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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떤날엔 Jan 14. 2021

(20) 알고 보니, 귀한 놈이었구나!

흰머리 군락지가 늘어났다.

내 두피가 안성맞춤 서식지라도 되는 것처럼 오른쪽에서 한 무더기를 뽑아내면 좀 지나 왼쪽에서 한 무더기가 발견됐다. 긴 머리카락을 하나로 질끈 묶은 채 생활하는 매일이다 보니, 묶어놓은 머리카락 사이로 삐죽삐죽 튀어나오는 새끼(!) 흰머리카락들이 여간 거슬리는 게 아니었다. 내버려두자- 마음 먹어도 거울을 볼 때마다 신경 쓰이는 걸 참을 수가 없었다. 결국 또 쪼그리고 앉아 이 새끼들!! 하며 족집게로 뽑아댔다. 눈을 치켜 뜨고 정수리를 노려보며 마구 뽑아대기를 벌써 몇 달째. "이러다 흰머리고 나발이고 눈동자가 돌아가 버리겠는데" 하는 걱정을 하며 머리카락을 헤집고 있는데 문득 족집게에 눈길이 갔다.


"음? 이걸 언제 샀더라?"

흰머리가 나면서 새로 마련한 물건이 아니었다. 집에 이런 물건이 있는 지조차 몰랐었다. 손가락으로 도저히 해결이 안되어 핀셋 같은 것을 찾았는데 그 옆에 족집게가 있었다. 별 생각없이 '맞다, 이게 있었지' 하며 몇달간 잘 사용했었다. 그러다 문득 눈길이 갔다. 자연스레 내 손에 감겨오는 족집게. 얘가 언제 이 집에 들어왔더라 하며 기억들을 더듬어 갔다.




초등학교 고학년이라 생각되는 무렵, 어머니의 흰머리카락들을 뽑아드렸던 기억이 났다. 1개에 100원. 그 말에 홀려 틈날 때마다 머리를 뽑겠다고 달려드는 딸을 어머니는 내치지 않으셨다. 쏠쏠한 용돈벌이였다. 그때 어린 내 손에 들려있던 물건이 바로 이 족집게였음이 떠올랐다.

20여 년 전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17살의 나는 엉엉 울며 그 방을 정리했었다. 친척들은 웬만하면 다 버리라고 말씀하셨었지만, 어린 마음에 쓸 만한 것들은 모두 내 방으로 옮겨왔었다. 빗이나 반짇고리 등등과 함께 내 화장대 한 구석에 자리잡은 족집게는, 눈물이 마르면서 점차 잊혀져 갔다.


취직 직후 아버지와 살던 집에서 나와 자취를 시작하면서, 꼭 필요한 물건들만 챙기고 나머지는 주인을 잃은 방에 두고 떠나왔었다. 이후 결혼을 하면서 폭풍처럼 짐정리를 했었고 또 별거를 시작하면서 정리를 했었다. 지금 이 집에 나와 살고 있는 물건들은 그 수차례 삶의 굴곡들 속에서도 함께 살아남은 생존병들이었고, 일일이 내가 정리를 했기에 모르는 것은 없다고 생각하며 지내고 있었다. 쪽집게는 그 모든 과정에서 용케도 살아남아 지금 내 손에 들려있는 것이다. 17살에 내 수중에 들어왔지만 20여 년간 쓸 일이 없다가 다시 세상의 빛을 보게 된 녀석.


한 손에 족집게를 들고 꼼꼼히 살펴봤다. 혹시나 제조회사가 적혀있는 '고오급' 족집게인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 시간을 버텨낸 이 녀석의 정체가 새삼 궁금했지만, 세월에 지워진 것인지 아무 표기도 찾을 수는 없었다. 대체 어디서 온 것인지 알 수 없는 비밀스런 녀석. 꽤나 오랫동안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가 제 역할을 가뿐히 해내는 녀석이 새삼 대단해 보였다. 그저 족집게였던 녀석은 이제 '어머니 유품'으로 자리가 달라졌다. 새 것을 마련한다해도 절대 버릴 수 없는 특별한 존재가 되었다. 어머니의 흰머리를 뽑다가 이제 내 흰머리를 뽑는 이 족집게를 9살 아들이 좀 더 크면 쥐어줘 볼까 하는 생각도 했다. 그러면 무려 3대가 이어 쓰는 '유서 있는' 물건이 되는 것 아닌가. 똑같은 물건이 이렇게 격상되다니. 족집게가 새삼 정겹기까지 했다.

유명하고 유명한 이 시가 떠오르는 건 당연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김춘수 '꽃')




늘 내 곁에 있었지만, 흰머리로 화가 잔뜩 났을 때만 찾던 이 녀석. 내가 인식한 순간부터 이 녀석은 더이상 평범한 족집게가 아니었다. 수십년의 세월을 견뎌낸 꽃, 유품이 되어 있었다. 오래 썼으니 망가지지 않도록 조심히 녀석을 다뤄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늘 똑같고 지루하기만 한 일상에서 실로 오랜만에 느낀 '긍정적 감정'이었다. 반가웠다. 옛 친구를 만난 듯, 녀석을 가만히 쓰다듬어 봤다.


족집게 뿐일까? 또 특별한 것은 내 주변에 없을까. 흔하디 흔했던 모든 것에 새삼스럽게 눈길이 갔다. 남들의 세상은 반짝이는 총 천연색인데 나의 세상만 퍽퍽한 흑백이라 여기며 지냈던 요즘이었다. 흑백의 세상에 흘러가는 일상과 사람들을 그저 가만히 바라만 보며 지내고 있었다. 내 세상엔 어차피 새로움도 반짝이는 것들도 없다며 눈을 닫은 채, 기대를 버려야 상처도 없다며 마음의 문을 닫는 데만 급급했던 날들이었다. 정말 그럴까. 내 세상엔 정말 마음을 기울일 만한 것이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을까?


눈을 감았다 다시 뜨고, 한 번 더 찬찬히 주변을 살펴봤다. 

워킹맘 생활에 잔뜩 지쳐있던 어느 겨울, 친구와 떠났던 여행에서 영원히 이 순간을 잊지 말자며 샀던 냉장고 자석, 별거를 시작한 내게 친구가 택배로 보내준 밥솥, 어느날 사촌동생이 갑자기 찾아 와서 낑낑거리며 넣어준 김치통, 놀러온 친구가 이 집엔 새해 달력이 없다며 제 것을 놓고 간 탁상달력, 친구가 주고간 김 한 상자 등등. 내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물건들이 이제야 제대로 눈에 들어온다. 마음을 기울여야 마땅한 귀한 것들이 속속 눈에 밟힌다. 흑백세상 곳곳에서 반짝거리고 있는 귀한 마음과 기억들. 반짝반짝. 이 귀한 것들은 언제부터 내 곁에 있었을까, 나는 왜 또 이 모든 것들을 모른 체 하기 시작했을까. 왜 이런 귀함에서 눈을 돌리고 또 안으로 또 어둠으로 그렇게 달아나려 했을까. 

이 귀한 것들 모두가 아주 오래 전부터 내 곁을 지키고 있었다는 기분이 든다. 내 곁 어딘가에 자리를 잡고 머물며, 내가 알아볼 때를 기다려 주고 있었다는 느낌. 나에게로 와서 위로든 기쁨이든 웃음이든 줄 준비가 되어 있는 내 세상의 귀한 반짝임들. 이젠 그들의 이름을 불러 나도 총 천연색 세상을 누릴 때다. 그리고 힘을 내, 나 역시 그들에게 가 꽃이 되어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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