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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drew Yoon Sep 16. 2016

뉴질랜드.. My country

해외생활 체험수기 - 9


영어와  싸우다.




나의 이야기 ,  이 글을 쓰는  가장 큰  이유는  

큰 딸  Emma와 작은딸 Hannah에게  아빠와 엄마의  영어에 대한   그동안의   처절한 노력을   

보여주기 위해서이고   글로  남겨서  대대로  물려주기 위해서 이다.

고등학교 학생 무렵부터  아빠  엄마의  짧은 영어능력에 대해서  점점  의구심을  갖게 된   두 딸은

한 번씩  우리를  놀리기도 하고  어떨 때엔  아주  심하게  지적을 하기도 한다. 


영어로  기를  죽이려는  두 딸에   대항하기 위해   

내가  10년이 넘게   매주 토요일  오전 시간에  

경찰국에서  남을 위해  자원봉사를 하러  나간다는  작전 자체도  

아이들에게는 아주  큰  교육적 효과가 있었고 


내가  취미로 뛰기 시작한    마라톤- 하프도   10년 넘게 하면서  

매년  새로운 기록과  인증사진을  집안에  차곡히  걸어둔 이후로 

그것만으로  두 딸은  나를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사람으로  분류하고 있다.     


 

크라이스트처치  헤글리 공원에서

       




다시 과거 이야기로.         

이곳에도  한국 교민 사회가  생겨서   미국 LA처럼   영어를 사용할  필요  하나도  필요 없지만   

영어에는  한번  도전해 보고 싶었다.   외국영화를   한글 더빙 없이  본다면   그  감동은  어떨까 라는  

단순한  호기심도  있지만   딸아이가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학부모로서  영어가 필요했다.

학교 측과의  학부모 인터뷰도  중요했지만  더 중요한 것은   딸아이의  학교 친구  만들어주기에는 

학부모로서의  영어가  절대적으로  필수적이었다. 

    

친구가  우리 집에 와서  자고 가고   우리 아이가  그 친구 집에 가서 자고 하는   Sleep over를 하면서 

짧은 영어 때문에   어린  딸아이에게   큰  창피를  당할 수는  없었고   사전 동의를 받기 위한      

부모들과의  전화통화 연락도  반드시 거쳐야 하는  산 넘어  산이었다.  무슨 놈의 파티는 그렇게 많은지. 


부모의  영어 레벨에 따라서  아이들의  친구관계까지  극히  매우  제한적으로  될 수도 있었다.   

나의  경험과  생각은  지금도 변함없다.    

아이에게  어떤 친구들을  만들어  줄 것인가. 

이민을 생각하시거나   조기유학을  생각하시는  부모님들에게는  혹  참조가 될까.   



크라이스트처치  헤글리 공원에서 




영어공부를 다시 시작해야만 했고  그것도 아주 심각하게.  

 

뉴스와  토론만   방송하는  라디오를   24시간  듣고 

매일  아침  신문을  구독하고 

매일  저녁 TV에서 뉴스를  보고 

현재  이슈에 대한   나의 생각을  적어   신문 독자란. Opinion 에  보내는 것. 

희한하게도  나의  글은  매번 독자란에 올라왔고  제법  많은  독자반응을   불러왔다. 

나는  영어공부를  한 것뿐이었건만.  





매주 토요일의   경찰국 자원봉사  근무 시에는  항상  할머니  혹은  할아버지가   같은 팀으로  근무한다. 

일이 없을 때마다  그분들은  나 와  대화를  원했었고  나는   완벽하게  무차별  영어 공격을  받았다.      

신문을 펼쳐놓고  나의  생각을  묻거나   요즈음  읽고 있는  책에  대해서  의논.


그렇게  10년이  넘어가면서   겨우  그들과  논쟁을  할 수 있는 경지? 까지   도달하게 되고

그때쯤  이 할머니, 할아버지 들의  연대서명으로  나는 J.P  ,  Justice of the Peace로   선임된다.

지역사회를 위해   봉사한   뉴질랜드인을  뉴질랜드 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해주는.

이민 온 지  18년 만의 일이고   당시  내 나이 40세이었다. 

이로서  나는  18년 전의    나의  약속을  반 정도는  지킨 것 일까.



크라이스트처치  리카톤 부쉬 공원에서 




그 후  정치인들로부터    만나자는 연락이 오게 되었고

나는  지방의회   후보자가  되어  7천여 집을 가가호호 방문하면   선거운동을 했다.  

그리고  뉴질랜드에서  한국인 최초로   선출직 구의원으로    당선이 되어   정치인이 된다.

다  만화 같은  이야기이다. 




우연히도  타의에 의해서  나의  사업체를  시작하게  되었고,      

피눈물 나는  어려움을  거친  3년 후 ,   

나는  년 매출액   수백만 불이 넘는  사업체로  만들었다. 

시내 한 북판 중심가에  어엿한  나의 개인 사무실까지  만든다.

과거  시간당 7 불 짜리  청소하던   그 장소 부근이었다. 



크라이스트처치   리카톤 부쉬 공원에서





일도  사업도  재미있지만

자원봉사하던 시절이  나에게  가장   좋았던 기억뿐이다.    


뉴질랜드는  모두에게  열려있는  나라이고   뭐든지  도전 가능한 나라이다.

한국의  젊은이들이  인생을 걸고  한번 도전해 볼 만한   곳.  


지금 현재  업무차   해외여행을  많이 하는 편인데  

캐나다 나  영국 등에  입국할 때 매다  이민관들로부터 듣는  이야기는.  

"  I love your passport. " 

실제로  뉴질랜드 여권은  참 예쁘고  멋있다.    

믿거나 말거나.  



크라이스트처치 헤글리 공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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