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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drew Feb 05. 2022

수학여행

홍윤기 수필집 "예순다섯 살의 고교생"_만서 홍윤기

백마강엔 백마가 없다(1)

이게 무슨 조화인가?

내 나이가 몇인데 그저 고작 국내 1박 2일 여행을 가면서 가슴이 설레어 잠을 못 이루고 뒤척이고 있는 스스로가 놀랍다.

시계는 이제 겨우 새벽 3시. 잠은 오지 않고 시간은 왜 그렇게 늦게 가는지, 내가 생각해도 집사람이나 아이들 보기가 민망할 정도다. 뒤척이는 내게 아내가 결국 한마디 한다.

"그렇게 좋소? 유럽여행이라도 간다면 한 열흘은 못 자겠소. 내가 깨워 줄 테니 한숨 자요."

한번 달아난 잠이 다시 올리가 없고, "졸리면 차 안에서 자면 되지 뭐."라고 대답하고 주방으로 나갔다. 쌀을 씻어 아침을 지어 놓을 생각에서다. 밥을 안치고 단체 톡방 공지사항을 열어보니, 집합 시간이 08:00다. 내 생각보다 30분이 이르다. 혈압 약을 먹어야 하니 아침은 조금이라도 먹어둬야 한다.

밥이 되는 동안 머리를 감고, 면도를 하고, 수선을 떠는 나 때문에 집사람도 덩달아 잠을 못 잔다.

07:40에 집을 나섰다. 하늘이 유달리 높고 맑다. 손으로 짜면 금방이라도 진 푸른 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다. 학교에 도착하니 교정에는 우리들을 수송할 버스가 대기 중이었고, 동기들 뿐 아니라 우리를 배웅할 선, 후배들이 벌써 나와 있었다. 문득 눈앞이 흐려지면서 눈가에 이슬이 맺힌다. 아득하게 멀리만 느껴지던 50년 전의 어느 날이 주마등처럼 희미하게 그려진다.


수학여행이라는 이름의 여행 가는 날 아침. 태어나서 처음 가는 여행이었다.

까까머리 중학생 교복을 입고 삼삼오오 모여드는 학우들은 밝고 기대에 찬 모습들이다. 씩씩하고 당당한 학우들을 피해 또 다른 일련의 무리들이, 운동장 한쪽에 초라한 모습으로 떠나는 그들을 배웅하기 위해 서 있었다. 나도 그 무리 중의 하나가 되어 부러운 눈으로 떠나는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50년 전, 그 다른 세계의 낯선 모습이 지금 이 시간에 그려지는 것은, 아마도 어린 시절 그때의 일이 가슴에 응어리 되어 남아 있었기 때문인가 보다.


옛 생각에 젖어 잠시 아픈 기억의 늪을 헤매다가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오늘은 내가, 우리가 주인공이다. 한편에선 인원 점검을 하고, 또 다른 한편에선 여행에 필요한 짐들을 챙기느라 부산하다. 필요한 짐이란, 며칠 전부터 임원들이 준비한 상품, 먹을거리 등이다. 제일 눈에 띄는 것은 오늘을 위해 양평에서 공수되어 온 막걸리 통이다. 자그마치 세 통이나 되니, 막걸리가 서 말이다. 우리 반이 탑승한 버스 짐칸에 싣는다. 학생들 수학여행에 공공연하게 막걸리를 싣다니.... 아마 우리네 만학도들이 아니라면 엄두도 못 낼 일이다.

출발 직전, 학생회장과 수석 부회장 등 선배들이 버스에 올라 잘 다녀오라며 격려한다. 물론 금일봉도 잊지 않는다. 마음은 벌써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는데, 차는 이제 겨우 막 교문 쪽으로 미끄러져 나가고 있을 뿐이다.

우리들의 차량 양옆으로 선, 후배들이 늘어서 환송을 한다. 무슨 극기 훈련을 가는 것도 아닌데, 마치 전장으로 떠나는 전우들을 배웅하는 모습 같다.

해병대 시절 진해의 천자봉을 구보할 때, 후배 기수들이 배웅하던 그 모습 그대로다. 그렇게 수학여행길을 배웅하는 것이 우리 학교 전통이다.

버스 3대에 6개 반이 승차하게 됨으로, 한 대에 두학급 씩 나눠 타기로 했다. 내가 탄 버스는 1반과 2반이 탄 선두 차량이다. 각 버스마다 담임선생님이 함께 했으니, 우리 차량은 국어와 영어의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국어 선생님은 우리 반 담임 선생님이시고, 1반 담임 선생님이 영어 담당이시다. 가장 이상적인 조합이니, 출발부터 느낌이 좋다.


밤잠을 설친 사람이 나 외에도 여러 사람이 있는 듯, 여기저기서 하품을 하면서도, 막상 눈을 감고 자는 학우는 없다. 모두가 첫 여행이 아닐 것은 분명한데, 눈동자마다 기대가 가득하다. 저마다의 설렘으로 창 밖의 풍경을 감상하기도 하고, 옆 짝꿍과 수다를 떨기도 하며 여행의 기분을 만끽하고 있다.

한동안 어수선한 분위기가 잡히자, 1반 회장이 마이크를 잡고 추억에 남는 여행이 되도록 하자며, 각자 자기소개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여행의 막이 오른다.

그렇게 꿈같은 1박 2일이 시작되었다.


백마강에 백마가 없다(2)

1박 2일, 이 짧은 시간에 각 학급 임원들이 준비한 프로그램을 완벽하게 소화하려면 촌음이 아까우니, 출발을 신호로, 버스 안에서부터 바로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1반에서 준비한 빙고게임이 첫 순서다. 여러 종류로 배열된 각자의 숫자 카드에서 사회자가 임의로 선택하여 부르는 솟자를 가로, 세로 대각선으로 일치시켜 연결시키는 게임이다. 나도 숫자 카드를 무려 석장이나 확보하고 사회자의 목소리에 기대를 걸어본다.

"빙고! 빙고!" 여기저기서 빙고를 외치고 상품이 수여된다. 내 속은 타들어(?) 가지만 결국 모두가 꽝이다. 그래도 즐겁다. 모두의 웃음소리가 순수한 소년, 소녀의 그것처럼 맑고 아름다웠으며 또 젊었다. 가랑잎 구르는 것을 보고 웃는 열여섯 처녀들의 웃음소리가 저랬던가? 실로 얼마 만에 이렇게 통쾌하게 웃어 봤던가? 그러나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이번엔 우리 반 부회장이 준비한 순서인데, 그의 호언처럼 뒤집어진다. 상품으로 준비한 부상 때문이다. 부상의 내용은 비밀로 남겨두어야겠다. 포장을 개봉하는 순간 폭발한다는 사회자의 엄포를 (아마 이불속에서 펼쳐 보아야 하는 물건인가 보다) 무시하고 내 옆에 앉은 기독학생회 회장이 열어보았다가 기겁을 한다. 또 한바탕 웃음이 버스를 흔든다. 밖에서 본다면 버스가 뒤뚱거리며 달리는 것으로 보일 것 같다. 젊은 오빠, 언니들의 웃음 때문에 버스가 고생이다.

남으로 국토를 횡단하여 곧게 뻗은 고속고로를 달리던 버스가 가쁜 숨을 고르기 위해 휴게소에 멈춘다. 정암 휴게소이다. 때는 이때다! 내 열일곱의 장난기가 되살아 난다. 이른바 악동 기질이다. 몇몇 악동들을 모아 대장이 되어, 우리 차 짐칸에 모셔져 있던 막걸리 탈취(?)를 시도한다. 그렇게 성공적으로 막걸리를 탈취(?)한 우리 악동들은, 버스 뒤편에 모여 조촐한 막걸리 파티를 연다. 수학 여행길에서 잠시 일탈하여 기상천외한 말썽을 일으켰던 친구들의 여행담처럼, 짐짓 숨어서 마시는 막걸리 맛은 그야말로 일품이다!


잠시 체력을 비축한 버스는 다시 남진하기 시작한다. 공주 송산리 고분 지대를 향해 거침없이 달린다.

때마침 우리의 목적지 공주 부여 지역에서는, 1,400년 전, 대 백제의 부활을 선언하는 제57회 백제 문화제가 열리고 있었다.

공주 송산리 고분 지대는, 백제 제25대 무령왕릉이 발견됨으로써 잘 알려진 곳이다.

이곳에서 관광객들에게 해설을 해주는 역사 가이드 선생님의 설명을 경청한 우리는, 왕이 영면을 위해 잠든 능 내부를 겸허한 마음으로 둘러본다.

천오백 년 전의 한, 백제의 꿈이 점점이 서려 있는 것 같다. 생활 공예에 능했던 백제인의 숨결이 마치 어제의 일인 양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선인들과 언제까지 대화를 하며 있을 수 없는 것은 빡빡한 우리의 스케줄 탓이다.

백제 옛 어른들과 아쉬운 작별을 하고 공산성으로 향한다. 공산성은 백제 때에는 웅진성으로 불리며 당시 수도였던 공주를 방어하기 위한 토성으로 축성되었다고 전해진다.

해발 110m 공산에 포곡식으로 축조한 성이며, 둘레는 2,450m이고, 평면으로 동서 약 800m, 남북이 약 400m이며, 조선시대에 석성으로 개축되었다고 한다.

산성을 오르며, 천년 전의 백제 장수가 되어 천군만마를 호령해 본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조상님들의 가르침은 명언 중에 명언이다. 산성을 돌아 옛 백제인의 함성을 뒤로한 채 식당으로 향한다.

정갈하고 깔끔한 점심을 마친 우리들은 한결 느긋해졌다.

다음의 목적지는 부여로 이동하여 부여 국립박물관을 관람하게 된다.


다시 이동이다, 버스로 이동하는 그 자투리 시간마저 허투루 쓸 수 없다. 버스는 달리는 노래방이고, 움직이는 무대인 셈이다. 버스에 비치된 화면에는 반라의 젊은이들이 춤을 추고, 버스 안에서는 소위 관광버스 춤으로 끼를 마음껏 뿜어 낸다.

아들, 며느리 눈치 보느라 점잖아야 했던 시어머니도, 손자, 손녀 앞에 근엄해 보이던 할아버지도 지금 이 순간엔 존재하지 않는다. 누가 저들을 늙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으랴? 누가 저들의 가슴속 깊은 곳에 울림을 짐작이나 하랴.

차창을 스치며 지나가는 다른 일반 차량을 위하여 버스의 커튼을 살짝 닫아둔다.

우리는 모두 누구라 할 것 없이 예의 바른 학생들이다.

가방 속에 넣어온 명찰을 꺼내 목에 건다. '나는 예순다섯의 고교생이다!'라는 외침이 가슴속을 울린다.


그렇게 목적지인 박물관을 둘러보고 백제가 부여로 도읍을 옮긴(538년~660년) 때에 중심 사찰이던 정림사지(사적 제301호)로 향한다.

기억장치가 노쇠하여 잊지 않기 위해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며 주마간산(走馬看山) 격으로 돌아보고, 백마강 남쪽에 위치한 부소산성(사적 제5호)으로 향한다. 이곳에서 삼천궁녀를 만날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하며 산성으로 오른다.

부소산에 있는 낙화암(落花岩)은 충청남도 문화재 자료 제110호로 지정되어, 천년 세월을 삼천궁녀의 넋을 달래며 말없이 무심한 백마강을 굽어보고 있었다.


백마강엔 백마가 없다(3)

이제는 백마강에 배 띄우고, 산천을 돌아보며, 아름다운 대자연을 노래했을 시인 묵객들의 흉내를 내볼 차례이다.

백마강 포구에는 내외국인을 망라한 관광객들이 배에 오를 순서를 기다리며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천년을 흘러온 백마강은 시대의 변천에 따라 옷을 갈아입었는가? 아니면 황포 돛배에서 황토물이 들었는가? 기대했던 맑은 물은 세월 따라 흘러가고, 오늘의 백마강은 탁하고 흐리다.

마치 백제 최후의 왕, 의자의 혼탁함처럼 흐려있어 오늘의 백마강엔 의기 넘치는 백마가 없었다.

강 위에서 올려다 보이는 낙화암에서는, 삼천궁녀가 꽃잎 되어 하나, 둘 떨어져 내리는 백마강의 저녁이 붉게 물들어 간다.

내가 서 있는 이 선상(船上), 이곳이 백마강이기에, 내가 백마강 위에 배 띄웠기에, 문득 시인의 흉내를 내어 흥얼거려 본다.


백마강아, 백마강아

천년 나그네 말 물어보자.

도도하게 흐르는 물결이냐?

무심한 세월이더냐?

가슴에 서리서리 엉킨 한이,

얼마나 깊었기에

이 물이 그리 탁해졌을꼬?

백마는 간 곳 없고,

탁류만 흐르느냐?

아~ 아 백마강아!

다시 한번 물어보자.

천년 세월 동안 안아왔던

삼천궁녀는 뵈지 않고,

계백의 한도 없어라.

흐르는 탁류는 여전히

백마강인데,

백제는 간 곳 없고

세월처럼 강물만 흐르느냐.


언제까지 백마강을 슬퍼할 수 없어. 삼천궁녀에게 심화(心花)한 송이 꺾어 던지고 아쉬운 발길을 돌린다.

우리가 하룻밤 나그네 되어 머물게 되는 주막은 부여 유스호스텔이다. 현대식 건물로 잘 지어진 건물 탓에, 때 묻은 행주치마에 젖은 손을 씻으며 수줍게 길손을 맞는 주모는 볼 수가 없다.

서둘러 방을 정하여 짐을 풀고, 아래층 식당에서 저녁을 때운다. 밤의 축제를 기다리는 모두의 마음은 들떠 있었다. 또 다음은 어떤 프로그램이 기다리고 있을까?


그 밤은 광란의 밤이었다. 이 나이에 언제 그처럼 밤을 즐길 수 있으랴?

광란의 밤은, 캠프파이어의 제물이 될 마른 장작더미에 불꽃이 점화되면서 그 화려한 막이 올랐다.

누가 진행을 맡고, 누가 노래를 잘해 상을 받았는지는 중요치 않다. 알아야 할 필요도 느끼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 내 좌우와 맞은편에는 담임 선생님과 학우들이 함께 어울려 있을 뿐이다. 광장 중앙에선 거대한 아나콘다의 혀처럼 붉게 타오르는 볼꽃이 모두의 잠자는 야성을 깨우고, 이제는 가버린 줄 알았던 젊음이 타임머신을 타고 되돌아온 듯하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손뼉 치고 술 마시며 학우들의 열정적인 춤을 보면서 나도 서서히 젊어지고 있었다.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나 어깨를 잡고 원을 그리며 군무를 춘다. 스승과 제자가 하나 되고, 너와 내가 동화되어 가는 순간 우리는 오직 하나였다.

경복 방통고에서 맺은 또 하나의 인연이 끈끈한 힘으로 묶이는 순간이다. 슬그머니 자리를 이탈하여 내가 배정받은 방으로 내려왔다. 그 자리에 더 있다가는 체면 불고하고 소리 내어 엉엉 울어 버릴 것 같은 격한 감정이 가슴에 치솟았기 때문이다.

범상치 않은 뒷산에 가을을 노래하는 풀벌레조차 이 일단의 소란객에 쫓겨가고, 가을밤은 깊어 간다.

몇몇을 제외한 철없는 중년의 악동들은 제각기 또 다른 놀 거리를 찾아 자리를 옮겼을 무렵, 난 태어나서 처음, 깊은 잠 속으로 침잠(沉潛)한다.


백마강엔 백마가 없다(4)

아침 06:00에 습관처럼 잠자리에서 일어난다.

어제의 숙취로 어지러운 머리를 달래기 위해 대충 찬물로 씻어내고 방문을 나섰다. 눈에 보이는 학우들에게 정다운 아침 인사를 건네며, 숙소 앞 <그 드레 조각공원>으로 향한다.


백제인의 예술정신 여기 아사달의 후예들이 있어 정성껏 흙을 빚고 돌을 쪼아 백제 조각의 얼을 되살렸으니, 백마강변에 어린 자연과 예술의 조화 역사와 현대의 만남이 오가는 이에 심미안을 일깨움이어라


1996년 10월 부여군수


라고 음각되어 있는 표지석을 뒤로하고 드넓은 공원을 가로질러 금강 하류 둔치로 나갔다.

끝없이 펼쳐진 코스모스의 열병을 받으며 안개 짙은 꽃길을 걷는다.

가녀린 여인네의 수줍은 하늘거림이라는 코스모스는 이제 더 이상 연약한 꽃이 아니다. 우리네 여인들의 인내를 닮고 강인함을 배운 코스모스는, 멀대같이 키가 크지 않았다. 알맞은 크기인 덕분에 더 강해 보이는 꽃 코스모스가 잘 훈련된 정예병처럼 도열하여 삼천궁녀의 화신인 양 과거를 찾아온 나그네를 반긴다.

잠시 코스모스로 다시 태어난 삼천궁녀를 기억하며 거기 그렇게 한 참을 서 있었다.

누군가가 부르는 소리에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려 숙소로 돌아와 잘 끓여진 국으로 쓰린 속을 달랜다.


10월 3일. 하늘 문이 열리는 개천절에 우린 바닷길이 열린다는 무창포로 향한다.

선화공주와 서동의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를 생각나게 하는 조형물이 서있는 부여의 중심 로터리를 돌아, 버스는 해송이 지천인 산길을 몇 번인가 돌아가더니 무창포 해수욕장에 들어선다.

애석하게도 어젯밤에 바닷길이 열렸었다고 하니, 그 또한 인연의 아이러니가 아닌가?

내게는 몹쓸 불치의 병이 있다. 바닷가에 서면 가슴이 뛰는 벅참을 주체하지 못하는 병이다. 가슴에 응어리들이 한순간에 날아가 버리는 확 트인 바다가 한없이 좋다. 그 바닷가에서 목청을 돋우어 잃어버린 청춘을 소리쳐 불러보라. 밀려오고, 밀려나가는 바닷물이 경이롭다.

말라버린 호연지기가 거짓말처럼 되살아나는 것 같은 기분 좋은 아침이다.


여기서 약 한 시간 정도의 개인 시간이 주어졌지만, 바다 곁을 벗어 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바다와 산이 함께 하늘과 닿아 있으니, 어느 게 산이고 바다는 어디까지인지 알 수가 없다. 바다가 하늘 같고, 하늘이 바다가 된다. 산이 하늘이 되고, 바다가 되기도 한다.

문득 한잔 술이 생각난다. 줄지어 늘어선 횟집들 사이로 선생님 몇 분과 학우들이 보인다. 염치 불고하고 찾아든다. 무한대의 바다를 바라보며 마시는 한 잔의 술이, 어제저녁의 숙취를 흔적 없이 가져간다.

해송이 아름다운 무창포를 떠나 우리들의 여행은 계속된다.


다음 목적지는 서산 상왕산 개심사다. 왜 상왕산인지 그 이유가 궁금했지만 설명해 주는 이가 없다. 다만 이곳에는 하늘에 올라가서 비익조가 되고, 땅에 떨어져선 연리지가 되어 금실 좋은 부부가 된다는, 바로 그 연리지가 있다. 혹여 볼 기회가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풀이 우거진 숲길로 들어선다.

자연을 만끽하긴 했으나 애석하게도 연리지는 볼 수 없었다.

개심사 아래서 산채 비빔밥으로 점심을 마치고, 서둘러 귀경을 준비한다. 원래는 마애삼존불 탐방이 계획되어 있었으나, 시간이 지체되어 다음 기회를 기약한다. 그렇게 서울로 향하는 버스 안은 막마지 여행의 아쉬움이 짙게 묻어난 학우들이 못내 서운함을 춤과 노래로 보상받겠다는 듯 잠시도 쉼을 허락하지 않는다.

하루를 우리들과 함께한 버스는 벌써 서울을 코앞에 두고 숨을 고른다.

개천절 연휴로 도로가 정체되어도 짜증을 내는 학우는 없다. 오히려 정체됨을 즐기는 것 같다. 길가에 버려진 쓰레기조차도 정겹고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아마도 우리네 마음속에 순수함이 넉넉하기 때문인지 모른다. 소리 내어 웃을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이번 여행에 솔선수범한 모든 임원들, 나이들은 학생들을 인도해 주신 선생님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며 이 글을 맺어야겠다.

개인적으로 이 사람에게 우정을 나눠준 학우 여러분들에게도 고마움의 인사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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