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전설

정거장 열넷 - 내 옆자리의 승객

by 강바다

리시케시에 머문 지 1주가 다 되어가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은 모처럼 새벽 명상과 요가 점심 식사 후에 열리는 1시간 힌두 철학 강의까지 모두 마친 다음, 밀린 빨래나 하려고 아쉬람을 어슬렁거렸다. 저만치에 갠지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벤치에 앉아 있는 케이시가 눈에 띄었다. 조앤과 리즈는 보나 마나 카페 하이델베르크에 앉아 강가에 드리울 일몰을 기다리며 피노 누아에 잔뜩 취해있으리라.
깊은 생각에 잠긴 채 물끄러미 강물을 내려다보고 있는 케이시에게 다가서며 살며시 물었다.
“왜 저 갠지스를 강가 (Ganga)라고 부르는지 알아요?”

어두웠던 그녀의 표정이 나를 보자 밝게 바뀌며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었다.
“히말라야 신의 딸인 여신 강가를 따서 붙여진 것 아닌가요?”

“그럼 거기에 얽힌 전설도 알고 있습니까?”

“전설이요?”

그녀가 호기심이 가득 찬 눈동자를 굴리며 되물었다.

“그 이야기를 들어볼래요?”

케이시 옆자리에 앉으며 여행 중에 들은 강가의 전설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고대 인도의 어떤 왕이 왕국의 영원한 번영을 위해 화려한 제사를 준비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그 제사에 쓸 말을 도둑맞은 거예요. 화가 난 왕이 자신의 아들들이 모두 내보내 그 말을 찾아오라고 엄명을 내렸어요. 그런데 왕의 아들이 모두 몇 명이었는지 알아요?”

내가 웃음을 참으며 묻자 그녀도 덩달아 따라 미소 지으며,

“고대시대의 왕이었으니. 글쎄요, 한 1백 명쯤 됐나요?”

“아니요. 자그마치 6만 명이나 되었대요.”

6만 명이란 숫자에 케이시가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와, 그럼 부인은 한 10만 명쯤 있었나요?”

그녀의 말에 이번에는 내가 마구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맞아요. 그 정도는 되어야 그만한 아들들이 생기겠죠. 가끔씩은 딸도 낳았을 테니.”

“맞아요. 맞아.”

그녀도 웃음을 참지 못하고 손으로 입을 막은 채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였다.

“어쨌든 그 많은 왕자들이 왕국을 이 잡듯 뒤져 겨우 그 말을 찾아냈대요. 그 말은 지하세계로 들어가는 문 옆에 매어져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그 부근에서 어떤 현자가 깊은 명상에 잠겨 수련 중이었어요.”

“어머머. 그래서요. 그럼 그 현자가 그 말을 훔쳤던 건가요?”

“아니에요. 잘못된 시간에 잘못된 장소에 있었던, 지독하게 운 나쁜 경우였죠. 현자는 그곳에서 몇 년째 눈을 뜨지 않은 채 명상 중이었는데, 그를 도둑으로 오인한 왕자들이 그에게 도둑이라고 온갖 욕설과 협박을 마구 퍼부었어요. 느닷없는 모욕 세례에다 명상까지 방해받은 현자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몇 년 만에 뜬 눈으로 왕자들을 노려봤어요. 그러자 왕자들은 모두 불에 활활 타 한순간에 재로 변해버리고 말았지요.”

케이시가 “어머”하며 큰 눈을 동그랗게 뜨곤 놀란 표정을 지었다.

“왕자들의 육신은 한 줌의 재로 화했고 그들의 영혼은 몇 백 년 동안 구천을 떠돌며 방황하게 되었어요. 이를 보다 못한 후대의 왕이 그들의 원혼을 위로하고자 여신 강가에게 간곡히 청합니다. 왕의 간절한 부탁에 마음을 움직인 여신이 히말라야 빙하에서 물을 퍼오죠. 그 물을 왕자들의 영혼 위에 뿌리자 왕자들은 이승의 한을 풀고 해탈하여 하늘로 올라갔다는 해피 엔딩입니다.”

“그러면 그때 그 물이.”

“맞아요. 그때 왕자들에게 뿌려진 물이 남아 지금의 강가, 즉 갠지스가 되었다는 전설이에요.”

“원더풀. 원더풀. 정말 멋진 이야기예요.”

케이시가 마구 박수까지 치며 좋아하자 나도 덩달아 어깨가 으쓱해졌다.

“강가는 인도 북부 대륙의 젖줄이자 인도인에게 가장 신성한 강이죠. 히말라야 산맥의 강고트리 빙하에서 시작해서 바라나시와 하리드와르와 같은 힌두교의 대표적인 성지를 거치는 큰 강인데 길이가 2천5백 킬로미터를 넘죠.”

“이곳에 오기 전에 바라나시를 들렀었어요. 갠지스 강물에 몸을 씻으면 이승에서 지은 죄를 씻어버릴 수 있다고 믿는다죠? 당신의 멋진 전설에 얽힌 이야기를 듣고 나니 이제 왜 그런지 알겠네요. 그때도 이른 새벽인데도 몸을 씻고 명상하고 기도하는 사람들이 참 많았어요.”

아까부터 주위를 어슬렁거리던 눈치 빠른 바피가 짜이를 가져다 놓더니 곧 사라졌다.

“수는 얘기를 참 재미나게 해요. 어린 자녀들의 머리맡에서 옛날 얘기를 들려주는 자상한 아버지처럼 말이에요 영어도 뛰어나고.”

아버지란 말에 나도 모르게 움찔했다. 가슴 밑바닥에서 차디찬 냉기가 쏴아 하며 지나갔다.

“아직 아버지가 되진 못했지만 나중에 아빠가 되면 내 아이들의 잠자리에서 매일 밤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줄 거예요. 아버지는 단 한 번도 내게 그런 적이 없었거든요.”

케이시가 말없이 나를 한동안 쳐다보더니 속삭이듯 말했다.

“수, 당신 얘기를 해줄래요?”

내가 망설이며 그녀의 커다란 눈망울을 내려다보았다. 연민이 담겨 있었다. 내 가슴 한가운데 박혀 있던 대못이 순간 움찔거렸으나 곧 그녀를 외면했다. 아무 말없이 고개를 돌리자 케이시가 엉뚱하다 싶을 만큼 밝은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다.

“우리 아버진 술 주정뱅이였어요. 여리고 착한 사람이었지만 무능력했죠. 엄마와 함께 부두가에서 작은 식당을 했어요. 세인트 존스 부둣가 일대에선 꽤 잘 됐던 기억이 나요. 엄마는 장사 수완이 좋았어요. 성격도 서글서글한 데다 미모까지 뛰어났으니 치근대는 손님들이 많았죠. 대부분이 거친 부두 노동자들이었는데, 그들을 상대하기엔 아빤 너무 연약했어요.”

케이시가 잠시 말을 멈췄다.
그녀의 침묵이 불편했다. 다음에 나올 얘기를 기다리며 긴장한 내가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건넸다.

“나랑 같이 피워요, 케이시.”

그녀가 한 개비를 뽑긴 했지만 만지작거릴 뿐 불을 붙이진 않았다.

“엄마도 그리 정숙한 현모양처는 아니었던 것 같아요. 술 취해 늦게 들어오는 날이 잦았고, 엄마를 기다리면서 불도 켜지 않은 부엌에서 혼자 독한 위스키를 마시는 아빠의 모습이 점점 일상화됐죠. 형편없이 흐트러진 모습으로 엄마가 들어오면 욕설과 집기들이 깨지며 한바탕 아수라장이 됐고..”

그녀의 머릿속에 선명하게 남아있음이 분명한 과거의 소음들을 떨쳐 버리려는 듯 케이시가 담배를 계속 만지작거렸다. 대신 내가 그녀의 가슴에 묵혀 놓았던 어둔 기억들을 태워 떨쳐 내려는 듯 긴 한숨을 흰 연기와 함께 천천히 내뿜었다.

“언제부터인가 아빠가 술에 취하면 언니와 내게 이상한 트집을 잡았어요. 왜 머리 꼴이 그 모양이냐, 왜 분홍색 치마를 입었냐, 너희도 엄마를 닮아 벌써부터 남자들을 꼬드기려고 하느냐.. 뭐 그런 트집들이요. 그런 다음엔 여지없이 마구 주먹이 날아왔어요. 그때마다 네 살 위였던 언니 앤은 나를 꼭 안은 채 그 무지막지한 폭력을 비명은커녕 거친 숨소리 조차 내지 못한 채 열서너 살의 가녀린 몸으로 견뎌냈어요. 엄마가 목에 뻘건 닻 문신을 새긴 조지와 눈이 맞아 집을 나가 버린 후엔 알코올에 의지한 폭력의 빈도도 강도도 심해졌어요. 언니와 내 몸에 손을 대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였어요.”

“그만.”

내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만해요. 케이시.”
손에 쥔 빈 담뱃갑을 으스러뜨린 채 케이시에게 다가갔다. 그녀의 앞에 선 채 그녀의 왼쪽 어깨에 손을 올렸다.

“됐어요. 그것으로. 케이시, 당신은 강인하고 아름다우며 더할 나위 없이 사랑스러운 여자입니다.”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어루만지고 등을 토닥거려 주었다.
그녀가 내 왼 손을 잡았다. 그녀의 손이 이끄는 대로 그녀 옆에 나란히 앉았다.


잠시 동안 낮게 드리운 오후 햇살에 몸을 맡겼다. 가만히 눈을 감고 있는데, 케이시가 옆구리를 쿡쿡 찌르더니 그때까지 만지작거리고 있던 그녀의 담배를 내게 내밀었다. 그 담배에 불을 붙이고 깊게 한 모금을 들이마셨다. 퀴퀴하지만 익숙한 니코틴 연기가 내 가슴 안쪽 깊숙이 스며들었다. 담배 향에 취한 탓인가 아니면 마음을 열어 보이고 싶은 상대를 비로소 만났다는 반가움 때문인지 무겁게 채워졌던 빗장이 스르르 풀리기 시작했다.

“난 언제나 아버지가 무서웠습니다. 아버지가 해외출장이라도 나가면 언제나 가슴이 뻥 뚫린 자유로움을 느꼈죠. 평소엔 퇴근한 아버지의 탁한 목소리가 현관에서 들리면 그때부터 온몸이 바싹 긴장하곤 했어요.”
가슴 한복판의 차고 단단한 얼음덩어리가 꿈틀댔다. 얼음덩이가 한 번 움직이자 그 차가운 덩어리 주위에 틈새가 생기며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것은 원망, 서러움, 존경, 두려움, 분노, 사랑이 온통 뒤범벅된 커다란 얼음 산이 내 가슴 한복판에서 서서히 부서지며 녹아내리는 신호였다.
마치 그 신호를 오래전부터 기다려 온 사람처럼 난 그녀에게 아버지의 이야기를 하나둘씩 털어놓았다. 내 인생을 설계하고 지배하며 이끌었던 아버지란 감히 거역할 수 없었던, 그 거대하고 어려운 존재와 더불어 그에 철저히 귀속됐던 나의 지난 과거가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더불어 아직까지 아무에게도 내보이지 않았던 내 속 깊이 묻어두었던 감정의 굴곡까지 맨 낯으로 고스란히 섞여 나왔다.

“아버지가 기계장치에 의존한 채 식물이 되어 누워 있을 때 비로소 아버지를 아들의 눈으로 볼 수 있었어요. 늙고 연약하고 외로운 아버지의 모습을요. 그 나약함에 참을 수 없도록 화가 났어요. 그 무기력하고 형편없이 약해진 아버지의 모습을 맨 정신으로 마주 할 수 없었어요. 어느 늦은 밤 만취한 채 아버지 병실에 들러 마구 욕을 해댔어요. 이게 뭐냐고. 빨리 일어나서 예전의 그 두려움과 공포 그 자체였던 당신의 예전 모습으로 돌아오라고 마구 소릴 질러댔죠. 한바탕이 소동이 일어난 다음 병실 소파에 정신없이 쓰러져 자고 있는데 간호사가 깨우더군요.”

손에서 다 타버린 담배를 바닥으로 던졌다. 반 갑 가까이 태워버린 꽁초들이 발 밑에 어지럽게 널려져 있었다.

“그 새벽 아버진 허무하게 세상을 버렸어요. 한 번도 아버지와 아들로 살갑게 대화를 나눠 본 적이 없어요.”

케이시가 안쓰러운 표정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 어색함이 싫어 훌쩍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오늘은 차분히 명상에 빠질 수 있을 것 같아요."

리시케시의 일몰이 강가 위로 붉게 배어들고 있다. 어느덧 저녁 명상시간이 가까워진 것이다.


우린 정원을 가로지르며 말없이 걷기 시작했다. 긴 한숨이 새어 나왔다. 가슴이 꽉 막힌 듯 답답했다.

“명상에 빠져 있는데 누가 도둑이라고 모욕을 퍼붓는 일이 없어야 할 텐데.”

케이시가 능청스럽게 말했다.

“그럼 눈을 부릅뜨고 팍 노려봐요. 강가가 코앞에 있으니 죄를 바로 씻어버릴 수 있을 테니.”

케이시가 깔깔깔 웃음을 터뜨리며 하얀 손으로 내 어깨를 가볍게 몇 대 쳤다.

저녁 해의 그림자가 명상 홀로 가는 아쉬람 정원 위로 길게 드리워져있다. “아름답다!”라는 탄성이 터져 나왔다. 일몰이 아름답다고 느낀 것이 언제였던가. 인도에서 매일 시큰둥하게 보던 그것이 오늘따라 색다르게 다가온 이유를 깨닫자 설렘과 당황스러움이 밀리듯 차올랐다.

“수, 당신 이야기를 내게 해줘서 고마워요.”

“천만에요. 내 이야기를 들어줘서 오히려 내가 고맙네요. 그런데 기분이 복잡하고 묘하네요.”

“수...”

걸음을 멈춘 케이시가 나를 가만히 돌아보았다. 고개를 숙인 채 한 걸음 다가오더니 아무 말 없이 나의 오른손을 잡아 그녀의 가녀린 두 손으로 포갰다. 한동안 나를 올려다보더니 작정한 듯 천천히 입을 뗐다.

“아버지. 이제 그만 놓아드리세요. 그분도 그걸 원하실 거예요.”

잠시 멍하니 선 채 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녀에게 손을 잡힌 채 나를 말없이 올려다보고 있는 그녀를 보면서 나도 모르게 고개를 저었다. 동시에 시야가 뿌옇게 변하더니 빠르게 물기가 젖어들기 시작했다. 그리곤 생전 하지 않던 짓을 하고 말았다. 그녀의 작은 어깨에 얼굴을 묻으며 어린아이처럼 울음을 터뜨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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