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ttle of Verdun

by Andrew Oh

베르됭 전투(Battle of Verdun, 1916.2.21~12.18)**는 제1차 세계대전 서부전선에서 벌어진 가장 길고 치열한 전투로, 프랑스와 독일이 **“국가의 생존과 명예”**를 걸고 맞붙은 상징적인 전투입니다.


#WesternFront

#WW1

#BattleofVerdun


1. 배경

독일 전략 (에리히 폰 팔켄하인 참모총장)

프랑스를 *“피 흘려 소모시키는 전투(bleed France white)”*로 굴복시키려 함.

프랑스가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요충지”인 베르됭 요새군을 공격, 프랑스를 끌어내 대량 살상을 목표로 함.


• 프랑스 상황

베르됭은 중세 이후 국경 방어의 핵심이자 상징적 도시.

베르됭을 내주는 것은 프랑스를 내주는 것”이라는 인식이 강했음.




2. 전투 전개


초기 (2월–3월)

1916년 2월 21일, 독일군은 세계대전 최대 규모 포격(약 100만 발 이상)으로 공격 개시.

베르됭 북쪽 요새(두오몽 요새, Fort Douaumont)를 순식간에 점령 프랑스군 충격.


프랑스 반격 (3월–6월)

프랑스 총사령관 조프르는 베르됭 사수를 명령.

필리프 페탱 장군이 지휘, 유명한 말 남김: “그들은 지나가지 못하리라!(Ils ne passeront pas)”

보급로 “생생한 도로(Voie Sacrée)”**를 통해 끊임없이 병력과 보급이 투입됨.


교착과 소모전 (7월–10월)

독일군도, 프랑스군도 참호·포격·돌격 반격의 반복.

7월 이후 독일군은 솜 전투(영국-프랑스 공격) 때문에 전력을 분산시켜야 했음.


종결 (11월–12월)

프랑스군 반격으로 독일군이 차지한 주요 요새 탈환.

1916년 12월 전투 종결 전선은 사실상 전쟁 전과 비슷한 상태로 돌아감.




3. 피해 규모

전투 기간: 302일 (약 10개월) 1차 대전 최장 전투


• 사상자:

• 프랑스군 약 37만 명 (16만 전사)

• 독일군 약 33만 명 (14만 전사)

• 합계 70만 명 이상

영토 변화: 미미 (독일군은 약간의 요새 점령 후 결국 후퇴)


#TrenchWarfare

#병사갈아넣기



4. 의의

프랑스의 상징적 승리: 베르됭 방어는 프랑스 국민 결속을 강화.

독일 전략 실패: 프랑스를 소모시키려다 독일군도 막대한 손실.

소모전의 전형: 참호전 + 대규모 포격 + 인명 희생 “승자가 없는 전투”.

문화적 상징: 베르됭은 오늘날까지도 *“무의미한 학살, 참호전의 비극”*의 상징으로 기억됨.




요약

• 기간: 1916.2.21 ~ 12.18 (302일)

• 장소: 프랑스 북동부 베르됭 요새군

• 결과: 프랑스 방어 성공, 독일 전략 실패

• 사상자: 양측 합계 약 70만 명

의미: 1차 대전 참호전·소모전의 상징, 프랑스 저항 정신의 상징




베르됭 전투와 솜 전투의 비교”(목표·전술·피해·의의 차이


#BattleoftheSom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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