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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h on Oct 18. 2022

‘정상 가족’ 궤도 이탈

지극히 평범한 이혼가정, 세 번째 이야기


“얘들아. 내일까지 가정통신문 다 채워 와.”

 

맨 첫 줄부터 맨 뒤에 앉은 학생까지 한 장씩 나누어지는 회색 갱지의 가정통신문. 한 학년 올라갈 때마다 마주쳤던 쉽지 않은 미션이었다.

 

그 가벼운 회색 종이에는 부모님의 이름, 나이, 최종학력, 직업 등을 적어야 했다. 꽤나 개인적인 부분을 자세히 캐물으면서도 부모 어느 한쪽의 부재에 대한 고려는 전혀 없었다.

 


나는 그렇게 매년 우리 가족은 평범한(내지는 정상적인) 유형이 아니라고 확인당했다. 우리 가족이 '정상 가족'의 범주에 속하지 않게 된 이후, 누군가에겐 아무것도 아닐 가족에 대해 묻는 일상적인 질문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멈칫하게 된 것이다.

 

중학생의 나는 개인의 직업, 출신학교 등을 적는 것의 당위성에 대한 고민보다도 우선은 이것을 어떻게 채워야 하는지 막막했다. 이 종이를 할머니, 할아버지, 엄마나 아빠 중 누구에게 먼저 줘야 할지, 기한 안에 채울 수는 있는지..



사각사각, 거친 질감의 회색 종이는 내게 꼬리에 꼬리를 무는 고민을 넘겨주었다. 그래서 내겐 책가방 속의 종이 한 장이 벽돌 몇 장보다 무거웠다.

 

대부분의 경우 학교에 내야 하는 서류들은 아빠에게 가져갔다.

-부: 대졸, 직장인. 모: 고졸, 주부.-

아빠는 어렵지 않게 빈칸을 채워 내게 다시 주셨지만 종이를 건네주는 아빠의 표정엔 옅은 그늘이 지나갔다. 그건 아마 내게 느끼는 미안함과 엄마를 떠올리는 불편함과 학교에 대한 묘한 적대감 등등 다양한 감정이 섞인 것이었으리라.

 

아주 짧은 순간일지라도 아빠의 어두운 표정을 보는 것이 싫었다. 아빠가 내게 미안해하는 것도 싫었다. 내가 먼저 ‘아빠, 미안해하지 마’라고 말할까? 그건 오히려 ‘미안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부담을 주는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결국 아무 말 없이 무겁고 불편한 공기만이 집안을 감도는 날들이 몇 날 있었다.




이후 나는 가정통신문 자체가 문제라고 결론 내려 버렸다.

항상 그게 쉬운 결론이다. 내가 잘 해결하지 못하는 상황을 가장 쉽게 빠져나가는 것은 문제를 상황 자체로 돌려버리는 것이다.

 

같은 맥락으로 세상이 내게 가족에 대해서 아무것도 묻지 않기를 바랐다. 그냥 아무것도 궁금해하지 말아 주세요. 중고등학생의 나는 마음의 문을 지키는 문지기를 한 명 데리고 살았는지도 모르겠다.

 


세상에 잔뜩 날을 세우고 마음을 닫았던 나는 사실, 누군가 먼저 손을 내밀어 “너네 집이 비정상은 아냐. 수십 가지 가족의 형태 중에 하나일 뿐이야.”라는 말을 해주길 바랐던 것 같다. 회색 갱지의 불친절한 가정통신문은 그걸 알려주기엔 역부족이다.


네가 할머니 손에 자라든 할아버지 손에 자라든 아무 문제없을 것이고 오히려 더 잘 될 수 있다는 이야기. 할머니와 할아버지만이 줄 수 있는 사랑이 너에겐 있다고.


네모 티브이에 나오는 화목한 4인 가족은 그저 44 사이즈의 여성복처럼 스탠다드한, 어찌 보면 편협한 기준 같은 것이라고.


정상, 표준, 평균이라는 기준과 거기서 벗어나는 것들에 대한 고민이 적용되는 것은 비단 가족 형태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종종 든다. 부디 하나의 이상에 본인을 끼워 맞추려 고통받거나 좌절하는 아이들이, 어른들이 없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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