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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떤날엔 Nov 19. 2020

누구에게나 참을 수 없는 한계가 있다

결혼 이야기-함께 살아간다는 것은(7)

- 상대의 반응이 두려워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하고 있다면 어딘가 크게 잘못된 것이다.

- 두 사람의 관계에서 권력이 한쪽으로 쏠리면 힘이 없는 사람은 상대의 허락을 받지 않는 한 그 무엇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

- 어떤 일에 대해 허락을 받아야 한다거나 새로운 소식을 전할 때 동반자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두렵다면 당신은 어느 정도는 동반자에게서 직접적인 학대를 받고 있는 것이다.

- 피해자는 어떤 식으로든 논쟁을 벌이게 되는 상황을 피하게 된다. 결국 피해자는 하고 싶은 말이 생길 때면 아주 신중하게 단어를 골라 말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학대자에게 아주 가까이는 가지 않은 채 주위를 맴도는 법을 알게 되고 지난 경험에서 격렬하게 반응하는 학대자 때문에 알게된 다양한 지뢰를 피해가려고 최선을 다하게 된다. 아주 사소한 문제를 해결할 때도 피해자는 이런 조심성을 보일 때가 많다.

- 학대자가 난폭한 행동을 한 뒤에 또다시 난폭한 행동을 하기까지는 비교적 조용하고 행복한 시기가 있는데, 이 시기에는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과 언제라도 다시 같은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항상 공존한다.


결혼생활이 너무나 힘들 때 읽었던 '그 남자는 절대 변하지 않는다' 中 발췌.
읽으면 읽을수록 날 인터뷰 한 책인 듯 느껴졌다. 


아이를 위해 어떻게든 참아보려 했던 내게도 결국 인내심의 끝이라는 것이 다가왔다.

물이 가득 담긴 컵에 물방울 하나가 더 떨어져 결국 물이 넘치게 되듯이, 화가 잔뜩 쌓여있던 내 속은 남편의 작은 행동을 버티지 못했다. 어느 날부터 카드명세서에 찍혀나오던 소액결제. 그 소액결제 내역이 나의 임계점이었다. 처음 그것을 발견했을 때는 언제나 그랬듯 참았다. 말을 섞어서 또 싸우게 될 바에는 말을 말자 하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 지출이 몇 달에 걸쳐 이어지고 새벽 5~6시 귀가가 이어지고 술값 택시비 등이 가족카드 명세서에 찍혀 나오는 것을 보면서 '더는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큰 액수도 아니고 고작 소액결제라니. 결연한 각오를 다지기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생각했지만, 그간 쌓인 많고많고많고많은 일들이 내 속에 쌓여 있었다. 건드리기만 해봐라, 터져 버릴테다. 압력밥솥같은 상태로 몇 달을 지켜봤지만, 변화는 없었다.

 "이렇게는 죽어도 더 이상 못 살겠다."

당시의 내 마음을 한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딱 저랬다. 남편과의 싸움을 피하고 피하고 또 피해 왔지만, 이제는 한계라는 느낌이 왔다. 빨간불 깜박깜박.

머릿 속 내비게이션이 안내멘트를 해주는 듯 했다. "목적지 부근입니다."

어디가 목적지인지 도무지 알 수는 없었지만, 일단 이 차에서 내려 보이지도 않는 그 목적지를 찾아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수많은 고민 끝에 '별거'를 택했다. 남편의 생활과 나의 정신건강, 그 모두를 위한 길은 별거라고 생각했다. 벼르고 별러 남편에게 얘기했다.

더는 버틸 수가 없다고.

앞으로 우리 따로 살아보자고.

서로가 서로를 좀 먹는 사이가 있는데 우린 그런 것 같다고.

우리 서로 떨어져, 서로의 빈 자리를 절실히 느껴보자고 구구절절하게 말했다.


별거를 선언(?)한 그날 밤, 남편의 화와 설득은 밤새 이어졌다. 보통 1시간 정도 대화가 이어지면 "내가 다 잘못했으니 이 대화를 좀 끝내자"고 내가 빌던 것이 우리의 대화 패턴이었다. 나는 그 밤, 대화를 시작하면서부터 결연하게 이야기했다. 오늘은 밤을 새더라도 내 의견을 바꾸지 않을 것이라고.

밤 11시 경 시작한 대화는 정말로 새벽 4~5시까지 이어졌다. 의견을 굽히지 않고 버티고 버티자 놀랍게도 남편의 태도가 한결 누그러졌다. "별거에 대해 생각을 좀 해보겠다"고.

나는 "별거가 아니면 더 이상 살아갈 자신이 없다"고 선언했다.




일방적인 통보였다. 연애를 시작하던 그 때부터 딱 10년째 되는 해에 "더는 못하겠다"는 통보를 해 버린 것이다. 그 통보는 빨랐던 것일까, 너무나 늦었던 것일까. 아직도 잘 모르겠다.

어쨌거나 나는 그 일방적인 통보 이후, 퇴근 후 일상적으로 하던 집안일에서 완전히 손을 뗐다. 퇴근하면 씻고 바로 침대에 누웠다. 아이가 무엇을 하든, 남편이 무엇을 하든 신경쓰지 않으려 애썼다. 처음에는 그저 누워 있으려 했을 뿐이었다. 눈을 뜨고 주변을 보면 할 일부터 보이는 것이 주부의 일상이니, 눈을 감아버리자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실제로 아주 깊게 잠이 들곤 했다. 퇴근 후 부랴부랴 귀가해 저녁을 차리고 정리하고 씻고 아이를 재우던 그 시간들 동안 몸 어딘가에 잠이 쌓이고 쌓였던 것인지, 자고자고 또 자도 잠이 왔다. 아침이면 겨우 몸을 일으켜 출근을 하고 퇴근하곤 또 잠을 자버렸다. 미뤄뒀던 겨울잠을 자듯이.


가정을 유지하기 위해 참고 참았던 시간들은 길고 긴 잠과 함께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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