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거장 스물넷 - 귀향길
눈발이 점점 거세지고 있다.
안개 때문에 몬트리올에서 두 차례나 연착한 끝에 겨우 이곳 세인트 존스로 들어왔다. 캐나다 동쪽 끝에 위치한 대륙이나 다름없는 광대한 섬 뉴펀들랜드, 세인트 존스가 뉴펀들랜드의 주도라는 건 비행기 표를 끊으면서 처음 알았다. 거대한 주의 수도라고 해서 고층빌딩이 들어선 번잡스러운 대도시를 예상했는데 크고 작은 언덕들에 감싸인 자그마한 항구 도시였다. 거리에 늘어선 2~3층짜리의 알록달록한 파스텔 색 목조 건물들이 눈비가 섞인 강한 바닷바람을 견디어 내고 있다. 항구 전체를 휘감은 듯한 얼음 공기 속엔 신선하나 찝찌름한 바다 내음이 섞여있다.
세상 일이란 참 묘하다. 일주일 전만 해도 북미 최동단의 동토까지 날아와 비릿한 바다 내음을 맡고 있으리라고 상상이나 했겠는가. 겨울의 한 가운 데라서인지 풍광이 을씨년스럽기만 하다. 이방인에겐 더더욱 낯설고 스산스럽다. 갈피를 잡을 수 없는 긴장된 마음이 쩍쩍 얼어붙기 시작했다.
이곳에 케이시의 소재를 알려줄 사람이 있다. 케이시의 일방적인 작별 이후 세인트 존스의 등대 주변에서 해산물 레스토랑을 하고 있다는 조안을 생각해냈었다. 식당 이름까진 가물가물 했지만 조안이라면 케이시의 소재를 알고 있지 않을까란 일말의 기대감도 가졌었다. 하지만 곧 포기했었다.
“작별 인사조차 없이 바람처럼 사라져 버렸는데.”
떠나버린 사랑에 대한 서운함이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퍼뜩거리던 심장은 묵직한 둔기로 얻어맞은 듯 감각이 둔해지고 시퍼런 멍이 든 채다. 분명한 것은 케이시가 나와 연결된 모든 끈을 일방적으로 다 끊어 버렸다는 사실이다. 굳이 그 끊어진 끈을 이어보려 하는 게 구차스러웠다.
“갈 사람은 가고 보낼 사람이면 보내야지.”
다신 꺼내보고 싶지 않은 일기장처럼 케이시의 기억을 가슴 안쪽 깊숙한 곳에 묻어 버렸다. 시간이 지나면서 가끔씩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었던 어떤 불가피한 사정이 있지 않았을까란 의구심이 들곤 했다. 하지만 등 뒤에 새겨진 결코 지워지지 않을 문신을 외면하듯 애써 떨쳐 버렸다. 오직 앞만 쳐다보려 애썼다. 그런데 막연하던 의구심이 시간이 흐를수록 지워지기는커녕 점점 또렷하게 다가왔다.
그것을 깨달은 것은 묵호에서였다.
조안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숙소에서 해안가 주변에 위치한 해산물 식당 몇 군데를 추전 해달라고 했더니 그중에 있었다. 오후 4시부터 저물기 시작한 해는 5시가 채 못됐는데 벌써부터 어두컴컴한 밤과 다름없다. 택시로 다운타운을 빠져나와 루트 11번을 따라 케이프 스피어로 달렸다.
저 멀리 어슴푸레 등대가 보이고, ‘케이프 스피어 국립 역사 보존지’ 란 팻말이 눈에 들어왔다. 해산물 레스토랑 ‘라이트 하우스’에 들어서자 커다란 게를 한 손에 쥔 채 게걸스럽게 먹고 있는 덩치 큰 손님 옆에 선 조안이 보였다. 그녀가 날 보자마자 뛰듯이 다가오더니 다짜고짜 나를 안고 울음을 터뜨렸다.
“오, 수. 제발 너무 늦지 않았기를.”
그녀의 탄식에 그동안 내가 두려워하는 상상이 바로 끔찍한 현실이라는 사실에 온몸을 부르르 떨어야 했다.
인도 여행은 케이시의 마지막 소원이었다. 6살 때 낭포성 섬유증이란 진단을 받은 이후 케이시의 삶은 30세까지로 뚜렷하게 선이 그어져 버렸다고 한다. 흔히 CF라고 불리는 낭포성 섬유증은 난치성 유전질환으로 환자의 평균 수명은 30세다. 지금처럼 의학이 발전하지 못했던 50년 전만 해도 평균 수명은 고작 8세를 넘기지 못했던 악성 난치병이다. 가장 흔한 사망 원인은 폐질환, 그전에 만성적 기침, 만성 호흡기 감염, 빈번하게 재발하는 폐렴으로 서서히 폐기능이 상실되면서 마지막엔 호흡 곤란으로 죽음에 이르는 것이다. 이미 수차례 호흡 곤란, 폐렴 등으로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긴 케이시에게 30세 이후의 미래란 없었다.
“바라나시에서 결혼 신청을 받았을 때 케이시에겐 그것이 죽음보다 더 큰 고통이었어.”
16세 생일을 앞두고 폐렴으로 어떻게 겨우 죽을 고비를 넘겼는지, 이번 여행이 어떻게 시작됐는지 조안의 얘기를 끝까지 고통스럽게 들었다. 조안의 얘기가 계속되는 동안 케이시란 이름이 귓전을 찢듯이 후벼 파며 울려왔다. 유전 질환, 난치성, 호흡 곤란, 폐렴으로 인한 사망 따위의 소름 돋는 단어들이 튀어나올 때마다 귀를 막고 싶었다. 그 끔찍한 말들을 케이시에게서 모두 없애 주고 싶었다. 사랑하는 케이시, 아름다운 케이시, 내 아내가 될 수도 있었던 나의 연인 케이시 등으로 그 무시무시한 어휘들과 난 격렬하게 싸우고 있었다. 더 이상 계속하면 멍든 심장이 터져 버릴 듯하여 겨우 내가 입을 뗐다.
“지금 어디 있나요, 케이시?”
조안이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힘없이 말했다.
“샌프란시스코.”
리즈가 돌보고 있었다. 그래, 이런 황량한 지구의 북동쪽 끝보다 첨단 의료시설이 있는 따뜻한 샌프란시스코가 훨씬 나을 것 같다. 조안에게서 리즈의 주소를 받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어서는 나의 왼 팔을 힘껏 부여잡으며 조안이 또렷하게 말했다.
“수, 고마워. 인도에서 당신을 만난 건 그녀의 짧은 삶 동안 최대의 축복이라고 케이시가 내내 말했어.”
식당을 나왔다. 오락가락하던 진눈깨비가 세찬 해풍에 실려 실 바늘처럼 얼굴을 찌른다. 인적 드문 낯선 해안가 길을 발 닿는 대로 걸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모르겠다. 한참 동안 강풍을 맞았더니 미처 풀리지 않은 여독에 머리가 욱신거린다. 두 손으로 얼어 버린 얼굴을 감싸 안았다. 아스라이 바라나시가 떠오른다.
무더운 여름밤 케이시와 함께 걷던 강변가가 생각난다. 돌계단 위에 그녀의 무릎을 베고 누우면 그녀가 내 머리칼 내 얼굴을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곤 했었다. 그녀의 따스한 손길이 느껴지는 듯 하자 두 손으로 가렸던 얼굴을 차가운 눈발에 그냥 맡겨버렸다.
“아, 케이시!”
참을 수 없도록 그리웠다.
다 잊어버린 줄 알았던 상실감, 가슴 한복판이 뻥하고 뚫려 버린 공허감은 아무리 되풀이되어도 결코 익숙해지지 않는다. 짧게 몸서리쳤다. 뒤를 돌아보니 저 멀리 언덕 뒤에 등대가 한줄기 빛을 비추고 있다. 거센 바닷바람 속에서 항구로 돌아오려는 배들의 길잡이가 되어주는 밝고 눈부신 빛줄기다. 나를 밝혀주는 그 빛이 지금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것이다.
샌프란시스코로 날아오는 비행기 안에선 심한 고열에 시달렸다. 며칠간 계속된 장시간 비행기 여행으로 제대로 쉬지 못한 데다 지난밤 흠뻑 뒤 짚어 쓴 얼음비와 바람 때문에 무리가 온 모양이다. 게다가 충격적인 케이시 소식은 쇠잔한 육체를 지탱해 줄 정신줄마저 사정없이 끊어 놓았다. 담요를 두 장이나 덮고 누웠는데 밤새 오한이 나 덜덜 떨었다.
다음날 토론토까지의 새벽 비행기는 견딜만했는데, 토론토에서 2시간 비행기를 갈아타기 위해 기다리는 동안 나약해진 심신이 형편없이 처져 버렸다. 쇠뭉치를 올려놓은 듯 머리는 무겁고 두 눈은 반쯤 풀려 몽롱했다. 샌프란시스코행 비행기에 겨우 오르긴 했지만 으슬으슬 춥고 어찔어찔하던 몸 상태가 악화되었다. 비행 내내 식은땀을 비 오듯 흘리고 잠결에 헛소리까지 심하게 한 모양이다. 6시간이 채 안 되는 비행 동안 여승무원이 두 번씩이나 나를 깨우고 수시로 다가와 괜찮은지 확인했다. 잠결에 의사를 찾는 기내 방송까지 들은 듯하다. 누군가가 건네 준 알약을 먹고 난 다음에서야 비로소 몸이 조금씩 훈훈해지기 시작했던 것 같다. 비행 막바지엔 편하게 잤다.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에 도착한 후엔 휠체어를 타고 맨 먼저 내렸다. 나를 돌봐 줬던 리사라는 여승무원이 입국장까지 휠체어를 밀어주었다.
“의사 선생님이 함께 탑승했던 건 행운이었어요. 해열제를 드시고 나서 상태가 눈에 띄게 나아지셨거든요.”
그리곤 물었다.
“케이시가 누군가요? 헛소리를 하시면서 계속 그 이름을 부르셨거든요.”
그랬던가. 잠시 멈칫하곤 내가 짧게 대답했다.
“제 아내입니다. 지금 그녀를 만나러 가는 중인데 몹시 보고 싶네요.”
리사의 환한 웃음소리가 머리 뒤에서 들렸다.
“부인을 많이 사랑하시는 것이 틀림없어요. 계속 행복한 결혼생활을 누리시길 진심으로 바랄게요.”
“고마워요, 리사.”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이 베푸는 친절은 잊을 수 없다. 그녀의 따뜻한 미소가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이다.
공항에서 택시를 잡아타고 출장 때마다 들렀던 익숙한 호텔에 투숙했다.
몸을 추슬러야 했다. 몸도 몸이지만 이제 케이시를 만날 마음의 준비를 해야 했다. 얼마나 소망했고 꿈꿔왔던 케이시와의 재회였던가. 하지만 이런 상황은 결코 기대하지 않았다. 피하고 싶지만 피할 수 없는, 만나고 싶지만 다리가 후들거릴 만큼 두려운 재회가 기다리고 있다. 가슴속에 맺힌 응어리가 점점 커지고 결국엔 나의 숨통을 막아버릴 것 같다. 크게 한 숨을 자주 내쉬었지만 가슴엔 큰 돌덩어리가 꿈쩍도 않은 채 나를 짓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