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움받을 용기'를 절반만 읽고
"인간관계의 중심에 ‘경쟁’이 있으면 인간은 영영 인간관계에 대한 고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불행에서 벗어날 수가 없어."
'남을 평가하거나 남과 비교하지 말라, 오늘의 나보다 나아지면 되는 것이다. 열등감은 나쁜 게 아니다. 오히려 그것을 동력 삼아 성장할 수 있다.'
'나는 시간이 부족해서 해낼 수가 없다'는 것은, 내가 해낼 수가 없는 이유를 시간이라는 원인에 전가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 내가 편안해지므로. 나는, 언제든 해낼 능력이 있지만, 불가피한 이유로 해내지 못하는 것이라고 도피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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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움받을 용기', 이 책이 한참을 베스트셀러에 올라있는 동안에도 쉽사리 손이 가지 않았다. 들키고 싶지 않은 못난 마음들을 훤히 들여다보는 책일 것 같아서였다. 역시나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이 책의 내용대로라면, 매우 종종 '오늘 기분이 안 좋아서 해야 할 일이 손에 안 잡혀'라고 생각하는 나는,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기 위해 기분이 안 좋기를 택한 셈이다. 썩 유쾌한 지적은 아니었지만 마냥 틀린 말도 아니었다. 실제로 해야 할 일이 남아있다는 사실이 기분을 안 좋게 하기도 했고.
위와 같이 원인론이 아니라 목적론으로 생각하는 건, 다소 극단적이긴 하지만, 무계획적이고 충동적으로 사고하는 나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다만 타인과의 비교나 경쟁을 지양하고 자기를 중심에 두라는 내용은, 과연 현대인에게 가능한 것인가 하는 의문이 남는다.
학교부터 사회까지 끊임없는 비교와 경쟁 속에서 살아왔는데, 이제는 갑자기 그로부터 자유로워지라고?
전 세계에 100명의 사람들이 산다고 가정했을 때 100명이 모두가 서로 경쟁이나 비교를 하지 않는다면 자유로울지 모른다.
하지만 그중 한 명이 큰 소리로 누군가의 우열을 평가한다면? 나머지 모두가 그를 무시하자고 합의하지 않은 이상 내면의 평온은 깨질 것이다.
소란을 잠재우고 제자리로 돌아와 100명 모두 마음의 수련을 통해, 오롯이 자기 자신에만 집중한다고 치자. 모두가 소크라테스나 아들러가 아닌 이상 평화는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남들은 나를 평가와 비교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데 나만 그렇지 않다는 것이 가능한가? 현대사회에서 본인의 이득을 위해 택하는 모든 행동이 남을 짓밟지 않고 오직 '어제의 나'보다 나아지기 위한 선택이었다고 할 수 있는 걸까?
결국 우리는, 어쩔 수 없는 사회의 각박함 속에 서로를 재단하고 평가하고 있지만, 내 진심은 그런 게 아니라는 얄팍한 신뢰에 기대어 '우리 아무도 비교하지 말자'며 눈치게임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내가 너무 회의적이고 그릇이 작은 걸지 모르겠다. 그 책에서 아득바득 철학자를 이겨보려는 못난 남자가 된 것 같다.
무언가 꼬여버렸는지, 이 책을 읽고 이 정도 비뚤어진 감상밖에 남기지 못한다는 게 씁쓸한 가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