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oh on Oct 11. 2022

엄마 아빠가 따로 살기로 했다

지극히 평범한 이혼가정, 두 번째 이야기

가늘고도 긴 부모의 이혼 이야기는 내가 초등학생이었던 시절부터 시작한다. 벌써 10년도 훌쩍 지난 세월 탓이기도 하겠지만 나는 초등학생 시절 기억이 거의 없다. 지금도 나는 힘들고 지치는 일이 많은 날은 억지로 잠에 들어 그날의 기억을 지우려 한다. 놀랍게도 그건 꽤 잘 통하고, 그게 내게 초등학교의 기억이 별로 없는 이유이겠지.


그냥 평범한 봄 또는 가을의 어느 날이었다. 엄마는 나에게 학교가 끝나면 후문으로 나오라고 했다.

 


"정문으로 나와선 안돼. 아빠가 엄마랑 떼어놓으려 할 거니까 꼭 후문으로 집에 와."



삼십 분 집중하면 다행이었던 어린 나는 학교 수업이 끝날 때까지 엄마의 간절한 부탁을 기억할 리 없었다. 학교가 끝난 뒤, 친구들과 정문으로 신나게 나섰다.


그리고는 정문 앞에서 할아버지가 나타나 당시 타고 다니시던 파란색 트럭에 나를 태워 데리고 갔다. 다정한 모습으로 손녀를 데리고 갔다면 같이 있던 친구가 화들짝 놀라 자기 엄마에게 '갑자기 할아버지가 나타나 데리고 가버렸다'라고 말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 이후는 허겁지겁 엄마 아빠의 이혼에 대해 아주 짧고도 간단한, 불친절한 설명을 들었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엄마 아빠가 따로 살기로 한' 아이가 되었다. 하굣길에 벌어진 일이니 친구들도, 학교에서도 알 사람은 다 알게 되었다.


이 날의 기억은 어린 나에게 치명적이었다. 친구들이 알게 되었다는 사실도 썩 유쾌하진 않았지만 그건 사소한 축에 낀다.

왜냐하면 나는, 그날 내가 후문으로 가라는 엄마의 말을 듣지 않고 정문으로 갔기 때문에, 엄마랑 헤어지게 됐다고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미 다 커버린 나는 지금 누군가 이혼을 고려하고 있다면 이혼 그 자체에 말을 더하진 않을 것이다. 다만 아이에게 '너의 선택에 따라 상황이 좋아지거나 악화된다고'는 하지 말라고 권하고 싶다. 아이에겐 상황을 설명하고 그저 양해를 구하기만 하라고 할 것이다.


10살의 내가 그랬듯, 후에 아이는 받아들이기 힘든 이 상황을 자기가 초래했다는 생각에 괴로워할 것이다. 이 상황이 자신의 탓이 아니란 것을 알기에는 아이들은 너무 순수하고 유약하기 때문에. 불안정한 부모는 물론이거니와, 이건 너의 탓이 절대 아니라고 말해주는 사람을 만나는 건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에.


아무튼 그렇게, 뭐 요즘 세상에 특별한 일도 아니지만, 10살의 나는 웬만하면 감추고 싶은 사실을 가슴에 하나 안고 살아가게 됐다.


이전 01화 부모의 이혼에 완벽한 타이밍이 있을 수 있을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