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생활 체험수기 -2
1992.12.6 크라이스트처치 , Christchurch
뉴질랜드를 아름다운 자연의 여행지로서만 기억하는 분이 많겠지만
여행만 다니는 것 과 실제로 그곳에 살면서 생활하는 것에는 분명한 차이는 있다
일자리를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이고 총면적은 일본과 거의 같은 크기이지만,
인구수가 너무나 적어서 ( 총 447만 명 / 2013년도 센서스 기준)
도대체가 해 먹을게 별로 없다는 이야기는 누구나 익히 다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최종 목적지는 크라이스트처치.
사전답사 겸 오클랜드 Auckland와 크라이스트처치 , Chrisrchruch를
각각 2박 3일 동안 체류해보고 나서
나는 크라이 스트처치, Christchurch로 결정했다.
오클랜드, Auckland 가 탈락된 이유는 간단하다.
영국 여왕의 이름이 들어간 Queen Street 큰길, 큰 도시답게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 길에서 나의 귀로 들려오는 것은 영어보다도 다른 나라 말이 더 많았다.
그리고 수많은 차 들과 교통체증과 공해.
아무도 아는 사람 없는 곳에서 한국의 과거 훈장 계급 다 내려놓고 다시 ZERO에서 시작하는 것이라면
규모 가 큰 대도시에서 출발하는 게 여러모로 나에게 도움이 될 듯했다. 아무래도 크니깐.
당시 나와 거의 같은 시기에 뉴질랜드로 이민을 온 많은 한국인들 거의 대부분이
오클랜드 , Auckland를 최종 목적지로 정한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갔다.
한국을 떠나 먼 곳 이곳까지 나와서 한국인끼리 같이 모여 있으면
서로 의지하고 서로 많은 정보와 도움을 받게 된다는 어느 교민 어르신의 말씀.
수긍은 가지만 동의할 수는 없었다.
나의 인생은 내가 만들어 나가는 것이고 나에게 책임이 있는 것.
인생에 대한 객관적인 모범답안 , 정답이라는 게 어디에 있을 수 있을까.
한국을 떠나 이민이나 영어공부차 유학을 을 가려는 자가
현지 한국인 교민사회부터 수소문하며 애써 찾아야 한다면...
그것 또한 그들의 결정이고 그들의 몫이다.
나는 나의 첫딸 , 6개월짜리의 눈으로 보려고 노력했었다.
우리 아이는 어떤 곳을 선택할까.
우리 아이는 어떤 것들을 보면서 자라야 할까.
이름부터 예쁜 크라이스트처치 , Christchurch를 선택한 당시 나의 결정은 탁월하였고
-- 지금은 24살 어른이 된 나의 까칠한 딸도 이점 하나만큼은 동의해준다.
아름다운 정원의 도시라는 별명답게
푸르른 공원과 조그만 강물 이 흐르고 하늘은 더욱더 깨끗한 푸른색
영국 밖의 영국이라는 또 하나의 별명답게
조용한 영국적인 분위기가 동네 곳곳에.
24년이 지난 오늘 지금 다시 선택하라고 해도 나는 똑같다.
나는 크라이스트처치 , Christchurch 우리 동네를 사랑한다.
이로서 오클랜드 , Auckland는 미래의 유능한? 시민 한 사람을 놓치게 되었고
나는 크라이스트처치 , Christchurch를 선택했었고
18년 후 2010년 10월 , 이 크라이스처치, Christchurch는
나를 선출직 의원으로 선택하게 된다.
산타 퍼레이드 , Santa Parade
방 2개짜리를 렌트 집을 계약하고 , 차 도 사고 , 필수 가전제품도 샀다.
와이프와 6개월짜리 딸이 도착하기 전까지 최소한의 기본적인 생활 준비를 해야겠다는 일념에
열심히 준비했다.
렌트 집 계약 시 "본드" Bond라는 뜻을 잘 몰라서 헤매었고
계약서 내용도 모르고 시키는 대로 무작정 서명만 해버리게 되었다..
나의 영어는 여전히 심각한 문제가 있었음에도 부동산 측 에서는 눈치껏 알아서 억지로 챙겨 들어준다.
내가 내 돈을 주고 물건을 사는 경우엔 영어의 언어소통에 아무런 큰 문제는 없었다.
환불을 해야 할 때에 그들로부터 돈을 다시 돌려받을 때에 언어소통 문제는 아주 확실하게 나타나고
나에게 크나큰 시련과 아픔을 함께 돌려 준다.
내가 부딪히고 내가 아파야 영어는 오히려 점점 늘어간다. 나의 24년간 경험이다.
새로운 렌트 집에서 가족 도착까지 나 혼자 며칠간을 보내야 하는데.
어떤 날 밤, 하늘에 별이 갑자기 보였다. 한두 개 가 아니고 수많은 별들이 다 보였다.
한국에서는 잘 볼 수 없던 별들이. 오래전 나 어릴 적 책에서 보던 그 별자리 별들이
지금 이곳에서 다시 다 보였다. 얼마나 신기하고 반가운지.
내가 한국에 있었다면 이런 별들을 구경도 못했을 텐데.
이곳은 하늘이 깨끗해서 그렇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고
갑자기 이 깨끗한 공기가 매우 신선하게 기분 좋게 느껴졌다.
" 아.. 이런 것이구나 "
별을 보면서 우리 가족들도 기분이 좋아질것으로 생각이 들었다.
밤에는 조용했었다.
밤 9시인데도 무서울 정도로 조용했다. 이웃 주변이 너무나 너무나 조용하다.
주위 이웃들이 나만 빼놓고 어디론가 다 같이 도망가버렸나 싶을 정도로
밤에는 쥐 죽은 듯 온 사방이 조용하였다.
밤에, 이곳의 이 조용한 밤 분위기가 나에겐 도저히 적응이 안된 것.
" 아.. 이런 것이구나 "
밤 9시의 한국 생각이 갑자기 나서 혼자서 한참이나 웃었다.
시끄러운 소리도 있었다.
새소리이다. 새벽 동틀무렵엔 수많은 새들이 우리 집으로 날아와서 정말 시끄럽게 울어댄다.
새소리가 이렇게 귀에 가깝게 들려서 잠을 깬 것도 나의 인생에서 처음이었다.
이 새들은 내가 가까이 다가가도 도망가지 않았고
오히려 나에게 다가왓다.
뉴질랜드의 새들은 고양이에게 잡힐 정도로 멍청했다.
아침 시각에 동네 어디선가 음악 소리가 들려오고 사람들 소리도 들려와서 그쪽으로 나가보니
우와… 엄청난 인파들이 리카 톤 로드 , Riccarton Road를 가득 채우고 있고
멀리서 북을 치는 음악대가 행진해 오는 것이 보였다.
이것이 바로 난생처음으로 구경하게 된 “ 산타 퍼레이드, Santa Parade “ .
오로지 아이들을 즐겁게 해주기 위한 행사이었고 이날 모든 어른들은 기꺼이 산타가 되어주었다.
모든 어른들이 아이들을 웃게 하려고 웃게 해 주려고 노력하고.
퍼레이드를 하는 사람이나 구경하는 사람이나 질서관리를 해주는 경찰이나 모두 모두가 웃고 있었다.
오로지 아이들을 위한 이 따뜻한 행사 분위기는 정말 보기 좋았다.
그날 퍼레이드가 끝나고 집으로 걸어오면서 나 혼자서 중얼중얼.
" 나의 딸은 이곳에서 행복할 거야 ".
이 뉴질랜드에 도전해보고 싶었다.
다 내려놓고 ZERO 에서 새로 출발한다는 마음으로
친척도 친구도 아무도 없는 이곳에서
나의 모든것을 던져보고 싶었었다
6개월 짜리 딸아이가 나중에 커서
" 아빠는 뭐했냐고.." 물어오면
대답은 해야했기에
24년이 지난 지금
그때 그 자리 리카 톤 로드 Riccarton Road에서 “ 산타 퍼레이드 “ 를 다시 보게 되었다.
행사 규모는 더욱더 엄청 커졌고 더 많은 어른 산타들이 나타났고 더 많은 웃음들이 펴져나갔다.
그대로 이었다. 여전히 기분 좋은 감동 그 자체이었다
한가지 변한 것은 나 의 주름살.
그래도 나 혼자 중얼중얼
" ㅎㅎ 역시 이곳으로 오길 잘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