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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drew Yoon Sep 15. 2016

뉴질랜드 .. My country

해외생활 체험수기-8

첫 직장을 가짐. 



그 어렵다는    첫 직장을 가졌음에도   파트타임에   월급 수입이  적어서    

드디어   우리의   은행 잔고는 점점  낮아져서   $ 600  ( 약  48 만원 정도)  정도까지  낮아졌다. 

급기야   와이프는   한국서 가져온    인형이나   장신구 등을  모아서   길거리 마켓 , Sunday market

에 앉아서   $ 1, $ 2 짜리   장사를 시작했다.    아마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일 듯.

나는   김치 깍두기를    조그만 비닐  한 봉지에   $ 5 씩   만들어서   일본인들에게   팔기 시작했다.    

그들은   한국산  깍두기를  매우 좋아했었다.    주문이  꽤 나  있었고. 


살아남기 위해   무엇이라도 팔고   한 푼이라도   벌어야 했었다.  


와이프는 가계부도  썼고 매일매일  한 푼씩 절약했다.   

그럼에도   와이프는   한 달에  한 번씩    맥주 한 병을  사주었다. 고맙게도. 


가끔씩 만난    한국인 이민  동기 친구들은   나에게  물었다.


“ 그렇게  진상 맞게  고생하며  살바엔   한국에 있지 왜 나와서 고생하느냐  “

“ ……. “ 


실업자 수당을 받으며   그렇게 여유 있게   말할 수 있는   그들이   솔직히  부러웠다.

하지만  24년 이 지난 지금도   당시의  나의 결정에  매우  만족하고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당시  나는  아무것도   없지만  꽤나  멋있었다.  



Queenstown , 퀸즈타운 에서  




얼마 안 되는 월급 ,     2주마다  받는   Pay Slip 은   뜯어볼 때마다   기분 좋았다.  

기념품 선물가게에서  쓰레기 수거 담당으로  열심히 일하던 중  1년이 지났을까. 

모  여행사에서   나에게   오퍼가  왔다.     일본어도 하고  컴퓨터 키보드도 하고 

영어 도 하니깐?   Tour Operator로   앉아서 일하는   사무실 근무를   제안받았다.   


시간당 $10로   받았으니   월급이 꽤나  올라간 셈.  

그것도 좋지만   이젠   샐러리맨처럼   넥타이 매고  

사무실 실내에서  앉아서  일하게 된다는 점이    나를 기쁘게 했고  

그날 밤   맥주 한 병을  추가로 사서   와이프와   기분 좋은   건배를 했다.   


매일매일  재미있게 열심히 일하던 중    또 1년이 지났을까.    놀랄만한  기적이  생겼다.

한국을  뒤로하고 먼 이곳까지  이민을 왔는데,   한국 국적기가    크라이스트처치까지  

취항을 하게 된 것.  해서  공항에서 일할   직원을  뽑는다는   이야기를  언뜻  들었는데     

어떻게  어떻게  나를  찾아왔고   풀타임  오퍼  제의가  들어왔다.

연봉 $ 30,000 계약  조건으로.   

그렇게  나는  뉴질랜드에서  세 번째 직장으로  스카우트가  된다. 


그날 밤엔  나도  와이프도   같이   울었던 것 같다.       

분명한 것은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다.     



Lake Tekapo  , 테카포 호수에서 





크라이스트처치 공항


이 공항에서   약  2년 정도 근무하였는데    이곳에서  나는  너무나   많은 것을 배웠고   

또  수많은   키위 친구들을 만들 수 있었다.   공항 경찰, 이민국 직원,  세관직원 등..   

공항 내   통제구역 내에서   한국어 통역이 필요할 때마다  나는  불려 다녔었고   

난 기꺼이  자원봉사를 했다.      

밤 시간, 새벽시간  비행기가 도착할 때마다   한국 관광객이 문제 발생될 때마다     

때를 가리지 않고   전화가  걸려  왔다.  

불편했지만   행복했었다.    

누군가를  위해    내가   뭔가  도움이 된다는 사실   그 자체에.   

 

영어로 인한  의사소통의  불 폄 함은   매뉴얼대로   질문을 해야 하는  공항의  뉴질랜드 공무원이나  

영문도 모르고   공항 내에서   잡혀서  초초하게   나를 기다려야 하는   한국인이나 똑같았다.
모두가 나를  원했었고   나는  모두를   행복? 하게   할 수 있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모두가  빨리  일을 끝내고   집으로 가기를   원했었기에. 





공항에서  영어 통역  자원봉사는   오히려  나에게   영어공부가  되었고    

이를  계기로  한 발 더 나가서   뉴질랜드 경찰서에   무보수  자원봉사 신청을  하게 된다.  

매주말마다  경찰국에 나가서   시작하게 된   자원봉사는  그 후  12년  동안  계속되었고   

그 경력은  우연히도  

향후   내가   뉴질랜드 사회에서   일을   할 수 있는  큰  디딤돌이 되었다. 


나는  이 정도로   운이  좋은 사람이다





이민자가  현지사회 정착을   위해서  

시도해 볼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무보수 자원봉사이다.


내가  살고 있는  이 나라가   "우리나라" 라고   생각하면  쉬운일 이지만 

여전히  "남의 나라"  라고 생각되면   어려울수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Hanmer Spring  핸머스프링 가는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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