀려드는 폭풍우를 피할 순 없었다. 건국 이래 최대 금융사기라는 대규모 어음 사기사건이 정계와 재계, 사회 각 분야에 엄청난 파문을 몰고 왔다. 그 파고는 거칠고 무자비했다. 신화그룹도 직격탄을 맞았다. 모회사인 (주)신화 상사와 신화 시멘트, 신화 화학이 잇달아 부도 처리됐고 그룹은 창업 이래 최대 위기를 맞으며 존폐의 위기까지 내몰렸다. 휘청거리는 그룹의 부도를 막기 위해 정치권과 금융권을 백방으로 뛰던 노구의 표신제 회장이 금융 감사원을 나오다가 쓰러진 것도 미치광이 놀음과도 같던 질펀한 굿판이 정점에 이르던 때였다. 무소불위의 권한을 행사하던 그룹 회장이 하루아침에 식물인간으로 드러눕자, 한때 국내외 계열사만 30개가 넘던 신화그룹도 순식간에 와르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표민수의 두 형은 남은 기업들을 소유하기 위해 형제간의 법정투쟁까지 불사했고, 장인을 등에 업은 아내까지 가세해 그룹 찢어먹기에 뛰어들었다. 마치 사자의 이빨에 뜯겨나간 얼룩말의 남은 머리와 다리를 떼어가려는 하이에나 떼처럼 각자의 입장을 대변하는 변호인단, 회사 내 계파 별 임원들, 칼자루를 쥔 정부 관리들, 은행과 제2금융권 게다가 매체까지 뒤엉켜 아비규환을 이루었다.

대소변도 못 가리던 아버지의 회생 가능성이 거의 사라지면서 그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떠나기로 작정했다. 그룹 계열사의 정리가 끝나갈 즈음 기계장치에 의지해 연명하던 아버지가 숨을 놓아버렸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거인 표신제의 장례식은 쓸쓸했다. 신화그룹 창립 기념행사 따위에서 매년 마주쳤던 사람들이 보낸 조화 몇십 개만 덩그러니 놓여 있을 뿐 식장은 썰렁하기만 했다. 장례 절차도 아버지에게 은혜를 입었던 몇몇 사람들이 궂은일을 맡아 처리했다. 민 상무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아버지의 절대 가신이었던 그는 표민수가 어릴 적부터 '아저씨'로 부르며 따르던 몇 안 되는 그의 최측근이었다.

"허허. 정승 집 개가 죽으면 조문객이 문전성시를 이뤄도 정작 정승이 죽으면 조객이 없다고 하더니만 옛 말 틀린 게 하나도 없어. 회장님 살아 계실 때엔 쥐새끼 떼처럼 몰려들어 온갖 아양을 다 떨던 것들이 싸구려 조화 달랑 보내고 코빼기들도 안 뵈니 말이야. 세상 참 기막히구먼."

“..........”

거물급 국회의원들이나 재계 관계 인사들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그 많던 계열사 사장들, 그 밑의 수많은 임직원과 부장급 이상 간부들의 모습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의 곁에서 자리를 지켰던 민 상무가 장지에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세상이 잠잠해지거든 날 한 번 찾아오게."

그룹이 공중분해되다시피 정리되고 아버지의 유언장 공개 등 모든 형식적 절차가 끝나자, 기다렸다는 듯 아내의 이혼 요청이 이어졌다. 아내라는 이름의 낯선 여자가 요구한 모든 조건을 그는 순순히 들어주고 도장을 찍어 주었다. 거대한 산처럼 표민수의 인생 뒤를 받치고 섰던 아버지가 갑자기 사라지자, 그는 묘하게도 홀가분한 해방감을 느꼈다. 그룹의 차기 후계자니 황태자니 신화그룹의 21세기 전략 방향이니 정 재계 쪽과의 복잡하게 뒤엉킨 인적 실타래들, 그에 따른 크고 작은 굴레들이 한꺼번에 벗겨진 것이었다. 불혹의 나이에 처음 가져보는 해방감이었다. 이제부턴 무엇이든 순수한 그의 자유의지에 따라 선택하고 결정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 억제할 수 없는 자유로움을 만끽하고자 아버지도 아내도 아귀처럼 달려들던 계모 두 형 모두를 떨쳐버리고 훌쩍 떠났다. 첫 번째 행선지는 인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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