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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h on Oct 03. 2022

부모의 이혼에 완벽한 타이밍이 있을 수 있을까

지극히 평범한 이혼가정, 첫 번째 이야기

2021년 신규 혼인 건수는 약 20만 건, 이혼 건수는 약 10만 건.


2021년 이전 혼인을 모두 포함하여 이혼 건수가 10만 건이기에, 부부 2쌍 중 1쌍이 이혼했다고는 볼 수 없다. 그러한 해석을 지양하더라도, 이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일임은 충분히 실감할 수 있는 수치이다. 그만큼 이혼 가정은 찾기 어렵지 않다. 그렇기에 그 가정에서의 미성년 자녀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다만, 유약하고 예민한 나이대의 아이들은 그것을 굳이 입 밖으로 내어 보이지 않을 뿐이다. 나 역시 그랬었다. 십 년이 다 된 지금은 그 기억을 천천히 꺼내어 본다.


인생에는 겪으면 좋은 일들이 있고 반드시 겪지 않아야 할 일들이 있다.  그 중간지점에 무수한 ‘굳이 겪지 않아도 괜찮은 일들’이 있다. 분류하자면 부모의 이혼은 굳이 겪지 않아도 괜찮은 일에 속한다.



겪지 않아야 할 일로 분류하지 않은 이유는 부모의 이혼이라는 것은 피하려 할 수도 없을뿐더러 피하려 할수록 최악으로 치닫기 때문이다. 삶은 문제를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의 문제를 마주하고 대응하면서 살아하는 것이라고 했던가, 이미 벌어질 상황이라면 벌어지게 두고 그에 맞게 대응하는 것이 맞다.





문제는 타이밍이다.




아이가 부모의 이혼을 마주하는 때는 대응이랄 것을 할 수도 없이 어리다는 것이다. 그래서 필연적으로, 미성년 아이가 있는 가정의 이혼은 모든 경우 최악의 타이밍이다. 나의 경우는 10살이었다. 학교를 일찍 들어가 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또래보다 키도 몸무게도 작아 맨 앞자리를 도맡던 나는 갑작스럽게 부모의 이혼을 맞닥뜨리게 되었다.



그때보다 거의 3배의 시간을 살아낸 지금도 내게 세상은 복잡하기만 한데. 초등학교 4학년에게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아니, 오히려 너무 어려서 다행이었을까? 정신, 신체 그리고 자기를 둘러싼 세계가 커져가는 혼돈 속에 부모님의 이혼이라는 변수는 그게 무엇인지도 파악되지 못한 채 어린 나의 피부에 흉터처럼 생겨났다.



이 이야기는 그 흉터가 작았다가, 커졌다가, 없어졌다가(없어진 척하였다가), 터지기도 하는, 즉- 나와 흉터가 지지고 볶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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