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Commune de Paris

by Andrew Oh

파리 꼬뮌(La Commune de Paris, 1871)은 근대 유럽 역사에서 매우 독특한 사건으로,

세계 최초의 노동자 자치 정부로 불리기도 합니다.


1. 배경


프랑스-프로이센 전쟁(1870~1871)에서 프랑스가 패배하고 나폴레옹 3세가 퇴위하면서 혼란 발생.


파리 시민들은 보불전쟁 패배에 대한 분노, 식량난, 높은 실업률 속에 정부 불신이 극도로 커짐.


1871년 3월, 당시 임시정부(티에르 정부)가 파리 국민방위군의 대포를 회수하려 하자

시민들이 저항 결국 파리에서

독자적인 자치 정부가 선포됨.


2. 꼬뮌의 성격과 이념


민중 자치: 보통선거로 대표를 뽑고, 대표들은 언제든지 소환 가능.


• 사회적 개혁:

• 교회와 국가 분리

• 야간 노동(특히 제빵업) 금지

• 외국인도 꼬뮌의 시민권 부여

• 주택료 체납 면제

• 공장 방치 시 노동자 협동조합에 운영권 부여

상징성: 맑스와 엥겔스는 파리 꼬뮌을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첫 실험으로 평가했음.


3. 붕괴 과정


꼬뮌은 약 72일간 존속(1871.3.18 ~ 5.28).


정부군(베르사이유군)이 파리를 포위하고 진압.


1871년 5월 21~28일,

이른바 “피의 주간(Semaine sanglante)” 동안

약 2만 명이 학살됨.


생존자들은 재판, 투옥,

해외 망명(특히 뉴칼레도니아로 유형) 처벌을 받음.



4. 역사적 의의


좌파·사회주의 운동의 상징:


레닌, 트로츠키, 마오쩌둥 등이 모두

파리 꼬뮌을 혁명의 교훈으로 삼음.


민주주의·자치 모델: 중앙집권적 국가 권력에 맞서 ‘도시 단위 자치 정부’의 가능성을 보여줌.


문화적 유산: 오귀스트 블랑키, 루이즈 미셸 같은 혁명가들이 영웅으로 추앙됨.



5. 오늘날 평가


프랑스 좌파 정치·문화에서 여전히 강력한 상징.

매년 3월이면 몽마르트 언덕에서 기념행사가 열림.


프랑스 노동운동, 사회당, 공산당의 역사적 뿌리 중 하나로 여겨짐.



파리 꼬뮌은 19세기 혁명적 민중 자치 실험이었고,

비록 짧게 끝났지만

이후 세계 혁명운동과 좌파 정치사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 사건입니다.


파리 꼬뮌의 지도(몽마르트르, 시청, 바리케이드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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