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르고 싶은 리더 3
감사, 겸손, 친절, 용기는 나란 브랜드를 구성하는 주 요소다. 나 자신을 행복하게 만드는 도덕적 가치이자 내면의 평화에서 생겨나는 사랑의 네 가지 표현이다.
나 자신의 브랜드를 명확하게 정의하고 있다고 해서 내가 그런 사람이라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다.
적어도 내가 지향하는 위의 가치들로 나란 브랜드를 채우려는 자기 발전의 노력에는 뿌듯함을 느낀다. 그 노력이 하루에도 끊임없이 허물어지고 쉼 없이 다시 시작해야 하긴 하지만 내가 추구하는 가치가 무엇인지는 정확하게 알고 있다.
감사
죽는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뭔가를 잃어버릴 것이란 함정에서 벗어날 수 있다.
'지금은 이렇게 함께 있지만 언젠가는 결국 모두와 헤어질 날이 온다는 것, 그때까지는 매일 매 순간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이면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관한 이야기는 졸저 '아름다운 남자'에 처음부터 차근차근 기록해 놓았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들에 감사하는데 집중할 필요가 있다. 지금 내가 가진 것들을 다르게 느끼게 시작하면 감사할 일 투성이고 작은 것에도 쉽게 고마움을 느낄 수 있다.
겸손
작고 사소한 것부터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되면 겸손하지 않을 수 없다. 나를 낮추고 상대를 높이면 결국엔 나도 덩달아 높아진다. 한국에는 갑질이 팽배한 모양이다. 나를 조금씩 비우고 낮추면 갑질 하는 상대를 품을 수 있는 내면의 공간이 더 넓어진다. 자신이 알고 갖추고 있는 것보다 150% 키워서 과시하기보다 60%만 내보이고 항상 다른 사람으로부터 배우려는 자세를 가지면 어느 순간부터 내 주위에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남에게 베푸는 것이 결국 나에게 베푸는 것이기 때문이다.
용기
사랑할 수 있는 용기는 이제 거의 마무리가 되어가는 또 다른 책 '샹그릴라로 가는 완행열차'의 중심 주제다. 한 순간이 아까운 인생이다. 지난날의 상처는 모두 잊고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마음껏 서로를 사랑하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쉼 없이 다치고 깨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시 오지 않는 매 순간마다 마음을 열고 상대를 받아들이면 '죽을 때 후회하는 가장 큰 10가지' 란 따위의 섬뜩한 제목들로부터 자유로워진다.
위의 세 가지 가치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 생각을 지속적으로 다진 것에 비하면 친절이란 가치가 언제나 애매모호했다. 어저께 허핑턴 포스트에 실린 '친절함이 새로운 섹시함'이란 기사를 보았다. [허핑턴 '여성의 날' 기고문]으로 '왕좌의 게임' 에밀리아 클라크가 페미니즘을 말하면서 내린 친절의 의미가 단박에 꽂혀 들어왔다. 그의 말을 그대로 인용한다.
친절함이 별로 쿨한 단어는 아니란 걸 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쿨하다. 실제 결과가 즉각 나온다. 친절한 행동 하나가 그럭저럭 견딜 만한 날이었던 당신의 하루를 순식간에 즐거운 날로 바꿔준다. 친절하게 행동한다는 건 누군가에게 너의 존재를 인식하고 있다, 너는 중요한 사람이다 라고 보여주는 것이다. 그건 섹시하다.
예를 들어 누군가의 눈을 바라보고, 상대의 젠더, 인종, 섹슈얼리티와 상관없이 동등한 사람으로서 상대에게 말할 용기를 갖는 것 - 그건 친절함이다. 상대를 인정하는 걸 보여주는 작은 제스처다. 우리 모두가 서로를 매일매일 진심으로 조금씩 더 친절하게 대하려고 노력한다고 상상해보라. 정말 멋지지 않을까?
이처럼 산뜻한 친절에 대한 정의를 본 적이 없다.
이로써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도덕적 가치이자 내면의 평화에서 생겨나는 사랑의 네 가지 표현이 모두 완성되었다. 추구하는 가치를 행동으로 표현하는 일만 남았다. 가장 어려운 부분이지만.
매력적인 리더, 사람을 자연스레 끌어모으는 리더, 따르고 싶은 리더, 닮고 싶은 리더는 내적인 것에 치중함으로써 외부의 사물을 바꾸려 하지 않는다. 자신의 내면에 초점을 맞추고 스스로를 개선시키면 그 성숙함이 자연스레 밖으로 배어 흐른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세상을 바꾸려 하기보다 자신을 먼저 바꾸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이유다.
먼저 스스로를 들여다보고 개선시키려는 노력을 할 때 그 사람이 달라져 보이기 시작한다.
섹시한 리더가 자신에게 엄격하고 다른 사람에게 관대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