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어떤날엔 Jan 08. 2021

(19) 그 스님은 나에게 빙의가 됐다고 했다

2019년 12월, 난생 처음 철학관이라는 곳을 찾았었다. 궁합이라는 것을 보기 위해서였다. 남편과 별거를 하고 한 달 여가 지난 시점, 이 사람과 내 미래에 한 톨의 '희망'이라도 있는 것인지가 너무 궁금했다. 사방에 희망이 자라고 있는데 나만 모르고 눈 감고 있는 것인지, 사방이 가시덤불인데 그곳을 향해 내가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정말 알 수가 없어서 누구에게라도 물어보고 싶었다. 한 마디로, 삶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아 누구라도 붙잡고 '대체 어떻게 되는 겁니까' 물어보고 싶을 때였다. 때마침 유명하고 용하다는 철학관이, 집에서 도보 10분 거리에 있음을 알게 됐다. 결혼할 때도 보지 않은 그 궁합을, 별거를 하고서야 보러 갔다. 


잘 맞는 궁합이라고 했다. 너무 놀라 "네?"하고 반문했더니, 여자가 피곤할 수 있는 궁합이라는 설명이 이어졌다. 여자가 토양, 남자는 나무(어설픈 기억입니다. 혹시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라서, 여자의 기운을 남자가 받아가는 궁합이라고 했다. "그게 잘 맞는 건가요?" 물었더니, 보통 이런 궁합은 둘이 힘을 합쳐 가정을 꾸려 나가지만, 여자쪽이 일방적으로 참거나 지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내 에너지를 가져가는 나무라니. 너무나 시적이고 적확한 표현에 깜짝 놀랐다. 철학관을 나서면서 '에너지를 빼앗기며 살지는 말아야지' 생각했다. 여전히 한 치 앞은 보이지 않았다.




2020년 12월, 이번에는 용하다는 스님을 뵈러 갔다.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이혼 소송을 시작했고. 한 치 앞은 커녕 내 발밑이 천길 낭떠러지 같이 까마득하게 느껴지던 나날들이었다. '너무나 바쁜' 스님은 한참을 대기 중이었던 내게로 뚜벅뚜벅 걸어오시더니 눈을 뚫어져라 빤히 바라보셨다. 그리고 말씀하셨다. 

"빙의네. 눈에 파란 빛 보이지? 이게 빙의된 사람들 특징이야."

빙의? 귀신에 씌인다는 그거? 뭐라고 해야 할 지 몰라 가만히 있었다. 쭈볏쭈볏 따라 들어가 이야기를 나눴다. 

친가든 외가든 집안에 일찍 돌아가신 분이 있냐고 물으셨다. 딱 떠오르는 건, 안타깝게도 내 어머니였다. 내가 17살에 돌아가셨으니 일찍 돌아가신 편이 아닌가 해서 이야기를 꺼냈다. 어머니인지 다른 귀신인지 지금은 알 수 없다고 했다. 다만, 천도제를 해서 영혼을 하늘로 보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20살 이전에 천도제를 했으면 인생이 꼬이지 않았을텐데, 귀신이 붙어서 그릇된 선택을 하게 만든다는 거였다. 


귀신이라. 처음 든 생각은 "그런 게 진짜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살면서 귀신을 본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부모님이 돌아가시고는 왜인지 사후세계가 있다고 믿으려 애쓰게 됐었다. 세상에 혼자 있는 느낌이 들고 헛헛할 때, 하늘이라도 바라보면서 어디선가 두 분이 나를 보고 계신다 생각하면, 그나마 위안이 됐었다. 이 넓은 하늘 어디선가 나를 보고는 계시겠지 생각하면 조금은 편해졌다. 그렇게 믿어버리는 편이 마음이 편했으니, 사후세계는 있다고 믿자. 그럼 귀신은 있다 치고. 


그 다음으로 든 생각은 "나 천하무적이겠는데" 였다. 너무나 많은 사연들이 세상엔 있겠지만, 좁디 좁은 내 주변을 봤을 때 내 부모님은 일찍 돌아가신 편에 속했다. 간단히 말해, 내 부모님은 일찍 귀신이 되셨다. 귀신이 붙어서 그릇된 선택을 한다고? 만약 나에게 붙은 것이 어머니 귀신이라면 절대 그럴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귀신이 뭐라든 똥고집으로 내가 선택했고 내가 후회하는 중이라고 생각하는 편이 훨씬 설득력 있었다. 

그럼 아버지 귀신까지 합세한 이 상황에, 남은 내 삶 동안 그분들은 어디에 머무시려나. 나를 찾아오지 않을까? 내 곁에 있다가 잡귀든 뭐든 나에게 붙으려고 하면 모조리 쫓아 주실 것 같은데. '아이고, 여긴 우리 자리에요. 다른 데 가 보세요' 하면서. 그런 모습이 상상이 됐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니 든든했다. 쌍귀신이 자리 잡은 내 어깨. 굳이 천도제라는 것을 지내 이분들을 하늘로 쫓을 필요가 있을까? 200만원을 들여 천도제를 지내는 것보다 내가 그 귀신을 껴 안고 살고 싶어졌다. 


그리고 나를 가장 행복하게 했던 스님의 말씀. "60대에 단명할 위험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 고비를 넘기면 90대까지도 장수할 수 있다고 하셨다. 장수는 모르겠고, 60대를 단명이라 부른다는 건 그 전엔 별 일 없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싶어서 진심으로 기뻤다. 

나는 사실 늘 두려웠었다. 돌아가신 어머니는 유방암이었고 딸에게 유전될 확률이 그렇게나 높다고들 하니 '만약 내가 말기에 암을 발견하게 되면 어쩌나.' 그 생각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이혼을 하고 내가 아이를 키우다, 세상에 단 둘 뿐인 듯 그렇게 살다가, 아이가 성인이 되기도 전에 내가 먼저 떠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 갑작스런 사고로 당장 몇 시간 후 어떻게 될 지도 모르는 것이 인생이라고 생각은 하지만, 가정을 박차고 나온 나는 적어도 아이가 20살이 될 때까진 곁을 지켜주고 싶었다. 그런데 60대가 단명이라니. 아- 다행이다 싶었다. 




집으로 돌아와 거울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파란 빛? 대체 그런 게 어디있지 하면서. 

나도 생각은 한다. 분명 돈 아까운 일이라고. 그런데, 너무 답답하면 누구의 말이라도 듣고 싶어지는 것이 약하디 약한 내 마음인 것 같다. 앞으로 어떻게 되나요,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나요, 앞으로는 잘 살 수 있나요. 곧이곧대로 따르지도 않을 거면서 저런 질문을 하고, 해주시는 이야기들도 멋대로 해석해 버린다. 그럼에도 또 그 돈을 쓰고 귀를 기울인다. 얼마나 쓸 데 없는 짓인지 나도 안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해서 '희망'을 얻고 싶다. 

"유명한 스님이 그랬는데, 나 앞으로 되게 잘 산대. 수명도 길대." 

스님이 하신 많고 많은 다른 이야기들은 잘 기억도 나지 않고, 그저 좋았던 것들만 쏙쏙 뽑아 문장으로 만들고 그것을 '희망'으로 삼고 버틴다. 혼자서 '잘 살거야' 다짐하는 것보다 '그 유명한 분도 내가 잘 산댔어' 하는 편이 더 신뢰가 생기는 것 같아서 굳이 운명을 보신다는 그 분들을 찾아간다. 그래, 나는 돈을 내고, 희망을 샀다. 


어느 날 내가 '나 이제 사주 보러 안가' 하는 순간이 온다면? 그 때는 더이상 미래가 두렵지 않은 순간일 것 같다. 현재가 너무 희망차고 행복해서, '돈주고 사는' '헛된 희망'이 필요없어지는 순간. 그 때가 얼른 오면 좋겠다. 나에게 빙의가 되었다고 말씀하셨던, 그 유명한 스님의 말씀에 따르면, 몇 년 남지 않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16) '척'을 줄였더니, 살기가 편해졌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