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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림 Jun 13. 2021

육아 에세이'미니멀감정육아'를읽었다

독후감입니다

전문가는 일단 믿는 편이다. 당연하다. 고기도 구워본 사람이 잘 굽고, 먹어본 사람이 잘 먹는다. 어떤 영역이든 배우고 경험한 사람이, 생초보보다 낫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이런 나였기에, 모르는 게 있으면 일단 책부터 검색해보곤 했었다. 육아 영역도 마찬가지. 임신 때부터 온갖 육아서들을 독파했었다. 그 두꺼운 '임신출산대백과'도 조리원에서 젖을 짜며 잠을 줄이며 읽어댔다. '베이비 위스퍼', '삐뽀삐뽀 119', '엄마 나는 자라고 있어요' 등 유명하다는 육아서는 죄다 사 들였고 읽었다. 세상엔 참 많고 많은 육아서적이 있었고, 이 책 저 책의 정보들을 모아 이유식을 만들고 아이를 훈육하려 했었다. 책대로 하면, 아이가 잘 클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아니었다. 세상이 뜻대로 되면 참 좋으련만, 그렇게 읽어대도 답은 없었다. 돌 이전의 육아는 어찌어찌 책의 도움을 받았던 것도 같다. 내 질문은 주로 '이 발달이 정상인지', '왜 아픈지' 등이었고, 신체적 문제에 대한 부분들은 어느 정도 책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아이는 자랐다. '자아'라는 것이 확립되어 가면서 책 안의 세상과 현실 육아 사이의 괴리는 점점 더 커졌다. 전문가들은 각자의 입장에서 좋다는 '비법'들을 알려줬지만, 그 비법들이 내 아이에겐 통용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했다. '책 육아'(장난감 대신 책을 가까이하며 아이를 키우는 방법)에 꽂혀 관련 카페에 가입하고, 저자가 말하는 대로 아이에게 책을 읽히려 애도 써봤다. 지금도 훌륭한 육아라 생각은 하지만, 그런 육아법을 소화하기엔 내 인내심이 부족했다. 이렇게 책을 읽히다가는 아이가 한글을 깨치기도 전에 책에 거부감을 느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문가는 전문적 육아방법을 말했지만, 내 아이의 성향에 대해서는 내가 더 잘 알았다. 책을 읽으면서도 '얘는 이런 거 안 통할 것 같은데'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고, 나부터도 거부감이 들었다. 좋은 육아법은 많고 많았지만, 따라 하다가는 내 가랑이가 찢어질 것 같았다. 육아를 하려는 건지 아이를 잡으려는 건지 헛갈리는 시간들이 쌓여갔다. 그즈음부터 육아서를 '끊었다'. 육아의 세계가 힘든 이유가, 정답이 없어서라는 사실을 그때 깨달았다. 남의 집 아이와 내 아이, 남의 집 엄마와 나를 비교하며 초라해지는 기분. '이럴 바에야 내 멋대로 키우고 만다'는 다짐을 할 만큼, 책 안의 육아는 내 세상의 육아와 거리가 멀었다. 






그렇게 육아서와 멀어졌다. 오히려 편했다. 공감되지도 않는 글들을 읽으며 내 세상을 비하하게 되는 거면, 차라리 안 읽는 게 나았다. 그런 내가 오랜만에 '육아서'로 나온 책을 손에 들었다. 이유는? 읽기도 전에 나는 알고 있었다. 이 책의 저자 '우윤정'(감정메이트 윤정)님이라면, 아주 뼛속까지 파고들어 나를 공감시킬 것이라 믿고 있었다. 


브런치 초창기. 에세이 분야 추천작가로 떠 있는 것을 보고 작가님을 알게 되었던 것 같다. 우연히 클릭했고, 처음 읽은 글이 이혼 후 아이를 키우는 싱글맘의 생활에 관한 것이었다. 담담하고 덤덤한 어조의 육아일기(?)를 읽다 보면, 다음 글이 기다려졌었다. 이혼 소송을 갓 시작하고 있었기에, 이 분의 생활이 나의 미래라 여겨지기도 했었다. 어쩌면 이렇게 아이가 잘 자랐지 생각하며 글을 읽다 작가님의 아이와 내 아이가 동갑이라는 사실도 알게 됐다. 확- 공감할 수밖에 없는 상황들이 글 안에서 펼쳐졌기에 '라이킷'을 누르며 마구 응원을 드렸다. 글을 읽으며 알게 됐다. 어린이집 교사에 아동대학원까지. 작가님은 경험과 지식이 갖춰진 육아 전문가였다. 싱글맘 전문가가 아이를 키우는 이야기. 내 입장에선 일단 닥치고 읽어야 하는 글이었다. 


'감정메이트 윤정'. 출간 즈음 바꾸신 작가명이다. 처음엔 '연애하는 엄마'(?)였고, '뒹굴러'였고, 마지막 작가명은 정말 찰떡같이 '감정메이트'라는 단어를 선택하셨다. 작가님께 여러 번 얘기했었다. 

"혹시 댓글 학원 같은 데 다니세요?"

이혼이라는 상황 앞에서 절절매던 내게, 그녀의 조언은 '적확'하게 와닿았다. 괜히 전문가가 아니었다. 담담히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며 "나도 그랬어요", "그땐 그래요", "좀 지나면 괜찮아져요" 해 주시니, 엄청나게 힘이 됐었다. 경험이 가진 힘은 강력했다. 

또 하나, 작가님 본인이 한 발 한 발 걸어가시는 삶의 여정이 '굳셌다'. 이리저리 흔들리는 나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강인함이랄까. 출간 소식을 전하시더니, 무인점포를 하신다고 하셨고, 다른 플랫폼에서 육아전문가로도 활약을 앞두고 계신다.(작가님 블로그에서 훔쳐본 고급 정보?;;) 꿋꿋이 걸어가시는 걸 지켜봤기에, 망설임도 없이 책을 샀다. 






이 책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엄마들이여, 그래도 괜찮아요"였다. 솔직히 그 부분이 가장 좋았다. 이 독후감 제목을 쓰면서 '육아서'라고 썼다가 '육아 에세이'로 바꾼 이유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육아서는 '이렇게 하세요' 하며 방법들을 제시하지만, 이 책에는 그런 것이 없다. "기존의 육아서와는 다르게 엄마의 마음에 초점이 있습니다"라고 저자가 책에서 밝힌 것처럼, 엄마로 살며 겪은 온갖 감정들이 다 기록되어 있다.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처럼 쉽게 쉽게 읽히지만, '욱하는 엄마'가 '아직 어설픈 엄마'로 성장해가는 여정이 생생히 느껴진다. 


- 엄마는 아이들의 체력을 따라가지 못한다.... 서로 각자의 시간을 갖고 만났을 때, 우리는 찐친(진짜 친구)이 된다. 

- 남들 보기에 좋은 엄마로 살지 말자. 나는 엄마이기 전에 실수하고 서툰 인간이라는 것을 인정하면 육아가 조금은 쉽지 않을까? 당신은 어떤 엄마든 아이에게 있어서는 누구보다 소중한 존재인 것을 잊지 말자. 

-  아이가 내가 '완전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 주길 바랐는지 모른다. 그래서 상냥함이라는 가면을 쓰고 속으로는 화와 미움이 있어도 내색하지 않았다.(...) 아이가 심하게 투정을 부리는 건 '나를 안아줘'라는 말이 되는 것처럼, 내가 엄마로서 완벽해지려고 발악한 것은 누군가 내 마음을 보듬어 주고 안아주길 바랐던 것이다. 

- 나는 희생하고 욱하지 않는 엄마로 살기를 포기했다. 그 대신 연애하듯이 적당한 긴장감과 거리를 두고 나를 꾸미고 나와 아이가 성장할 수 있는 관계를 만들기로 했다. 


책을 읽으며 인생은 결국 '선택들의 집합'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혼, 불안장애, 92만 원의 월급 등 온갖 어려움들이 펼쳐지지만, 그 모든 순간들에 저자의 선택은 결국 '아이'였다. 불면의 밤과 끝없는 불안함 속에서도 저자는 꿋꿋하다. 스스로의 마음을 안정시키려 노력하며, 직장보다는 아이와 있는 시간을 누리기를 택하고, 아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결국 하나하나의 선택들이 모여, 지금의 '안정된' 관계를 아이와 맺게 된 것 아닐까. 고비의 순간에 스스로를 다잡는 저자의 발걸음. 그 한 걸음 한 걸음이 얼마나 무거웠을까. 그 무게를 상상하다 책을 덮을 때쯤엔 눈물이 핑 돌았다. 


덧붙여, 이 책을 읽을까 말까 고민하는 분이 있다면 목차를 한 번 보시라는 이야기를 꼭 하고 싶었다. '훈육이라고 말했지만 화풀이였습니다', '어쩌면 육아 체질이 아닌 것 같습니다', '엄마의 낮은 자존감이 화가 되었습니다', '문제는 아이가 아닌 엄마였습니다', '아이의 키높이보다는 눈높이를 보자', '참견러들에게 자유로워지기', '인내심은 30초만 기다려주는 찰나에서 길러진다', '아이에 대한 욕심을 버리니 친구 같은 엄마가 되다' 등등. 아마도 엄청난 고심 끝에 붙여졌을 각 소제목들은 그 자체로 이 책의 핵심을 충분히 전달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서 딱 하나 정말 공감하기 어려웠던 내용을 굳이 꼽아봤다. 


가끔 지인이나 친척들이 아이를 보고 너무 말랐다고 말씀하신다. 잘 먹이고 있느냐고 걱정 어린 말투와 시선을 보낸다. 더는 죄책감을 느끼지 않기로 했다.
"체질이에요. 제가 말랐잖아요."


엄청나게 공감하며 책을 읽다가, 이 부분에서 갑자기 확 거리감을 느꼈다. 내 평생 말라본 적이 없었기에, 마른 체질은 어떤 기분으로 살아가는 지를 상상하기 어려웠다. 마른 사람은 일단 질투하고 보는 나였지만, 애써 침착하게 책을 끝까지 다 읽었다. 그리고 책을 덮으며, 이 글을 끝내며 한마디 꼭 덧붙이고 싶었다. 작가님의 삶을 지켜보고 있는 이가 있으니, 지금보다 앞으로 더 행복하시기를. 진심을 담아 응원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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