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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h on Aug 30. 2021

빌딩풍과 베르누이의 정리

뜨거운 여름의 기세가 주춤할 8월 말 정도의 밤. 우연히 빌딩 사이 골목길로 들어갔을 때 땀을 식히는 시원한 바람.


빌딩풍이라고도 불리는 이 바람은 발견한 과학자의 이름을 딴 베르누이의 정리로 설명된다. 액체나 기체가 넓은 공간에서 좁은 공간으로 갈 때 좁아진 만큼 그 속도가 빨라지는 현상이다. 바람이 좁은 빌딩 사이를 지나며 더 세어지고 빠르게 부는 것이다.


한 사람이 살랑바람처럼 불어오던 계절이 있었다.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와 호기심의 사이에서 내 마음속에 빌딩을 세웠다. 나 역시 그 바람이 궁금하기도 하여 아예 벽으로 닫아버리긴 싫었던 모양이다. 여기는 이런 이유로, 저기는 이런 이유로 내 마음을 너무 빠르게 휘젓고 들어오지 말아 달라며 세운 빌딩들이 즐비했다.


잔잔히 살랑이던 바람은 아마 내가 평생 몰랐을 수도 있는 이름인 베르누이를 등에 업고 오히려 더 거센 파도가 되었다. 빌딩을 세우던 마음이 무안해질 만큼 빨라진 속도로 내 마음속 빌딩 사이를 이리저리 유영한다. 내가 열심히 세워 낸 그것들을 하나하나 찬찬히 살펴보며 말을 걸어온다. 이 공간은 무슨 일이 있던 곳인지, 왜 이런 모양으로 되어있는지, 어떤 생각을 하며 지었는지, 내 이야기는 언제부터였는지.


나는 이제 그 바람이 내 마음을 다정히 바라보고 살필 거라는, 언제 있었냐는 듯 휙 하고 빠져나가 공허함을 남기진 않을 거라는 알량한 요행을 바라게 된 것이다. 잔잔히 오래도록 기분 좋은 바람이 불어오기를, 내 마음속 날씨가 늘 오늘만큼 선선하기를 바라는 마음과 더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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